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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Jun 10. 2024

사랑스러운 목욕의 시간

내 생애 첫 목욕의 기억은 서너 살 즈음 아빠와 함께 간 남탕에서의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의 일들은 내게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는데, 유독 이날이, 아주 흐릿한 한 장면이지만, 기억나는 것은 아마도 꼬맹이 녀석의 눈에 비쳤던 풍경의 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몹시도 낯설었을 테지.



다행히 남탕의 상세한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물기 가득한 공간 속에 단단한 나무처럼 버티고 있던 아빠의 등판만이 희끄무레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내 꿈속 한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아빠와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은 무의식이 만들어 낸.



대여섯 살 이후의 목욕은 꽤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주말이면 엄마와 같이 간 목욕탕이 끔찍하게 싫었다는 것도. 예전 글에서도 적었지만, 목욕탕에 가지 않으려 도망을 치던 나는 때때로 엄마와 쫓기는 자와 쫓는 자가 되어 동네 한 바퀴를 달음질치며 동네 이웃들에게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선사하기도 했다.



그토록 목욕하기를 싫어하던 내가, '목욕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정체성이 바뀌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었다. 스스로 때를 밀고, 아주 가끔 두 살 터울 동생을 씻기기도 하던 나는, 어느 날부터 마치 놀이공원에 가듯 친구들과 우르르, 대중탕으로 몰려다녔다. 사실 그것은 목욕을 빙자한 놀이에 다름 아니었다. 때를 미는 건 뒷전이었고, 우리는 헐레벌떡 냉탕으로 뛰어들기 바빴다. 실내수영장이 드물었던 그때, 대중목욕탕의 냉탕은 어린 소녀들에게 술래잡기하기 좋은 수중 놀이터이자, 어설픈 헤엄을 시도해 보기 적합한, 제법 훌륭한 실내수영장이 되어주었다.



그러던 내 정체성은 결혼을 한 이후로 또다시, '목욕을 좋아하는 사람'에서 '목욕시키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변화했다. 매일같이 갓난아이를 씻기면서 나는, 전적으로 내 손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를 정성스럽게 씻겨주는 행위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일인가 하는 것을 깨달았다.



한 순간도 마음 놓고 푹 잘 수 없는 고단한 육아일과 중에서도 아이를 목욕시키는 순간이 나는 즐거웠다. 불과 몇 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말캉말캉한 작은 몸을, 혹여 부서지기라도 할세라 조심조심 씻길 때면, 아이는 꽃봉오리처럼 꼭 다문 두 손을 파득거리며, 찌푸린 표정 속에서도 말갛게 빛나는 두 눈으로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마치 '나는 엄마만 믿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쉴 새 없이 꼬물대던, 그 여리고 자그마한 움직임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물에 빠뜨리기라도 할까 늘 긴장하고 있어야 했지만, 목욕을 마치고 난 후 뽀송뽀송, 갓 빚은 밀가루 반죽처럼 고소한 향기를 풍기며 보드라워진 살결을 만질 때면, 그간의 수고로움은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 시절 아기는 세월과 함께 사춘기 소년소녀가 되었고, 아이들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이제 반려동물이 메워주고 있다. 반려닭 김치를 씻기며 나는 몽글몽글했던 감정을 넘어 커다란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꼬맹이 시절 내가 그러했듯 김치는 목욕하기를 무척 싫어한다. 목욕탕으로 안고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바짝 긴장하는 게 느껴진다. 샤워기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면 김치는 최대한 구석으로 밀착해 조금이라도 더 몸을 숨기느라 여념이 없다. 그렇다고 김치의 목욕을 포기할 순 없다. 우리에게는 김치의 청결과 위생을 지켜주어야 할 돌봄의 의무가 있다.



샤워기 소리에 놀란 김치가 등을 돌린 채 구석에 고개를 처박으면, 내 짓궂은 미소는 급기야 폭소가 되어 쩌렁쩌렁, 욕실을 울린다. 이런 상황은 목욕이 끝난 후 드라이를 할 때면 더 심각해진다. 나는 오른손에 드라이기를 치켜든 채, 결기에 차 보이는 김치의 뒤태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한참을 그대로 두고 지켜본다. 게다가 곁눈질로 눈치를 살피는 그 맹랑함이라니.. 그 모습이 재미있어 나는 어깨를 들썩이다가, 삐져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목욕시키는 게 이토록 사랑스러운 일이라니.
깔끔해지는 아이들의 몸보다 내 정신이 더 맑아지는 것 같다.

이 순간의 장면들을 고이 저장해 두었다가, 훗날 잘 숙성된 와인처럼 꺼내어 음미하고 싶다. 그렇게 두고두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달빛아래 비치는 풍경처럼 은은하게.

김치가 드라이를 피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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