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첫날이다. 이른 아침 고소하게 스며드는 밥 짓는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할머니의 냄새 …. 나는 발끝으로 이불을 천천히 걷어냈다.
“신우 일어났나?”
할머니가 방문을 활짝 열더니 아직 누워있는 내 모습을 살폈다.
“응, 이제 일어나.”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슬며시 빼내며 몸을 일으켰다.
“니 또 음악 듣다가 잤제? 할매가 그카지 말라니까. 귀 나빠진대이.”
할머니는 늘 내 청력을 걱정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내 귀를 틀어막고 있는—할머니는 그렇게 표현한다—이어폰을 무슨 요물 쳐다보듯 한다.
내겐 음악을 들으며 잠드는 버릇이 있다. 음악의 장르를 가리지는 않는 편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음악 장르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재즈다. 할머니는 재즈가 손자의 청력을 해치고 정신을 어지럽힐 해괴망측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할머니는 내게 평범한 음악을 들으라고 한다. 내 또래 남자아이들이 즐겨 들을 만한 가요나 팝송을 말하는 걸 테다.
“밥 해 놨으니까 얼른 나오래이.”
“아침 안 먹어도 돼. 학교 가서 급식 많이 먹을게.”
“야가 뭐라 카노? 급식은 급식이고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 무야지. 그래야 밥심으로 학교 공부 잘하고 키도 쑥쑥 크제. 잔말 말고 얼른 나오래이!”
할머니와 벌이는 아침 실랑이에서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나는 이내 단념하고 부엌으로 나섰다. 할머니는 오늘도 미야에게 아침으로 콩나물국에 두부무침을 먹이고 있었다. 미야는 할머니의 두부 반찬이 질리지도 않는지, 조그만 입으로 오물오물 야무지게 씹으면서 어설픈 숟가락질로 콩나물국을 뜨고 있었는데,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흘리는 게 더 많은 것 같았다.
“또 두부에 콩나물국이야?”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두부랑 콩나물은 자주 먹으면 좋대이. 신우 콩나물 많이 먹으래이. 키 쑥쑥 크게.”
“콩나물 먹는다고 키가 쑥쑥 커? 그리고 할머니 나 이제 키 그만 커도 돼.”
“뭐라 카노?! 더 커야제. 모델들 맹키로 더 커야제. 우리 신우가 한 인물 한다 아이가, 키 쪼매만 더 크면 모델해도 된다 아이가. 나는 그 누꼬… 그래, 김우빈이 가가 참 멋있드마. 그라고 보니, 신우 니 김우빈이 쪼매 닮았대이. 헤헤”
할머니는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내며 흐뭇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우리 할머니 참, 눈도 높다.
작년 신체검사 때 내 키는 정확하게 180.7 센티미터였다. 나는 옆에 있던 핸드폰에서 김우빈의 프로필을 검색했다. 공식 프로필에 기재된 그의 키는 188 센티미터. 할머니의 기대대로라면 내겐 아직 7센티미터도 더 넘게 커야 할 키가 남아있는 셈이다. 한숨이 흘러나왔다. 내가 앞으로 먹어치워야 할 두부 몇 백 모와 콩나물 수천 가닥이 아직 남아있다는 말일 테니. 할머니가 시장에서 두부와 콩나물 대신 피자와 치킨을 팔았으면 어땠을까? 식사 때마다 밥상 위로 올라올 치킨과 피자. 생각해 보니, 그것도 영 별로일 것 같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은학산 밑자락에 있다. 학생들은 주로 근처 아파트와 빌라에 사는 아이들이다. 여름이면 산 너머에 위치하고 있다는 돼지 도축장에서 날아드는 쿰쿰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려오는 비행기 소리가 정겨운—물론,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곳이다.
학교에서 머지않은 곳에는 운암천이라고 불리는 제법 큰 개천이 있다. 개천 양쪽으로 나 있는, 공항 근처까지 이어지는 산책로와 자전거 길은 꽃이 흐드러지는 봄, 가을이면 먼 곳에 있는 사람들까지 불러들인다. 나도 햇살 좋은 날 오래도록 걷고 싶어지면 이곳을 찾곤 한다. 개천 근처에는 논밭이 널따랗게 펼쳐져있고 그 사이로 드문드문 오래된 농가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 올라오면 아파트와 상가가 즐비한 낯익은 도시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 겨울이 물러나지 않은 등굣길에 오른 아이들의 어깨가 움츠러들어 있었다. 새 학년을 맞은 표정들에 기대감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교실에 들어서니 아직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나는 창가 옆 최대한 구석진 자리로 가서 앉았다. 가방을 옆자리에 올려놓고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이내 빌 에반스(Bill Evans)의 「마이너리티(Minority)」가 흘러나왔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교실로 들어섰다.
