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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Sep 09. 2024

#8 운암천 살인마

  사건이 발생한 건 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운암천에서 저녁 산책을 하던 노부부에 의해 물 위를 떠다니는 수상한 검정 봉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신문기사와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노부부의 말에 의하면, 검정 봉지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뭔가 묵직한 물건이 들어있는 느낌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는 게 이상해 보였다고 한다. 노부부는 즉시 경찰에 신고를 했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물 밖으로 건져진 봉지 안에는, 40대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토막 난 오른쪽 다리가 들어있었다.


  며칠 동안 운암천 일대를 수색한 경찰은 운암천 하류에서 왼쪽 다리도 발견했다. 그러나 몸통과 머리는 발견되지 않았고,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후에야 운암산 중턱에서 약초를 캐던 한 노인에 의해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와 몸통이 발견되었다. 국과수 DNA 분석 결과, 운암산에서 발견된 몸통과 머리는, 운암천에서 발견된 다리 주인과 동일한 여성의 것으로 밝혀졌다.


  그즈음 길고양이들의 사체가 골목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쉬는 시간이면 반 친구들이 살인사건과 죽은 길고양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웅성거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머지않아 기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가방 속에 칼을 숨긴 남자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길고양이들을 죽이고 다니는 사이코패스임이 틀림없다고 사람들은 확신하는 것 같았다. 살인 사건과 동일범일 거라는 의견과 사람을 죽이는 인간은 동물을 시시하게 생각해서 건드리지 않는다는 주장이 부딪혔다.


  급기야는 각종 목격담들이 난무했다. 우리 학교 아이들 사이에서도 이상한 남자를 봤다는 주장들이 흘러나왔다. 골목길 모퉁이에서 남자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도망쳤다는 얘기, 밤늦은 놀이터에서 검정 봉지를 든 수상한 남자가 자신을 한참 노려보고 있었다는 얘기, 심지어 대낮에 학교 근처 빵집에서 남자가 멘 배낭 밖으로 삐져나온 칼을 봤다는 얘기까지.


  그런데 희한하게도, 사람들이 묘사하는 남자의 모습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제각각이었다. 나이대도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했다. 안전하게만 보였던 동네가 위험천만한 곳으로 변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호기심과 흥미로 시작되었던 이야기들은, 시간이 갈수록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해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잡히지 않고 있는 범인 때문에 우리 학교 학생들, 특히 여자 아이들의 불안감도 커져가는 듯했다.


  하지만 송이는 뭔가 달라 보였다, 흉흉한 소문들에도, 학원 수업이 없는 날이면, 송이는 방과 후의 비밀스러운 산행을 멈추지 않았다.


  하루는 송이에게 종교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혹시나 뒷산에 있다는 절에 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송이는 자신은 무신론자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언했다. 종교가 있는 게 아니라면 한두 번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절에 가지는 않을 것이다.

  ‘도대체 송이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 걸까?’


  나는 그런 송이가 불안하고 신경 쓰였다. 어딜 가는 거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을 지나치게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조용히 송이를 뒤따라가 보기로.


  구름이 낮게 깔린 날이었다. 비가 온다는 예보는 없었지만, 곧 비라도 내릴 듯 하늘이 무거워 보였다.


  종례가 끝난 후, 송이는 체육복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송이가 화장실로 간 틈을 타 학교 건물을 빠져나온 나는, 학교 주차장 뒤편 기둥에 몸을 숨기고 송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송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종례를 마친 후 시간이 꽤 지난 터라 하교하는 아이들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 쪽으로 가봐야 하나, 고민이 됐다.


