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재활용품을 줍고 다닌다. 이웃집 김 씨 아저씨에게 얻었다며 1년 전 귀갓길에 낡은 손수레 하나를 끌고 왔다. 할머니는 오랜 세월 시장에서 두부와 콩나물을 팔았지만, 허리수술 후 미야마저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자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억척스럽게 살아왔던 할머니는 이런 상황을 무척이나 갑갑해했다. ‘늙은이가 집에만 붙어 있으면 죽을 날 받아놓은 사람처럼 살게 된다. 나이 들어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일을 하며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할머니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장사를 그만두고 집에 머무른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할머니는 결국 고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야를 태운 수레와 함께 슬그머니 집을 나선 후, 골목길 이곳저곳을 누비며 돈이 될 법한 물건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고모도 나도 할머니의 ‘재활용품 줍기’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눈을 크게 뜨고 길을 다녀 봐도 내 눈에는 고물상에서 반길 만한 물건이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고모와 나의 기대와 다르게 할머니의 재활용품에 대한 열정은 미야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 점점 더 불타올랐다.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의 수레에 실려 오는 물건의 가짓수가 하나둘씩 늘어갔다. 처음에 주로 신문이나 종이박스들로 채워졌던 수레가 나중에는 그릇이며 플라스틱, 고철, 심지어는 버려진 소형가전이나 가구들로 빈틈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신기했다. 굽은 허리와 불편한 다리로 할머니는 그 많은 물건들을 도대체 어디서 다 찾아오는 걸까? 빠듯한 집안 형편이지만 할머니가 고물을 내다 팔아야 먹고살 수 있을 만큼—사실 할머니의 하루 수입이라고 해봐야 미야의 간식 값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의 상황은 아니었다. 매달 나오는 양육보조금과 고모의 수입으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고모와 나는 각기 다른 이유로 할머니를 만류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고모의 경우에는 미야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재활용품으로 가득한 수레를 끌고 어린이집에 미야를 데리러 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어린이집 교사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고모는 동네 창피하다며 화를 냈다. 고모가 화내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혹여 다치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 골목길에는 곡예 운전을 하는 배달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이 빈번하게 출몰한다. 사실, 재활용품을 줍고 다니는 할머니가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 설명하기 힘든 묘한 죄책감까지 일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할 테니 제발 위험한 일 하지 말라고 할머니를 말렸다. 그러나 할머니는 공부할 생각을 해야지 무슨 아르바이트냐며, 도리어 내게 호통을 쳤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생각도 변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꼬깃꼬깃 접힌 용돈을 쥐어주며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표정을 짓는 할머니, 길모퉁이에서 발견한 조그만 종이상자 하나에도 얼굴 가득 빛이 나는 할머니, 낡은 손수레를 우리 집 보물처럼 다루는 할머니를 더 이상 말릴 자신이 내겐 없었다. 이따금은 할머니가 나보다 버려진 빈 상자나 쇠붙이들을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할머니에게 재활용품들을 줍는 행위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에게 그건 인생의 낙이자 삶을 지탱해 주는 동아줄 같은 거였다.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트럭에서 나오는 빈 종이상자를 쟁취하기 위해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가 늘어갔다. 새벽이나 늦은 밤 불쑥불쑥 수레를 끌고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미야를 돌보느라 부족한 시간을 그렇게라도 메워야 한다고 말하며. 그러고도 할머니의 열의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길거리 가판대에 비치되어 있는 ‘무료 나눔 소식지’를 뭉텅이로 집어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를 목격한 동네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졌고, 결국 인근 경찰서에 불려 가고 나서야 할머니의 ‘소식지 절도 행위’는 끝이 났다.
학교에서 청소를 마치고 늦게 귀가한 날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 어귀에 진호의 오토바이와 비슷한 오토바이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오토바이를 발견한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오토바이 주변으로 향했다. 오토바이에서 몇 미터쯤 떨어진 근처 길가에 기대어 있는 할머니의 손수레가 보였다. 손수레 앞쪽으로 폐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불안해졌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나는 재빠르게 골목길 이곳저곳을 살폈다.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손수레 근처가장 가까운 편의점으로 들어가 혹시 골목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었다.