낯익은 얼굴과 낯선 얼굴들이 뒤섞여 있었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빈자리를 채워 나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옆자리가 마지막으로 남았다. 시계를 보니 8시 49분. 이제 1분 후면 교실 입실을 알리는 종이 울릴 것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오늘의 시간표를 다시 확인했다. 1교시는 국어시간이다.
그때였다. 요란하게 교실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조그맣고 낯선 얼굴 하나가 교실 뒤편으로 황급히 들어왔다. 얼마나 뛰었던 건지 추운 날씨에도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긴 머리카락은 마치 해변에 늘어져있는 잔 미역줄기들처럼 얼굴 여기저기 가닥가닥 붙어있었다. 그 아이는 가쁜 숨을 내뱉으며 교실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내 옆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의 뛰다시피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 여기 앉아도 되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건네는 것치고 너무 당당한 말투였다.
당황한 나는 그 아이를 올려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재킷에 달린 빨간색 명찰 위 ‘한송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송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거렸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송이가 오른편으로 손을 크게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그 가방, 좀 치워 달라고.”
“아….”
가방을 내 편으로 옮기자 송이는 털썩 의자에 앉더니 어깨에 걸치고 있던 가방을 열어 책들을 책상 서랍 속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조례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교실 앞문이 빠른 속도로, 씩씩하게 열렸다. 새 담임은 얼굴이 하얗고 체구가 아담한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다. 체격에 비해 힘 있어 보이는 동작과 걸음걸이가 왠지 좀 어색해 보였다. 담임은 출석을 확인한 후 칠판에 본인의 이름 세 글자를 큼직하게 적었다.
“큭. 나보다 이름 더 특이하네.”
옆에서 송이가 키득거리며 중얼거렸다. 어색해 보였던 첫인상과는 다르게 담임의 이름은 담임과 꽤 어울리는 조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임은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후 핸드폰을 자원해서 걷어 줄 학생이 있는지 물었다. 복식호흡을 하는 듯 높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저요! 제가 할게요, 선생님.”
송이 앞에 앉아있던 남자애가 손을 번쩍 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국적인 느낌을 풍기는 외모였다.
“좋아요. 이름이 뭐죠?”
“김진호입니다.”
또박또박 말하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좀 어눌한 억양이었다.
담임이 교실을 나가고 진호가 핸드폰을 걷는 동안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나는 다시 음악을 재생시켰다.
“얘, 넌 아까부터 뭘 그렇게 듣는 거야?”
송이가 내 오른편 귀에 대고 크게 얘기하더니, 이어폰 한쪽을 잽싸게 뽑아 들고 자신의 왼쪽 귀에 꽂았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악은 뭐야? 너 상당히 독특한 취향이구나, 생긴 건 별로 안 그래 보이는데?”
송이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때 핸드폰을 걷고 있던 진호가 송이 앞에 핸드폰 수거함을 들이밀었다.
“핸드폰 내.”
“조금 있다가 낼게. 저기 끝에서부터 걷어.”
송이가 턱 끝으로 4 분단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지금 내.”
진호가 천천히,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송이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진호를 바라보며 내 핸드폰을 수거함 한구석으로 슬며시 밀어 넣었다.
잠시 진호의 얼굴을 올려다보던 송이의 시선이 진호의 교복 재킷에 붙어 있는 명찰 쪽으로 향했다.
“김진호라… 느낌은 ‘똠양꿍’, 뭐 이런 쪽인데…”
진호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잠시 아무 말 없던 진호가 이내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너, 무식하구나? 나는 음식 아니고 사람이거든. 그리고 똠양꿍은 태국 음식이고, 나는 태국 사람 아니야.”
“그럼…?”
“나는 베트남에서 왔어.”
“그거나, 그거나.”
“그거나가 그거나가 아니다! 만약에 내가 너보고 ‘한송이’ 아니고 ‘짜장’처럼 생겼다 그러면, 너 기분 좋아?”
풉, 하고 웃음소리가 내 입에서 새어 나왔다. 송이가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내가 너보고, 언제 똠양꿍처럼 생겼다 그랬냐, 그냥 느낌이, 그쪽 같다고 말한 거지….”
“그거나, 그거나.”
진호는 적절한 지점에서 송이가 자신에게 한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고 있었다. 송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송이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듯 입을 씰룩이다가 이내 포기한 듯 서랍 속에 숨겨져 있던 새하얀 핸드폰을 꺼내 전원 종료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닫히기 전 핸드폰 바탕에 걸려있던 사진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날개를 활짝 펼친 새의 모습이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표지에서 본 것 같은 사진. 한편으로는 힘차게 활강하는 비행기의 자태 같기도 한. 의외였다. 여자애들은 대개 자신들이 흠모하는 아이돌 사진이나 앙증맞은 캐릭터 그림으로 핸드폰 바탕화면을 도배한다. 최소한 내가 봐왔던 주변 여자애들은 그랬다. 휴대폰의 전원이 꺼지는 동시에 진호가 단호한 손놀림으로 송이의 핸드폰을 낚아채 수거함 한 구석에 안착시켰다. 진호가 옆 분단으로 발길을 돌리자 송이가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안 무식한데….”
