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후 섬에 머무른 지 삼일 째, 짐을 챙겨 거리로 나섰다. 국내선인 '하와이안 항공' 카운터가 있는 호놀룰루 공항 제2 터미널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빅아일랜드에서 머문 시간은 총 2박 3일로, 화산국립공원 근처의 힐로(Hilo), 커피로 유명한 코나(Kona)에서 각각 하룻밤을 묵었다.
그즈음, 짝꿍은 여행경비에 대한 본전 생각이 슬슬 올라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빅아일랜드로 떠나기 직전 짝꿍이 말했다.
"사실, 아직 잘 모르겠어. 이 정도의 돈을 들여 올만큼 여기가 좋은지...."
짝꿍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하와이에 오자고 짝꿍을 설득한 입장에서 아쉬운 마음을 희석시켜 줘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나를 붙들었다.
기본적인 항공권과 숙박료만 해도 천만 원 가까이 들어갔다. 물리적 가성비를 생각한다면, 실망감이 올라올 법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행이란 당장 눈앞의 가성비만을 고려하기에는 그 너머에서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짝꿍의 이런 마음에 좀 더 희망을 얹어주고도 싶었다.
"기다려 봐. 빅아일랜드에 가면 분명 생각이 바뀔 거야."
반쯤은 진심이었고, 나머지 반은 나의 희망 사항이었다. 그렇게 나는 오십 프로의 확신을 가진 채 빅아일랜드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이런 내게 믿음을 주기라도 하려는 듯, 빅 아일랜드에서의 즐거운 여행을 암시하기라도 하듯, 호놀룰루 공항을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아침, 호놀룰루 거리에서 재미있는 장면 하나를 목격했다. 해외를 다니다 보면 국내에서와는 달리 자동차 경적소리를 들을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호놀룰루에서는 우리나라만큼이나 경적 소리를 흔하게 들을 수 있었다. 평소에는 듣기 싫었던 자동차 경적소리가 마치 고국을 연상시키는 듯해 친근감이 들었던 나는, 소리가 나는 쪽을 한 번 더 돌아보곤 했는데, 그날따라 끝없이 울리고 있는 경적소리에 친근감을 넘어 호기심이 발동했다.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린 곳에, 시속 10킬로 정도로 나아가고 있는 자동차 한 대와, 그 뒤를 천천히 쫓아가고 있는 SUV 차량이 보였다. 앞차의 운전자는 창밖으로 왼팔을 쭉 뻗어 손을 높이 치켜든 채, 유난히 길어 보이는 가운데 손가락을 하늘을 향해 곧게 세우고 있었다. 뒷 차량 운전자는 화가 나 있는 듯 앞차를 쫓아갔지만-사실 쫓아간다고 하기에는 둘 다 속도가 너무 느렸다- 나는 왠지 그 장면이 신선해 보였다.
그 정도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둘 중 한쪽-혹은 둘 다-에서 사람이 튀어나와 거침없는 욕설을 날렸을 텐데,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은 그저 그 상태로 천천히 앞으로 전진하고 있을 뿐이었다. 빨리 달리는 차가 없어 더 이상 속도를 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눈앞으로 흐르던 그 장면은 마치 자동차를 활용한 거리의 전위 예술처럼 보였다. 심지어 그들의 표정에서 웃음기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재미있는 사람들이네,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빅아일랜드로의 여정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호놀룰루 도로 위의 두 운전자 덕분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하와이 국내선 중 '하와이안 항공' 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더 저렴했다. 그렇다고 하와이안 항공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특정 항공사를 택한 이유로 '비행기 동체의 매력’을 언급하는 것이 다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하와이안 항공 동체의 꼬리에서 느껴지던 그 특별한 아름다움이 좋았다. 마치 열대의 깊은 바닷속 동화나라에서 뭍으로 올라온 인어공주의 꼬리를 보는 느낌이었달까.
무엇보다 기내에서 제공하는, 별 기대감 없이 홀짝였던 오렌지주스가 나를 즐겁게 했다. 이제껏 국내 저가항공을 타며 마셔보았던 각종 주스들을 훨씬 능가하는 미각적 황홀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인지, 하와이안 주스의 맛을 음미하며 내려다보던 지상의 풍경은,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엿보는 듯한 낯설고도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그 순간의 나는, 태곳적 대자연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타임머신을 탄 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혀끝으로 스며들던 상큼 달짝지근한 맛과 함께 환상적인 풍경을 감상하는 기분이란...! ‘빅아일랜드에 가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며 들었던, 약간의 불안감을 상쇄시켜 주고도 남을 만한 풍광이었다.
그렇게 50분 남짓 날아 도착한 힐로 공항. 그곳에서 H사-빅아일랜드는 오아후보다 렌터카 시스템이 더 편리했다-의 렌터카를 타고 도착한 힐로의 호텔.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내다보이던 소박한 풍경에 시선을 담그며, 나지막한 감탄사와 함께 내 안에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래. 분명, 빅아일랜드는 다를 거야!'
숙소 밖 풍경을 바라보며 나 홀로 마음속으로 외치던 그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하와이 도착 & 출발 국내선 이용할 때는요 ~
- 하와이 공항에서는 보안검색대를 통과할 때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한다. (단, 만 14세 미만은 해당되지 않음) 공항 직원들의 발화 속도가 빠른 편이었는데, 처음 안내받을 때 이 부분을 놓쳤던 나는, 신발을 신고 들어가려다가 제재를 당해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 하와이안 항공은 짐을 싣는 것이 유료인데, 인터넷 회원으로 가입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공항 키오스크에서 등록이 가능하며,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레퍼런스 넘버'를 미리 캡처해서 가면 더 간단하고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다.
- 대한항공 등의 국제선은 호놀룰루 공항 제1터미널에 체크인 카운터가 있고, 하와이섬 사이를 오가는 국내선은 제2터미널에 위치하고 있다. 와이키키에서 20번 버스를 타면 터미널까지 약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