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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Sep 08. 2024

#7 비밀 아지트

 학교 뒤편에는 조그만 개구멍이 하나 있다. 누군가가 학교 뒷산으로 이어지는 수풀 사이에 설치되어 있는 튼튼한 철조망을 억척스럽게 뚫어놓은 지점이 바로 그곳이다. 쉽게 눈에 띄지 않아 나도 우연한 기회에 발견하게 되었다.


  개구멍을 처음 봤을 때, 텔레비전에서 봤던 영화 <쇼생크 탈출>이 생각났다. 자유가 박탈된 감옥을 탈출하고자 하루하루 성실하게 숟가락으로 바닥을 파내던 그 마음과 비슷한 심정으로 이 철조망을 뜯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학생들에게, 특히 소위 ‘좀 논다’하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철창 없는 감옥처럼 느껴질 테니.     


  중학교 2학년 때 ‘노는 아이’들과 가깝게 지냈던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 사춘기의 정점이었던 것 같다. 그 시작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무엇이든 밀어내고 싶어졌던 어느 순간부터가 아니었을까.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나는 어른들에게 ‘기특하다’, ‘잘 컸다’, ‘어른스럽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다. 친구들과 별 다를 것 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유독 나만 그런 얘기를 듣는 게 나는 의아했다. 왠지 그 칭찬의 앞에 ‘부모도 없는데’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것 같았고, 어른들은 내가 엉뚱한 생각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게 마땅하다 여기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고 칭찬이 듣기 싫었던 건 아니다. 어린 마음에 칭찬을 들으면 그래도 내가 좀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달라졌다. 내 주변의 상황이 바뀐 건 없었음에도 꿈을 깬 자리에서, 사람들로 가득한 길을 가다가, 아이들의 소음으로 왁자지껄한 교실 한가운데서 불현듯, 나는 세상에서 완전히 혼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져 들었다. 그즈음 사람들이 내게 기대했을 법한 삐딱한 마음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그때 나를 향해 손 내미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말했다. 함께 놀자고, 우리와 함께 놀면 재미있을 거라고.


  그 친구와 함께 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처음 흥미롭게 느껴졌던 일들도, 어쩌면 내 빈 공간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결국엔 시들하게 끝이 났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외로움은 그렇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결국 나 자신의 몫이었다.


  관계 속에서도 내 마음을 구할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을 때 낯선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어느 날, 나는 길을 가다 조그만 카페의 열린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리듬을 타고 흐느적거리며 울리는 소리가 애잔했다. 순간 마음이 느슨해지고 편안해졌다. 분명 구슬픈 음악이었는데,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내 등을 가만히 토닥여주는 것만 같았다. 내 마음과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무엇인가가 빠져나가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에, 차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 음악이 재즈였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비교적 무난하게 사춘기의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겐 한 가지 남은 문제가 있다.


  담배. 난 이 녀석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따금 학교 개구멍을 찾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날, 나는 오래간만에 점심 급식을 생략하고 개구멍을 찾았다. 봄날의 풀들이 무성하게 우거져 비밀스럽게 무언가를 하기에 좋은 날이었다.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숨겨온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숨을 깊숙이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뿜자, 담배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라 하늘로 향했다. 키 큰 나무들 위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의 온기를 뺨으로 느끼며 초록빛 잎들이 새겨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온몸에서 긴장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기분 좋게 나른해지는 오후였다.


  잠시 혼자만의 평화를 즐기고 있던 순간, 풀숲 어디에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청설모라도 지나가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났을 때 나는 위를 올려다봐야 했다. 내 시선이 향한 곳에 진호가 서 있었다. 손끝에 담배를 든 채 연기를 내뿜고 있던 나를 진호가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우와! 신우, 너 담배 피워?”


  그 물음에 아니라고 결코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응. 그런데, 넌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우와 대단하다. 티 하나도 안 났는데… 그거, 비밀인 거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호가 장난기 어린 미소를 보였다.


