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시절 나는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쁘다 보니 철저하게 혼자 다녔다.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집에 돌아가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지금은 잘 지내지만, 하나뿐인 세 살 터울의 여동생과 같이 있기 싫어서 내 방에서 나가라고 소리쳤다. 방도 없던 동생은 친구들과 어울렸다.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잔 들어! 오늘부터 우리 우정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죽을 때까지, 언틸 다이!! 마셔!”
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대학 동기와 선후배, 다시 만난 초등학교 죽마고우들, 고등학교 동창 등 매일 저녁 사람을 만났다.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부모님에게 참견하지 말라고 선언했다. 그 시절에는 매일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다. 뭔가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외롭고 허전했다. 그 부족한 부분을 매일 사람들과 술 마시고 놀면서 채웠다.
대학 졸업 후 회사 다니게 되었다. 월급을 받고 나서도 매일 술자리가 이어졌다. 사람을 많이 알면 좋다고 생각했다. 내 앞가림도 하고 하나씩 채워나가면 그게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나의 삼십 대는 주변이 온통 사람이었다. 혼자 있는 것이 싫었다. 항상 그 고독과 허전함을 사람으로 채워나갔다. 상처받고 관계가 끊어지면 새로운 인연을 찾았다. 결혼하고 나서도 일과 개인적인 약속이 많다 보니 가족에게 소홀했다.
하지만 마흔 중년이 되자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하나씩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비워가는 일이라는 걸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만났던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었나 보다. 그 좋은 관계가 영원할 줄 알았다. 지나고 보니 다 신기루였다. 나만 노력한다고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게 아니었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인연, 기념일에도 아무 말 없는 친구, 한때 매일 연락하던 사람과의 뜸한 대화. 그 모든 것들에 서운해하고, 이유를 찾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 돌아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모든 관계를 꼭 쥐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내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어지는 인연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한때는 북적이는 연락처가 자랑이었다. 지금은 조용한 저녁, 가끔 울리는 한두 통의 진심 어린 메시지가 더 고맙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젠 ‘누가 내 곁에 남았는가? ’보다 ‘내가 누구 곁에 머무르고 싶은가?’ 를 스스로 묻는 일이다. 오랜만에 첫 회사 사수에게 전화했다. 오랜만에 통화해도 반갑게 맞아주시고 칭찬과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선배다.
서운함을 품고도 웃을 줄 알고, 그리움을 말하지 않아도 견딜 수 있다. 떠난 사람을 미워하지 않아도 남은 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는 힘. 그 힘이 생길 때, 우린 어른이 되어간다.
관계를 정리하는 건 차가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건 따뜻함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다.
서로에게 무뎌진 채 억지로 이어가는 인연보다, 조용히 안녕을 건넬 수 있는 용기가 더 소중하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빈자리를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 그리고 그 빈자리에서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결국, 나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는 일이 가장 오래 가는 관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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