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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Apr 02. 2024

자몽이를 추억하며

휴일 오후, 집에 머무르겠다는 딸아이를 남겨두고 짝꿍, 아들램과 같이 밖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차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집을 출발하고 10여분 쯤 흘렀을까, 딸아이의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처럼 무슨 부탁을 하려고 전화를 한 건가, 생각하며 통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 울부짖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귓전으로 달려들었다.


"엄마아~~ 엉엉. 할머니가.. 할머니가..."

거기까지 듣고서 나는, 엄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예전에 집에 있던 엄마가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왜, 할머니한테 무슨 일 생긴 거야?!"라고 묻는 내게 딸이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할머니가, 자몽이를 죽였어. 엄마아~~ 어떡해..!! 자몽이가 죽었어..엉엉~"

휴대폰 너머 딸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놀란 마음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나는 딸아이를 진정시키며, 금방 집으로 되돌아갈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해야만 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믿기지가 않았다. 딸아이가, 잠시 기절한 자몽이를 죽었다고 착각한 건 아닐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급히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딸아이는 넋이 반쯤 나간 듯 자신의 방 침대에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더 이상 울음도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안아, 자몽이는? 자몽이는 어디 있어?"

"화장실 앞 매트 위에..."

시선을 돌려 화장실 문 앞을 쳐다보니, 자몽이가 미동도 없이 매트 위에 누워 있었다. 멀리서도 자몽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제야 자몽이의 죽음이 실감 난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떻게 된 거야? 찬찬히 말해 봐!"



딸아이의 말에 따르면, 자몽이는 할머니의 발길에 차여 죽었다고 했다. 본인이 부엌 싱크대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화장실 앞에서 할머니 발에 걷어 차인 자몽이가, 자신의 시선 옆으로 힘겹게 날개를 푸드덕 거리며 쓸려내려왔고, 이윽고 자신의 손 위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는 것이었다. 얘기를 듣자마자 내 앞에서 '(자몽이를) 때려죽여버리고 싶다'라고 말했던 엄마가 생각났다. 그러니까 이 상황은, 엄마가 내뱉었던 말이 그대로 실현되어 버린 것이었다.



근래 들어 자몽이는, 알을 낳기 위해서 화장실 변기 뒤의 옴폭한 부위에 부지런히 종이들을 물어 나르고 있었다. 예전에는 와인 냉장고 뒤편 좁은 틈에 알을 낳기 위한 둥지를 틀곤 했는데, 와인 냉장고 선이 물어뜯겨 고장이 나는 바람에, 우리는 몇 달 전 와인냉장고를 창고로 이동시켰다. 그래서였을까. 집안 곳곳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고 다니던 자몽이는 어느 날, 변기 뒤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는 빈 공간을 찾아냈고, 그곳으로 자신이 정성스레 찢은 종이들을 쌓기 시작했다. - 왠지 모르겠지만, 새장 안에 설치해 둔 '알통'은 활용하지 않았다 - 어차피 종도 다른 망고 사이에 낳는 '무정란'이라 새끼가 나올 수 없는 알임에도, 자몽이는 정성 가득한 모성애를 아낌없이 발휘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배변도 제 때 못할 정도로 그 자리를 지키고 맴돌면서, 태어나지도 않을 새끼를 위해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사고를 당한 그날도 자몽이는 화장실 문 앞을 서성이며, 혹시라도 둥지에 위협이 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려 애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몸집이 작은 모란앵무의 가장 큰 무기는 부리다. 아니, 무기라기보다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유일무이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알을 낳는 시기가 되면, 자몽이는 더 예민해졌고, 부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화장실에 가려던 엄마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평소 새라면 끔찍이도 싫어하는 엄마는, 다른 화장실을 이용한다든지, 그도 아니면 딸아이에게 부탁해 자몽이를 피한다든지 하는 방법은 생각지도 못한 채, 부리질을 하며 덤벼드는 자몽이를 냅다 걷어차는 것으로 그 상황을 무마해보려 한 모양이었다. (맨날 힘없다며 축 처져있더니, 이럴 때 보면 어디서 힘이 나는 건가 싶다.)


"얼마나 세게 걷어찼으면, 어떻게 새가 죽어?!!"

"아니, 물려고 덤비기에 그냥 발로 털어냈을 뿐인데, 그렇게..."

엄마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올라왔다. 차라리 미안하다, 내가 큰 실수를 했다,라고 말했으면 덜했을 것을, 엄마는 변명하기에 급급한 사람처럼 보였고, 그저 털어냈을 뿐인데 (운 없게도) 새가 죽은 거다,라는 식의 발언을 계속 이어갔다. 새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무리 작은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로 생명을 잃지는 않는다. 딸램과 아들램도 실수로 앵무새들을 엉덩이로 슬쩍 깔고 앉기도, 제법 세게 손으로 치기도 했지만, (새들이) 잠시 걸음을 제대로 못 걷는다든지 하는 수준에서 끝이 났다. 엄마의 말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말과 내게 별반 다르지 않게 들렸다.