  “신우 비밀 알았으니 그럼 내 비밀도 알려줘야겠다. 저기 뒤에 내 보물 숨어 있어. 그래서 보물 잘 있는지 보러 왔어.”


  비밀을 알려주겠다는 말과 달리, 신이 난 듯한 진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목소리를 낮추라고 말하려 했지만, 진호의 밝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리고 각종 모험 이야기에 등장하는, 비밀의 장소 깊숙한 곳에서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보물들이 생각났다.


  “무슨, 보물…?”

  “나의 오토바이. 저 뒤로 가면 학교 밖 도로와 연결되는 통로 있어. 거기 숨겨 두면 아무도 몰라…. 나도 신우 너 비밀 지킬 테니까 신우도 내 비밀 지켜줘.”


  진지하게 말하는 진호의 모습에 결국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학교에서 진호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걸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곳에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겠지만. 진호가 종종 학교에 일찍 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우리 비밀 친구인 거다.”


  진호가 곧게 편 새끼손가락을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나도 얼떨결에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내가 말끝을 흐리자, 진호는 다음 말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지난번 근수와의 일, 왜 그런 거야? 너 혼자서 애들 상대로… 너도 참 겁이 없다?”


  나는 입으로 동그랗게 연기를 만들어 보이며 말했다. 진호가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연기 속에 손가락을 거는 시늉을 했다.


  “그때는 애들 때문에 얘기 못했는데… 그 할머니, 신우 너의 할머니였어.”


  명치를 세차게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교실에서 진호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런 거였어…?”


  진호가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너 표정이 안 좋아. 내가 잘못 얘기했지?”

  “아니야….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소리 질러서 미안해.”

  “전에 사과했잖아. 안 해도 돼. 신우 너는 사과 너무 잘해. 다른 애들은 안 그런데….”


  진호한테 미안하고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화도 났다. 나는 그 화가 할머니에게로 향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날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에게 분풀이하듯 내 감정을 쏟아냈다. 그런 꼴 당하지 않게 재활용품 줍는 것을 그만두라고. 그런 내게 할머니는 오히려 미안해하며 말했다. 아무리 푼돈이라도 정직하게 벌어 미야와 내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 때 할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애들에게 담배를 사다 주는 일 따위는 절대 없을 테니 걱정 말라고.      


  급식을 마친 아이들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진호와 나는 아이들이 몰려나오기 전 황급히 개구멍을 다시 빠져나왔다.


  이미 교실은 급식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들로 어수선했다. 송이도 개중 한 명이었다. 책을 뒤적이고 있던 송이가 교실로 들어서는 나와 진호를 돌아보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너희 둘 싸웠냐? 둘 다 표정이 왜 그래?”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답했다.


  진호는 웬일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슬며시 이어폰을 꺼내 들었다. 송이가 내 손에서 이어폰을 뺏더니 자신의 손에 쥐었다.


  “가뜩이나 춘곤증 때문에 힘 빠지는데 너까지 왜 이렇게 무기력해 보이냐? 그리고 음악 적당히 좀 들어. 남자새끼가 매일 음악에 처박혀 가지고는. 쯧.”

  “이리 줘!”


  이어폰을 힘주어 낚아채자, 송이의 얼굴에 낯선 표정이 떠올랐다.


  “너, 오늘 좀 이상하다?”

  “피곤해서 그러니까, 관심 좀 꺼 줄래?”


잠시 송이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따 나 서점 갈 건데 같이 가자. 마지막 부탁.”


  순간 다른 사람이 된 듯, 송이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나긋나긋해졌다.


  “미안한데, 오늘은 안 되겠어.”


  송이가 내 표정을 살피며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등을 홱 돌려 자리로 돌아갔다. 옅은 바람이 이는 동시에 희미한 샴푸향이 코끝을 스쳤다. 송이의 뒷모습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음악을 재생시킨 뒤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한 번의 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힘을 다한 파도가 모래알을 밀어내듯, 잔잔하게.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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