  다시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마음먹은 순간, 체육복을 입고 머리를 질끈 동여맨 송이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건물 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학교를 나선 송이는 빠른 걸음으로 교문 쪽을 향하더니, 내가 예상한 대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산비탈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주차장을 빠져나온 후, 걷는 속도를 높여 송이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간격을 좁혀 나갔다. 다행히 송이는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산을 오를수록 경사가 점점 심해졌다. 나는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송이는 이 길이 익숙한 듯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비탈길을 올랐다. 길 가 곳곳에 자리 잡은,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들이 적막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경사 길을 오르던 송이가, 무덤 뒤편을 지나 수풀이 우거진 쪽으로 방향을 바꿔 속도를 높였다.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날씨 탓인지 수풀에는 벌써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다.


 ‘여자애가 겁도 없이….’

  머릿속에 불현듯 불길한 상상이 스쳤다. 산, 무덤, 젊은 여자, 그리고 길 잃은 남자.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구미호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러자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송이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역시 지나친 상상력은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현실로 되돌아오기 위해 잠시 한 눈을 팔던 사이, 송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잽싸게 나무 뒤로 몸을 숨긴 채 밭은 숨을 내뱉었다.


  무언가를 감지한 듯, 슬그머니 몸을 돌린 송이가 미동도 없는 자세로 내 쪽을 응시했다. 그렇게 몇 초쯤 흘렀을까.


  “누구야? 나와!”


  송이의 목소리가 숲을 울렸다. 나는 몸을 웅크리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부터 뒤따라 온 거 다 알아. 얼른 나와!”

송이의 표정을 보니 숨으려 애쓰는 것은 더 이상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어… 어떻게 알았어?”


  나는 최대한 천천히 송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짝퉁, 너였어? 왜 몰래 사람 뒤는 밟고 그래, 기분 나쁘게?”


  이렇게 말하면서도 송이는 나를 보고 안심하는 눈치였다.


  “미안. 궁금해서….”

  “뭐가 궁금한데?”

  “너 어디서, 무얼 하는지….”


  ‘네가 걱정 돼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이렇게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문득 송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이 뒤따라오고 있는 걸 알면서도 위축되지 않는 송이가. 한동안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송이가 내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조용히 송이를 따랐다.


  송이는 나무가 우거진 숲의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송이의 움직임이 가볍고 경쾌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세상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차차 옅어졌다. 그리고 들려왔다. 풀벌레 소리,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 이름 모를 새소리, 그리고 송이의 가늘고도 거친 숨소리…. 학교와 그리 멀지 않은 뒷산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판타지 이야기 속 신비로운 문 너머의 또 다른 세계가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송이가 멈춰 서더니 내 쪽을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나지막이 물었다.


  “살인 사건 범인 말이야… 넌 범인이 남자일 것 같아, 여자일 것 같아?”


  무슨 꿍꿍이가 있는 질문인 듯했지만, 나 또한 궁금한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남자이지 않을까?”

  “그래? 난 왠지 여자일 것 같아.”


  송이가 목소리를 낮추며 주변을 살폈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냥 내 느낌이야. 그런데 아직 안 잡혔으니 범인이 지금쯤 이 동네 어딘가를 어슬렁거리고 다닐지도 모를 일이겠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누구일지도, 바로 우리 근처에 있을지도 몰라.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범인인 경우도 많잖아?”


  송이가 다시금 내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어색해진 나는 괜스레 나무 위를 올려다봤다. 햇살이 구름을 걷어내고 있었다. 한 줄기 빛이 나무들 사이 좁은 공간을 비집고 곧게 뻗어 들어왔다. 빛줄기에 잠시 시선을 담그고 있던 사이, 송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끄집어냈다. 그것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색 봉지였다.


  “여기, 뭐가 들어 있을까?”


  송이가 봉지를 내 눈앞에 들이밀며 물었다.


  “….”

  “맛난 간식거리가 들어 있을까, 아니면, 날카로운… 칼?!”


  별안간 ‘칼’이라고 말하는 송이의 목소리가 높았고, 그 순간 송이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송이가 큰 소리로 웃으며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짝퉁 넌, 내가 무서워?”  

  “그게 아니고, 네가 갑자기 얼굴을 들이대니까…. 그런데 진짜 뭐가 들어 있는 거야?”


