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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Aug 31. 2024

사춘기 소녀가 하와이에 가면

나 먼저 숙소로 돌아갈래.


하와이 여행 중 딸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사춘기에 들어서며 활동량이 현저하게 줄어든 딸은, 평소 제 방에 머무르며 조용히 지내는 것을 좋아하기에, 엄마인 내게도 쉬이 얼굴을 보여주는 경우가 드물다. 예전 브런치 글에서도 썼듯, 나는 마치 호텔 직원이 된 것처럼 딸의 방문을 노크하고 세탁물이나 간식을 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딸에게는, 자기 방에서 거실로 나와 반려조들을 만나는 게, 우리 부부가 집 근처로 산책 나가는 것과도 흡사한 일과다.



처음 하와이 여행을 계획하면서, 딸이 그저 큰 불만 없이 느린 걸음으로라도 우리를 쫓아와주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비록 큰 바람은 아니었지만, 평소를 생각한다면 그리 쉽사리 이루어질 수 있는 소망도 아니었기에, 우리의 여행에는 늘 딸에 대한 우려가 가시질 않았다.



딸이, 늘 일정 텐션을 유지하고 있었던 엄마와 동생, 점점 하와이의 매력에 빠져들어가던 아빠에 비하면 다소 무미건조한 하와이 여행을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나와 타인보다는, '어제의 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오늘의 나'를 비교해야 하는 것일 테니,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딸은, 더디고 미세하지만, 이번 하와이 가족여행에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야생닭 에피소드에서 언급했듯이, 하와이에 간 딸의 흥미를 끈 건 이국의 풍경보다는 그 풍경을 채우고 있는 생명체들이었다. 지천으로 노닐던 날쌘 야생닭들과, 이름도 모습도 처음 접하는 다채로운 새들 그리고 우리와 많이 달라 보이던, 풍경 속의 사람들...



우리 집 반려동물 덕분에 본디 새들에게는 관심이 많은 딸이지만, 거리의 사람들에게 흥미를 보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딸은, 하와이 거리의 '사람'에 대해 묻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낯선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영감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딸이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로부터 좋은 아이디어들을 많이 얻고 돌아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나는, 딸의 질문과 관심이 몹시도 반가웠다. 딸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무리한 일정으로 딸을 끌고 다니지 않으려 했던 우리의 노력이 미약하나마 결실을 맺는 것 같아 기쁘기도 했다.



와이키키 해변 근처에서 노니는 시간이 길어지면 나는, 먼저 숙소로 돌아가 있겠다는 딸을 데려다주고 다시 해변으로 돌아와, 짝꿍과 아들과 함께 해가 저무는 하와이의 풍경을 즐기곤 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딸과 단 둘이서 숙소까지 걸어가는 동안, 다시 수다쟁이 꼬마숙녀로 돌아간 듯한 딸과 꽤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로수를 붙잡고 폴댄스를 추던 여성, 하의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엉덩이 두 쪽이 홀라당 다 드러나는 수영복을 입고 씰룩씰룩, 거리를 활보하던 여성, 우리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을 만큼 용감무쌍하고 거대한 몸집의 사람들, 다채로운 버스킹을 하던, 유머 가득했던 거리의 공연자들 모두 우리 모녀의 좋은 대화 소재가, 웃음의 원천 소스가 되어주었다.


"엄마, 저 사람 좀 봐!”

"어머머, 진짜 신기하다!"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런데 살은 조금만 더 가려주면 좋겠다.”

“그러게. ㅋㅋㅋ”


수다와 함께 사방팔방 뛰어놀던 우리의 시선이 빛깔도 고운 가게 앞에서 동시에 멈춰 설 때면, 나는 딸아이의 손을 슬며시 잡아끌며 함께 가게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이국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호사스러운 시간을 즐겼다. 딸은 특히 '호놀룰루 쿠키'에 관심을 보였는데, 파인애플-하와이는 'Dole 파인애플'로 유명하다-모양의 쿠키가 앙증맞고 다양한 데다가, 깔끔하게 낱개로 포장되어 있는 상태여서 하나씩 골라 담는 재미가 있었다. 게다가, 올리브 그린 색상으로 화사하게 꾸며진 가게 분위기에 더해진 고소한 향과, 그리 달지 않으면서 미각을 사로잡는 그 맛이 일품이었다.



그렇게 *오아후의 풍경을 채우고 있던 사람들에게 마음을 조금씩 열던 딸은, *빅아일랜드의 밤하늘을 마주하고 마침내 탄성을 내질렀다. 그것도, 그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단전 저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듯한 깊고도 묵직한 탄성을.

친구에게 줄 선물은 못 참지(ft. 호놀룰루 쿠키)
빅아일랜드의 대자연 앞에서 부지런해지는 사춘기 소녀의 발걸음
소녀가 애정했던, 호놀룰루의 숙소 밖 풍경

*하와이는 오아후, 카우아이, 마우이, 빅아일랜드 등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개중 빅아일랜드가 가장 큰 섬이랍니다.


사춘기 소녀의 눈길을 끈 호놀룰루 쿠키>>

- 와이키키 해변 근처에 '호놀룰루 쿠키' 가게가 있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 열세 가지 종류의 맛을 판매하고 있으며, 매장에서 쿠키 조각 시식도 가능하다


- 전체적으로 많이 달지 않고 적당히 고소한 맛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중간에 젤리가 들어있는 녀석들이 좀 더 식감과 맛이 좋았다.


- 하와이의 물가 때문에 가격은 조금 높은 편이나, 귀국 후 지인들에게 나눠줄 용도로 가장 무난하고 적합해 보이는 하와이 특산품이다.


- 공항 내에서도 판매하고 있지만, 시내에서 구입하는 게 더 저렴하다.


- 예쁘고 튼튼한 쿠키통은, 집에 두고 활용하기 꽤 괜찮은 아이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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