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임시반장이 정식 학급반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문제는 임시반장 기간이었던 일주일 남짓 동안 수업을 들어오는 선생님들에게 내 얼굴이 각인돼 버렸다는 사실이다.
임시반장 기간이 끝나가던 무렵의 국어수업 시작 전, 인사를 할 때였다. 별안간 담임이 내뱉은 ‘신우가 배우 김우빈을 조금 닮은 것 같다’는 말에 아이들이 일제히 술렁거렸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고개를 쭉 빼고 나를 빤히 쳐다보던 여자애들 무리 여기저기에서 나지막하게 감탄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야, 야 진짜 좀 닮은 것 같다! 그치?“
“어머, 그러네!”
물론, 아니라는 반응들도 있었다. 그러다 송이 입에서 ‘짝퉁 김우빈’이라는 표현이 튀어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송이가 던진 표현은 내 별명이 되어 버렸다. 기대하지 않았던 관심들에 불안한 마음이 일었다. 안전한 항구 귀퉁이에 정박하고 있다가 파도가 이는 바다 한가운데로 내몰리는 기분이 이런 걸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할머니가 들으면 무릎을 탁, 치며 좋아할 만한 일이기도 했다. 송이는 그날 이후로 내 이름은 완전히 잊은 듯 나를 ‘짝퉁 김우빈’이라고 칭하더니, 이내 그것도 귀찮다며 ‘짝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체육시간 짝피구를 한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송이와 진호가 짝을 이루고, 내가 반대편에서 먼저 공격을 하게 되었다. 예전부터 공을 던지는 내 기술엔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내가 던진 공은 속도와 방향이 어우러지지 않는다. 내 손을 떠난 공은 무서울 정도로 빠른 속도를 자랑했지만, 목표물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을 향해 곧잘 날아가곤 했다. 속도를 줄이면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공이 날아갔지만 왠지 난 그 속도를 포기하기 싫었다.
인생에서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문구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소소한 경쟁의 자리에서 별안간 모습을 드러내는 내 승부욕은, 일단 강하고 세게 던지고 보자는 쪽으로 발동했다. 이날도 어김없이 그랬다. 상대편 몸을 맞고 내 발밑으로 흘러나온 공을 힘껏 던졌을 때 내겐 송이를 맞추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었던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없었다. 나는 송이 옆 커플 쪽으로 공을 날렸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공은 진호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고, 하필이면 그 순간 진호의 스텝이 엉켜버렸고, 공은 그대로 송이의 면전을 덮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송이의 비명소리가 체육관으로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송이의 코에서 빨간 액체가 흘러나왔다. 송이가 손등으로 얼굴을 훔치더니 “악! 피…!”라고 소리를 지르며 내 쪽을 쏘아봤다. 경기는 잠시 중단됐고, 졸지에 죄인이 된 나는 안절부절못한 채 제자리에 잠시 멈춰 서 있다가, 천천히 송이 쪽으로 다가갔다.
“괜찮아? 미안해. 그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짝퉁! 너, 뭐야?!”
송이가 손등으로 피를 닦아내며 소리쳤다. 비릿한 피 냄새가 내 코끝을 스쳐 지나갔고 그 순간, 속이 메슥거려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선생님의 지시로 송이를 데리고 보건실에 다녀왔다. 진호도 함께 가겠다며 자진해서 따라나섰다. 진호의 얼굴에도 미안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체육관에 있었을 때는 당황해서 보지 못했는데 보건실에 와서 보니 송이의 광대뼈 쪽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보건실에 있으려니 약품 냄새 때문인지 메슥거리던 속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보건선생님은 송이의 코피가 멈추도록 지혈을 하고, 멍이 든 위치에 얼음찜질을 했다.
“이번 시간은 도저히 수업을 받을 수 없겠어.”
송이가 살짝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로 보건실 한 편에 있는 침대로 향했다. ‘다리도 다쳤었나?’ 송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나를 바라보더니 손끝을 까닥이며 오라는 손짓을 취했다. 내가 앞으로 다가가자 송이는 날이 잔뜩 선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토록 사나워 보이는 여자의 눈을 마주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미안함과 두려움의 감정이 교차했다.
“너, 나한테 복수한 거지?!”
송이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그런 거 절대 아니야. 실수야, 실수. 진짜 미안해!”
나는 손을 크게 내저으며 항변했다.
“짝퉁 너, 그거 알아?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나, 이대로는 그냥 못 넘어가겠는데? “
“그럼…?”
내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너희, 우리 가게에 오늘 치킨 먹으러 올래? 싸게 해 줄게. 나도 송이한테 조금 미안하다.”
내 표정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진호가 끼어들었다.
“덩치는 왜 그리 작아가지고….”
송이가 짜증 섞인 표정을 지어 보이며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송이는 오히려 진호를 원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조용히 있던 송이가 별안간 목소리를 높여 말을 이었다.
“짝퉁, 너 나한테 미안하면 오늘 치킨 쏴. 나 부상이 심해서 몸보신 좀 해야겠으니. 그렇지만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여자한테 얼굴이 얼마나 중요한데. 특히 나처럼 미모가 받쳐주는 얼굴에 스크래치라도 생기면 치명적이라고!”