“글쎄요. 이제 막 교대하고 들어와서 잘 모르겠네요. “
점원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답했다. 불안한 마음이 머릿속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다행히 편의점을 나서는 순간 손수레 옆으로 할머니와 진호의 모습이 보였다. 진호는 할머니를 부축한 채 잠시 얘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바닥에 흩어져있는 폐지들을 줍기 시작했다. 당황한 표정으로 서있던 할머니가 나를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신우 핵교 댕겨 왔나?”
“할머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안도하는 마음과 달리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 신우 너의 할머니야?”
진호가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은 거야, 무슨 일이야?!”
나는 진호의 물음에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고 할머니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별 거 아니라. 걱정할 거 읍따.”
“할머니가 차 피하시다가 넘어지셨어. 여기, 위험해.”
진호는 마치 할머니가 본인의 할머니라도 되는 것처럼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둘이 친구인갑네? 신우 친구가 참 착하네. 할머니 손 쪼매 다쳤다고 요 앞 약국 가서 요렇게 밴드도 사다 붙여주고. 참 고맙네.”
할머니는 밴드 붙인 손을 들어 보이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바보. 다치고도 뭐가 그리 좋다고….’
“신우야, 어린이집 가서 미야 좀 데리고 온나. 할매가 지금 정신이 쫌 읍네.”
할머니는 뜻밖의 사고에 많이 놀란 눈치였다.
“그카고, 이 친구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 캐라. 신세 졌는데 그냥은 몬 넘어가제.”
이 말을 한 후로 할머니는 진호에게 우리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여러 차례 권유했다.
“할머니, 안 돼. 진호 아르바이트 가야 해.”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애쓰며 내가 말했다.
“난, 괜찮아. 오늘 아르바이트 없어. 사장님 일이 있어서 가게 쉬어.”
진호는 그리 눈치 빠른 친구 같지는 않아 보였다. 결국, 집요하게 권유하는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의 제안에 호의적 반응을 보인 진호 덕분에 어색한 저녁 식사 자리가 마련되고야 말았다.
할머니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나와 진호가 미야를 맡았다. 신기하게도 미야는 진호 앞에서 낯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뒤로 넘어갈 듯 깔깔거리며 눈빛을 반짝여 보였다. 진호는 아이 몇 명을 키워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미야를 다루었다. 미운 네 살의 미야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귀엽고 어여쁜 미야가 내 눈앞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진호가 미야를 번쩍 들어 안더니 내게 방 구경을 시켜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미야를 보느라 내 수고를 덜어주는 진호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구경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는 조그만 방이지만, 정리가 잘 되어있는 상태라 그다지 창피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와 함께 방으로 들어온 진호는 방안을 한번 쓱 둘러보더니 벽 한쪽에 붙어있는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사진들이 진호의 시선을 끈 것 같았다.
“신우 너, 아기 때 엄청 귀여웠다. 베트남 왔으면 인기 좋았겠다. 지금도 그렇지만….”
진호가 말끝을 흐리며 나를 돌아봤다. 난 이번에도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그저 미소만 지어 보였다.
“이 사진은… 한국 아닌 것 같은데? 내 고향 가면 이것 비슷한 풍경 볼 수 있는데….”
진호의 손끝이, 스콜이 내리는 열대우림의 사진을 가리키고 있었다.
“너, 베트남 어디에서 왔어?” 내가 물었다.
“베트남에 아는 도시 있어?” 진호가 되물었다.
“응. 하노이… 호찌민….”
여기까지 대답하고 나자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지리 시간에 배웠던 온갖 도시 이름들을 기억해내려 해 봐도 안갯속에 갇힌 듯 희미할 뿐이었다.
“혹시 ‘따이닌’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난 거기에서 왔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내 고향은 호찌민 근처에 있어. ‘까오다이교’라는 종교가 태어난 곳이야.”
진호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고 난 후 진호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연습장 위에 연필로 사람의 눈처럼 생긴 기묘한 느낌의 문양을 그려서 내게 보여주었다.