내 의지와는 다르게 또다시 내 표정에 미소가 감돌았나 보다. 송이가 나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말했다.
“너, 아까부터 자꾸 기분 나쁘게 웃는데, 복수해 줄 거야!”
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송이가 목소리를 높여 한 마디 덧붙였다.
“너, 핸드폰 안 냈지? 왜 아직도 음악 듣고 있어?!”
이어폰을 끼고 있었지만 사실 그 순간 음악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굳이 내 상황을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주머니 속에 있던 MP3 플레이어를 송이 눈앞에 들이밀었다.
“너, 진짜 특이하구나?!”
송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담임의 담당 과목은 국어다. 담임과의 첫 시간에는 대체로 임시반장과 학급의 여러 가지 것들을 정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송이가 나를 임시반장으로 추천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송이가 좀 전에 말했던 ‘복수’가 이런 거였다면 어떻게든 변명이라도 해봤을 텐데, 하필이면 임시반장을 하겠다고 자원하는 아이도, 더 이상의 추천도 없어 나는 엉겁결에 임시반장으로 낙점되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타이틀 같은 걸 달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게 타이틀은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장식품처럼 느껴졌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불필요한 무게를 더하고 시선만 더 잡아끄는 그 무엇.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다. 어디에 갖다 놓아도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무채색으로.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학창 시절을 잘 버텨왔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이 아이로 인해 내가 지켜왔던 것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완전히 싫지만은 않은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얼까?
학교를 마치고 중앙 현관을 벗어나자 빠른 걸음으로 교문 쪽으로 향하는 송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교문을 통과한 송이는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주택가가 있는 오른편이 아닌 교문 왼편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교문 왼쪽으로는 꽤 가파른 비탈길이 나 있고 그 길은 학교 뒷산으로 이어진다. ‘이 시간에 혼자 어디로 가는 걸까?’ 학교 뒷산 어딘가에 작은 절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송이가 그곳으로 갈 것 같지는 않았다.
교문을 나서 비탈길을 올려다보니 이미 송이는 풀숲 사이로 사라진 후였다. 나는 잠시 뒷산 쪽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뒤 몸을 돌려 집을 향해 내려갔다. 종례가 끝난 후 빛의 속도로 흩어진 아이들은 이미 저만치 아래에 삼삼오오 무리 지어 가고 있었다. 주택가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스타카토처럼 짧게 끊기는 경적 소리가 뒤통수로 날아들었다. 나는 길 가장자리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슬며시 뒤를 돌아보았다. 경적소리의 주인공은 진호였다. 진호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헬멧을 쓴 채 핑크빛 무늬가 새겨진 오토바이를 타고 나를 뒤따라오고 있었다.
“무슨 음악 그렇게 들어, 몇 번이나 불렀는데?”
나는 이어폰 한쪽을 뽑아 든 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나 핸드폰 담당 김진호야. 너, 신우 맞지? 1학년 때 나 너 옆 반이었어. 지나가다 너 여러 번 봤는데….”
“그랬어?”
“응. 집 어느 쪽이야? 같이, 타고 갈래?”
나는 오토바이를 쓱 훑어봤다. 내 덩치를 수용할 만한 공간이 딱히 있어 보이지 않았다. 체구가 작은 진호 혼자 타기에 넉넉한 정도의 크기였다.
“아니, 괜찮아. 그냥 걸어갈게. 가까워.”
“그래? 어디 사는데?”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상대에게 보여주는 지나친 상냥함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호의 그런 면이 신기하게 보이기도 했다.
“저기 아래, 삼원 빌라.”
“아! 나도 거기 사는데….”
진호는 내게서 어떤 특정한 대답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마도 그건, ‘반가워’ 내지는 ‘그럼, 같이 갈까?’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진호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그 순간의 내겐 없었다. 난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호가 얼른 내 눈앞에서 사라져 주기를, 더 이상 내 하굣길을 방해하는 인물이 없기를 바라면서.
“나, 근처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해. 한번 놀러 와. 치킨 싸게 줄게.”
나는 한 번 더 미소를 끌어내며 고개를 끄덕인 후 이어폰을 다시 귀에 꽂았다. 진호가 손을 한 번 흔들어 보이더니 나를 앞서 내려갔다. 다행히 그 이후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