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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Jun 20. 2024

하고 싶은 일만 찾다가는

대학에서 도시계획/교통공학을 전공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에 맞추어 전공을 선택했다. 딱히 하고 싶은 전공이 없었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진짜 하고 싶은 전공이 있었다. 막연하게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점수가 되지 않았다. 공학을 전공했으니 당연히 고등학교 시절 자연계 즉 이과생이다. 나는 문과가 더 체질에 맞았지만, 아버지가 문과를 선택하면 굶어 죽기 십상이란 한 마디에 어쩔 수 없이 이과를 골랐다. 물론 이 나이가 되어 생각해 보면 결론적으로 반반이다. 아버지에게 감사한 점도 있지만, 또 아쉬운 점도 있다.     


내가 관심 있었던 분야는 돌아보니 방송이나 언론 분야였다. 기자나 아나운서, 캐스터 등 말로 하는 직업을 가졌다면 좀 더 신명 나게 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글을 쓰거나 강의할 때 오히려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마흔 즈음 만난 글쓰기 덕분에 다시 한번 나에게 맞는 적성을 찾았다. 본업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글을 쓰고, 가끔 강의하면서 풀었다. 제2의 직업으로 작가와 강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딱 마흔 살이 되던 해다. 욕심이 생겼다. 어떻게든 작가와 강사로 전업해서 지금 하는 본업을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 작가와 강사로 버는 돈으로 지금 회사일로 받는 월급 이상이 되어야 전업이 가능한 상황이다. 두 가지를 병행하면서 8년을 버텼지만, 작년 연말 예상하지 못한 실직과 부족한 나의 노력으로 번듯한 작가와 강사가 되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계속 유지하며 버텼지만,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사기까지 당하면서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거의 모두 날리면서 인생의 방향성까지 잃어버렸다. 하고 싶은 일도 놓치고, 하기 싫지만 그래도 잘할 수 있는 본업은 어떻게든 끌고 가야 할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기를 당하고 나서 2주 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돈을 잃어버린 자체도 억울했다. 그것보다 이제 조금만 더하면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좋아했는데, 오히려 본업을 더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족은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있냐고 다그쳤다. 20년 넘게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전공을 살려 직업을 선택했다고 반문했다. 그래도 너와 그 직업이 맞으니 지금까지 할 수 있던 것 아니냐고 되묻자,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지나고 보면 본업으로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보람 있었던 시간도 많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세상에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을 선택해서 성과를 낸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이 어쩔 수 없거나 억지로 그저 그런 일을 만나 계속 수행하다 보니 익숙해지고 성과를 낸다. 나도 같은 계통에 있는 엔지니어보다 뛰어나진 않지만, 도시계획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매일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하기 싫었지만, 먹고 살아야 했기에 억지로 매일 견디면서 반복했다.      


진짜로 하기 싫은 일이 아니라면 어쩌다 만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지금 하는 일을 매일 조금씩 반복해 보자. 하고 싶은 일만 찾다가 시간만 허비하는 사람을 수없이 목격했다.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고, 인플루언서가 되겠다고 하는 후배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회사 다니면서 천천히 준비해서 판단되면 퇴사해도 된다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라도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소리쳤다. 3개월이 지난 그는 돈이 떨어지자 다시 본업을 알아보고 있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 하는 일이 싫더라도 계속 반복하자.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길이 열리기도 한다. 나도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도 있겠지만, 하기 싫더라도 지금 하는 본업을 좀 더 공부해서 할 수 있을 때까지 도전하기로. 그 외에 시간을 쪼개 다시 내가 원하는 전업 작가와 강사의 길을 준비할 계획이다. 내가 원하는 파랑새가 결국 멀리 있지 않다.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일이 가장 자신 있다. 그 이유는 타인이 보기에 그저 그런 일이지만, 반복하다 보면 탁월해지기 때문이다. 여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찾고자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면 잠시 멈추고 지금 하는 일에 한번 더 집중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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