“이거, 까오다이교 상징이야. 교회로 치면, 십자가 같은 거야. 늘 안전하게 나를 지켜주는….”
그러고 보니, 진호의 오토바이에 핑크색으로 새겨진, 비슷한 문양을 본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거 알아? 너 나한테 질문하는 거 처음이야.”
“내가, 그랬어…?”
“응. 그런데, 네가 나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니 기분 나쁘지 않아. 보통 다른 애들은 약간 이상한 표정으로 나한테 물어봐. 고향 어디냐고. 기분 나쁜 눈빛 있어. 그런데 신우 너는…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 같아. 나쁜 생각 하나도 없는 ‘착한 질문’ 느낌이야.”
진호가 말한 ‘착한’의 의미는 정확히 어떤 것일까 곱씹어보자, 어쩐지 진호의 오토바이에 있던 문양이 다시금 떠올랐고, 호기심이 일었다.
“그런데 너, 학교에 매일 오토바이 타고 등교해?”
“아… 알고 있어. 여기, 학교에서 싫어하는 거. 베트남에서는 고등학생들 오토바이 많이 타고 학교 가는데…. 걱정하지 마. 매일 타고 다니는 거 아니고, 가끔이야. 선생님들한테 안 들키게 조심해.”
진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늘려서 활용하려는 듯 천천히 얘기를 이어갔다. 사실 난 진호를 걱정해서 물어본 게 아니었다. 그냥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좀 의아했다. 며칠 전 하굣길에서의 진호는 결코 안 들키게 조심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호에게 얌전히 안겨있던 미야가 바닥으로 내려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진호는 조심스럽게 미야를 내려놓은 후, 연습장을 몇 장 더 사용해도 괜찮은지 내 허락을 구했다. 그러고는 바닥에 엎드려 미야가 좋아할 법한 공룡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솜씨가 제법 괜찮아 미야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해 보였다.
“너, 아이들을 좋아하나 봐?” 내가 물었다.
“응, 난 아기가 좋아. 나중에 결혼하면 아기 많이 낳을 거야.”
진호의 말끝이 희미하게 늘어졌다. 낯선 타국 생활에 주눅이 들어 그런 걸까, 나는 어렴풋이 짐작했다. 진호는 그 후,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진호는 5년 전 한국인과 결혼한 엄마를 따라 한국에 왔다고 한다. 언어적 문제 등으로 학교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 학교를 1년 유예한 진호는 나보다 한 살 위다. 현재 진호의 어머니는 시 외곽에 있는 주물공장에서 일하고, 양아버지는 농사를 짓고 있다. 부모님의 나이 차는 무려 스무 살이나 되는데, 진호의 말에 의하면 부모님이 비록 자주 다투기는 하지만 서로를 아낀다고 한다. 진호는 성인이 되면 한국인으로 귀화 신청을 할 예정이지만, 최종적으로는 베트남으로 돌아가 치킨집 사장이 되는 게 꿈이다. 진호의 생각에, 치킨만큼은 한국이 세계최고로 맛있고, 베트남에서 치킨가게를 차리면 돈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란다. 그러고 보면 진호의 진짜 꿈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인 것 같다.
진호는 미야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마음도 함께 사 버린 것 같았다. 할머니는 콩나물국에 대한 진호의 과한 칭찬과, 어눌한 듯하면서도 친근한 특유의 말투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물론, 신세 진 사람으로서 보답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진호를 대하는 할머니의 태도에 작용했으리라. 진호는 할머니에게 다음에 또 놀러 와도 괜찮겠냐며 눈치 없이 질문을 던져 나를 당황하게 만들더니, 할머니의 긍정적 대답이 떨어지자 환한 표정으로 내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날 밤, 창밖으로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 소리가 자작하게 들려왔다. 침대에 누워, 빗소리와 날아가는 비행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진호가 했던 질문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다 불현듯 한 생각에 이르렀다. 진호는 그 많은 질문들 속에서 내게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부모님은 어디 계신 거냐고. 할머니와 함께 사는 나에 대한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내게 부모님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그들에게 그 질문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만큼 중대해 보였다. 마치 질문에 대한 답이 어느 쪽이냐에 따라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온전히 정해질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