  송이가 봉지를 묶고 있는 매듭을 천천히 풀었다. 이윽고 번쩍, 하는 빛을 발하며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테인리스로 된 그릇이었다.


  “그릇은 왜…?”

  내가 물었다.


  송이는 신기한 걸 보여주겠다며 준비해 온 물을 그릇에 가득 담더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슬며시 나를 잡아끌며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몸을 낮췄다.


 “누군가 우리를 찾아올 거야.”

  송이가 말했다.


  그릇에 담긴 맑은 물, 그리고 낯선 방문자. 그 말을 하는 송이의 옆모습에서 문득 ‘신기’ 같은 것이 느껴졌고, 별안간 오싹한 기운이 들었다.


  우리는 몸을 숨기고 한참을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에 오롯이 귀를 열어둔 채로. 그러자 잡생각들이 점점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졌다.


  오래 지나지 않아 송이의 말대로 푸드덕, 소리와 함께 낯선 방문자가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낯선 방문자는 숲을 지키고 있는 작고 여린 생명체들이었다. 날개 달린 자그마한 생명들은 눈에 검은색 줄무늬를 두르고 있었다. 한 마리였던 새가 여러 마리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문은 학교에서만큼 숲에서도 빠르게 전파되나 보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이번에는 흡사 검은색 넥타이를 매고 있는 듯한 녀석들이 등장했다. 새들은 다부지면서도 앙증맞은 자세로 물을 먹는가 싶더니 이내 그릇으로 몸을 기울여 물장구를 쳤다. 물을 마주한 새들의 날갯짓이 신나 보였다. 태어나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새어 나왔다.


  이제껏 딱히 새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새들은 늘 내 주변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그래서 더 시선 한 번 제대로 준 적 없이 무심하게 지내왔다. 그런데 눈앞에서 바라보는 새들은 내가 이전에 알던 새와는 다른 생명체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비밀의 공간을 훔쳐보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된 것 같았다.


  “목이 많이 말랐을 거야. 최근에 비가 거의 안 왔잖아. 쟤들은 ‘곤줄박이’ 그리고 뒤에 나타난 아이들은 ‘박새’야. 곤줄박이, 이름 너무 예쁘지 않아? 들어본 적 있어?”

  “아니…. 넌 언제부터 새에 관심이 많았어?”


  ‘곤줄박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새의 이름을 가만히 읊조려보며 송이에게 물었다.


  “고등학교 입학 무렵부터였을 거야. 자세한 건 이따 얘기해 줄게.”


  흐뭇한 표정으로 새들을 바라보던 송이가 이번에는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며 체육복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송이가 움켜쥔 손을 열어 보이자 손바닥 가득 땅콩들이 늘어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일어선 송이가 몇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더니, 손바닥을 펼친 채 팔을 앞으로 쭉 뻗은 자세로 멈췄다.


  잠시 후, 송이를 기다렸다는 듯 숲 여기저기에서 날갯짓하는 소리와 함께 새들이 송이의 손바닥 위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송이가 곤줄박이라고 불렀던 녀석들이었다.


  어떤 녀석들은 땅콩을 잽싸게 낚아채 나무 위에서 발로 야무지게 쥐고 쪼아 먹었고, 친분을 과시하려는 듯 송이의 손바닥 위에서 편안하게 식사를 즐기는 녀석들도 있었다. 새를 바라보는 송이의 눈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얘들은 사람을 별로 안 무서워해. 물론 나랑 친해지기도 했지만. 너도 한번 해 볼래?”

  “괜찮아. 난 그냥 보는 게 더 좋아.”


  사실 새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게 부담스러웠다. 어쩌면 송이 앞에서 겁이 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 그럼 다음에 한번 해 봐.”

  “응….”     


  다행히 송이는 거듭 재촉하지 않았다.


  해가 지기 전 산에서 내려왔다. 송이의 제안으로 근처 카페에 잠시 들렀다. 신기했다. 산에 잠시 머물러 있다 왔을 뿐인데 무거웠던 머리가 맑아진 것 같았다.