아이들은 할머니와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다,라고 울부짖었다. 사실 나도 자신은 없다. 최근 불거진 여러 좋지 않은 상황들로 엄마와의 동거를 어떻게 이어가나, 걱정이 많았는데 이번 일로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내 머릿속엔 자꾸, 없어졌으면 했던 골칫덩이가 사라져서, 홀로 안도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아무래도 충격으로 인한 나의 일시적 과대망상이겠지만. 이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야 하나 우려스러운 와중에, 기억이 희석되기 전에 자몽이를 이곳에서 추억하고 싶은 마음에 눈물 콧물 흘리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자몽이가 떠난 다음 날, 눈뜨면서부터 본격적인 눈물바람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평소라면 들릴 울트라하이소프라노의 자몽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별안간 짝꿍을 잃은 망고도, 자몽이의 화답이 돌아오지 않자 별다른 소리를 내지 않았다..집안이 순식간에 적막강산이 된 것 같았다. 견디기 힘든 공허감을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로 메워보려 오전 일찍부터 부산을 떨어보았다. 그런데 적막감을 무마시켜보려 시작한 청소가 되려 내 눈물샘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집안 곳곳에서 나오는, 솜털 같은 자그마한 초록깃털들에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한, 자몽이가 정성스레 찢어놓은 종이조각들에 그만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책이 찢긴 부분은 더 이상 그 크기를 넓혀가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있을 것이다. 그 모습이 흡사 세상을 등진 아이의, 더 이상 자라날 수 없는 가녀린 머리카락처럼 느껴져 눈앞이 사정없이 흐려왔다. 열린 창들 사이로 봄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오는데, 이 따뜻한 봄을 보지 못하고 자몽이는 떠나버렸다고 생각하니 입술과 턱이 과도하게 씰룩거리며 더 이상 청소를 진행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누군가는 새 한 마리 죽은 것에 뭘 그리 호들갑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반려동물과 정이 들어 본 이들은 알 것이다.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곳에 반려동물과의 추억이 깃들어있다는 것을.

컵에 물을 따라 마시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무심코 아들 녀석의 어깨를 바라보다가도 불현듯, 생명으로 머물러있었던 반려동물의 모습이 생생하게 소환된다. 그러면 또, 애써 누르고 있던 눈물샘이 터지고야 만다.



자몽이가 그저 제 수명을 다해서, 단순한 사고로 죽은 것이라면 아마 이 정도는 아닐 테다. 나는, 여린 몸으로, 어미로서 마지막까지 애쓰다가 간 자몽이의 모습이, 자그마한 몸 밖으로 반쯤 삐져나온 알을 매단 채 생을 마감한 그 애처로움이 자꾸만 눈에 밟혀 마음이 더 아리다. 변기 뒤를 청소하는데, 언제 다 물어다 나른 건지, 끝도 없이 쓸려 나오는 수북한 종잇조각들에 후회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와인냉장고를 치우지 말 걸, 그날 외식을 하지 말고 집에서 식사를 해결할 걸, 아무리 무정란이라고 해도 알을 품을 수 있는 적당한 장소를 마련해 줄 걸. 그랬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살아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딸아이가, 쫓아오는 자몽이를 피해 즐거운 비명을 내지르며 후다닥 자기 방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저녁 설거지를 하는 내 앞에서 재미난 구경을 하듯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자몽이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직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아... 지난 3년 간 자몽이가 내 삶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었나 보다.



저녁 설거지를 마친 나는 습관처럼 복도벽에 걸려있는 지중해의 파란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물안개라도 마주한 듯 시야가 또다시 흐릿해졌다. 불과 얼마 전 찍었던 풍경이 생생한데, 자몽이만 떠난 그 자리가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자몽이가 차지하고 있었던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인데, 온통 다른 세상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부단히 잊으려 애쓰고 싶진 않다.

나는 생의 활기로 넘쳐흐르던 자몽이를 추억하며 이런 내 마음을 다독여보려 한다.

천천히, 어쩌면 꽤 오래도록..

(좌) 자몽이의 즐거운 목욕시간. (우) 자몽이와의 마지막 인사
완성되어 가는 둥지의 보초를 서고 있는 중이에요.
(좌로부터) 엄마가 저녁 설거지하는 모습 구경하기, 망고와의 사랑스러운 한때, 와인냉장고 뒤에 둥지 틀기
입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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