송이의 말에 진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누르니 내 입 꼬리가 저절로 씰룩였다. 송이가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송이 재미있어. 이름도 재미있고…. 이름이 ‘두 송이’ 였으면 더 예뻤을 텐데, 한송이라서 이 정도이네?“
진호가 눈치 없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때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송이의 매서운 손바닥이 진호의 등 뒤로 날아들었다. 체육관에서 울렸던, 공이 부딪히는 소리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무지막지하고 강렬한 진동을 울리며. 나는 입꼬리를 슬며시 가다듬었다.
진호가 일하고 있는 ‘봉봉치킨’은 삼원빌라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주택들이 밀집한 지역 한가운데, 조그만 동네서점을 마주한 채 빛바랜 간판을 이고, 조금 초라하지만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장은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었는데, 진호의 성실함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진호는 주로 주문을 받고 홀 서빙을 하지만 중간중간 배달을 나가기도 한다고 했다. 진호는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지 반년 정도 되었으며, 그동안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 적금을 붓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인생을 씩씩하게 일궈나가고 있는 진호의 모습이 어른스러워 보였다. 사장은 진호의 친구가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하며 한 마리도 더 돼 보이는 치킨을 내왔다. 다행히 아직은 매장 내 손님도, 들어오는 주문도 별로 없어 보였다. 인상 좋아 보이는 사장의 배려로 진호는 나와 송이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치킨을 뜯으며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호가 제일 먼저 치킨집 사장이 되고픈 자신의 꿈에 대해 얘기했다. 고개를 숙인 채 진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이가 갑자기 내 쪽을 돌아봤다.
“짝퉁, 넌 꿈이 뭐야?”
실로 오래간만에 받아본 꿈에 관한 질문이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내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난 으레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직업—교사, 의사, 변호사 등—의 종류를 대곤 했었다. 그런데 사춘기에 들면서 꿈과 그 꿈이 만들어 줄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냥 모나지 않은 돌처럼 평범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둥글게 굴러가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글쎄. 그냥, 남들처럼, 별 탈 없이 사는 거…?”
송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짝퉁 넌, 꿈이 왜 그 모양이야?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최소한 꿈이 하트모양, 별모양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뭐가 그리 밋밋해?”
하트 모양인 꿈은 어떤 걸까? 사랑과 관련된 걸까? 별모양은, 인기 연예인이 되는 건가? 순간 드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어리둥절해진 내 표정을 읽은 건지, 진호가 송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너는 뭐가 되고 싶어?”
“나는… 되고 싶은 건 모르겠고, 하고 싶은 건 많아. 난 말이야, 꿈은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하고 싶은데 아직 못하고 있는 거’, 그게 꿈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하고 싶은 게 있는 한 우리는 계속 꿈을 꿀 수 있는 거지. 꿈이 꼭 하나일 필요는 없잖아? 하나씩 실현해 나가면서 사는 거야. 그럼 한 해 한 해가 보람 있고 즐겁지 않을까? 행복한 꿈을 계속 꿀 수 있으니까 말이야.”
입술을 잘근거리며 잠시 뜸을 들이던 송이가 말을 이었다.
“생각해 봐. 진호 네가 치킨집 사장이 됐어. 그럼 너의 꿈을 이룬 셈이야. 그렇지만 그다음은, 그다음엔 어떤 기분이 들까? 꿈을 이뤄서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무엇이 되고 싶다’는 한 가지 최종적인 목표가 꿈이 되면 난 꿈을 이루는 게 두려워질 것 같아. 꿈을 이룬 다음 남은 우리의 인생이 너무 초라해질지도 모르잖아…?”
송이의 입에서 폭포의 거친 물살처럼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송이는 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밤새도록 말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우와! 송이 조금 똑똑하네. 무식한 줄 알았는데?”
송이가 진호를 흘겨봤다. 꿈에 대해 열정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송이의 모습이 평소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송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뭘까?’
“뭘 그렇게 쳐다봐? 내가 그렇게 예뻐?”
송이의 물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가 재미있는지 진호가 깔깔 웃으며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짝퉁, 너도 하고 싶은 게 있을 거 아냐?”
“글쎄. “
“저놈의 글쎄! 그럼 질문을 바꿔서, 네가 좋아하는 게 뭐야?”
“글쎄, 음악 듣는 거? “
“그 이상야릇한 음악?”
송이가 말하는 ‘이상야릇한 음악’은 재즈를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송이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내 쪽으로 얼굴을 조금 들이밀었다.
“그리고, 날아가는 비행기 소리.”
“비행기라… 비행기 타 본 적은 있어?”
“아니.”
“그럼 공항에 가본 적은?”
“아니, 없어.”
“그럼 넌, 공항부터 한번 가봐야겠다. 내가 특별히 다음에 같이 가 줄게. 난 여러 번 가봤거든.”
“나도 같이 가. 나도 비행기 보는 거 좋아해.”
진호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송이가 진호를 힐긋 돌아보는가 싶더니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앞으로 한 달 동안 짝퉁 넌 내 조수 좀 해줘야겠어. 이런 얼굴로 내가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잖아, 너. 때.문.에?!”
송이가 짙어가는 여름철 녹음처럼 파래져가는 멍을 짚어 보이며 말했고,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