  우리는 주스 두 잔을 시켜놓고 새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송이가 휴대폰 안에 저장되어 있는 새 사진들을 내게 보여 주었다. 족히 수백 개는 되어 보였다. 송이가 보여준 사진 속 새들 중 내가 아는 녀석이라고는 까치, 까마귀, 비둘기 그리고 참새가 전부였다.


  “무섭지 않아, 혼자 그렇게 가서 보는 거? 요즘 분위기도 엄한데…. 그러고 보면 너 여자애가 참 겁이 없다?”

  “괜찮아. 무서운 맘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보다는 새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니까.”

  “새는 집 근처에서도 볼 수 있는 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아파트 단지 내에서 보는 새들이랑 뒷산에서 보는 새들은 확실히 다르거든. 나는 자연과 어우러진, 자연을 닮은 새들을 보고 싶어.”

왠지 송이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였을까, 내 질문을 받은 송이의 얼굴이 빛을 받은 호수처럼 반짝거렸다.


  “고등학교 입학할 무렵 공원에서 우연히 둥지를 짓고 있는 까치를 보게 됐어. 땅 위에 떨어진 작은 나뭇가지를 하나씩 물어서 높은 나무 꼭대기에 집을 짓더라고. 새끼들을 위해서 아주 정성스럽게 말이야. 예전엔 미처 몰랐거든… 정성을 다해 하나하나 집을 쌓아 올리는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어. 집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고.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새를 쫓아다니기 시작한 게.”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이가, 주스 한 모금을 들이켜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어땠어, 새들 너무 예쁘지 않았어?”

  “응? 응. 그렇더라….”


  혹여라도 두려워했던 마음이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다.


  “올 겨울에는 제대로 새를 보러 갈 거야. 뒷산 말고. 하늘에 있는 별만큼이나 새들로 가득한 곳이 있거든. 어때, 멋질 거 같지 않아?”


  이미 송이의 눈 가득 별빛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래. 그럴 것 같네.”라고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높은 나무 위에 매달려있는 까치둥지가 정겨워 보였다. 작은 나뭇가지들을 하나하나 물어 나르는 정성스러운 마음이 궁금해졌다. 엄마도 나를 그런 마음으로 돌보았을까?


  엄마 얼굴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밥을 짓는 엄마, 나와 놀아주는 엄마, 밤에 잠들기 전 내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엄마…. 내 상상 속 엄마는 늘 미소 짓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그게 엄마의 실제 모습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 세월이 쌓여갈수록 엄마에 대한 물음표가 늘어간다. 엄마는 아빠와 헤어진 후 혼자서 나를 보듬고 살 수는 없었을까. 나를 버리고 가야 할 만큼 새로운 사랑이, 엄마의 인생이 더 소중했던 걸까? 이만큼 자란 내가 엄마 앞에 다시 나타난다면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와이에 있는 엄마를 만나는 게 목표였던 적이 있다. 열심히 돈을 모은 뒤 하와이로 날아가 이만큼 자란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 키보다 더 자란 내가 엄마와 마주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려봤다.


  나와 재회하는 상상 속의 엄마도 웃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의 표정이 점점 바뀌어갔다. 슬퍼 보였다가 때론 고모가 내게 보이는 눈빛을 보이기도 했다. 이따금은 그런 엄마의 표정이 실은 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도 아니면, 내게 그런 표정을 지을 엄마를 마주할 자신이 없는 걸까, 자신 없어하는 내 모습이 두려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데 왜 용기는 점점 작아져 가는 건지….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두려운 게 많아진다는 것과 같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송이와 뒷산을 다녀온 얼마 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이 들렸다. 송이와 내 추측 모두 틀리기도, 맞기도 했다. 범인은 각기 다른 성별의 두 사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떠돌아다니던 온갖 흉흉한 소문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소문이 떠난 공허한 자리에 여름이 다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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