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헬스장에서 열심히 운동 중이다. 오랜만에 유산소 운동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스마트폰으로 벨이 울린다. 발신자를 보니 존경하는 선배다. 나에게는 멘토 같은 분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상담하기도 한다. 늘 따뜻하게 배려해주시는 마음에 감사하다.
“내가 어젯밤과 오전에 다른 일이 있어 바로 통화 못했네. 잘 지냈어? 요샌 좀 어때?”
“네. 조용히 지내고 있어요. 저도 회사일 등 이것저것 바빠서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려서 연락했습니다. 이번에 책 출간 축하드려요.”
별것 아닌 가벼운 대화지만 선배의 깊은 마음이 느껴진다. 몇 년 동안 많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배신당하다 보니 믿을 사람은 곁에 거의 없다. 선배는 내 마음속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사람 중 한 명이다.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해도 가벼운 대화만으로 그 마음이 느껴진다.
"밥은 먹고 다녀?", "요즘 몸은 좀 어때?, ""애들 많이 컸지?" 짧고 평범한 인사말들이 어느 순간부터 가슴에 오래 남기 시작했다. 친구나 지인을 오랜만에 만나면 잘 지내냐는 인사부터 건네고 있다. 사실 잘 지내냐? 라는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다 잘 지내는 줄 알았다.
나이가 드니 그게 아니었다.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갑작스러운 부고나 입원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해진다. 젊을 땐 깊은 대화, 철학적인 이야기, 거창한 꿈과 목표를 나누는 대화에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중년이 되고 보니 가장 큰 위로는 오히려 이런 가벼운 말들 속에 숨어 있었다.
부모님과 오랜만에 통화해도 “잘 있지?”, “밥은 먹었지?”, “요샌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하는 가벼운 한 마디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느껴진다. 중년의 인간관계는 예전처럼 격렬하지 않다. 자주 만나지도 않고, 하루 종일 채팅창을 오가는 일도 드물다.
하지만 가끔 전화 한 통, 우연히 마주친 자리에서 나눈 몇 마디 대화에 그 사람의 진심이 느껴진다.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야." "너 생각나서 연락했어." 그 짧은 말속에 담긴 마음의 온도는 생각보다 따뜻하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 만나는 횟수가 줄어든다. 사람을 좋아했던 나도 술까지 끊으니 먼저 만나자고 연락오는 사람도 거의 없다.
자주 보지 못해도 나를 좋아하는 가족이나 소수의 지인이나 친구들. 말이 많지 않아도, 속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는 느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관계다.
가벼움 속에 있는 진심 어떤 날은 선배 또는 친구와 나눈 대화가 날씨 이야기, TV 프로그램, 자녀 교육 이야기뿐이었다. 별것 아닌 말들이 오고 갔지만 통화를 끊고 나서 마음이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왜일까. 아무 의도도 없이, 나를 판단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삶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중년의 인간관계는 말의 무게보다 말을 나누는 마음의 무게가 중요하다.
가벼운 농담 속에도 걱정이 담겨 있다. 평범한 안부 속에도 그리움이 스며 있다. 무겁지 않아서 오래 가는 관계 젊을 때는 뭔가를 끊임없이 채워야 하는 관계였다. 만나서 의미 있는 말을 해야 하고, 대화의 깊이로 친밀함을 확인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오래 곁에 남는 사람이라는 걸.
중년의 우리는 서로의 상황을 너무 잘 안다. 쉽게 볼 수 없는 일정, 무거운 책임감,
지친 하루 끝에 겨우 내는 시간. 그 안에서 짧게 나누는 한마디는 그 어떤 깊은 대화보다 소중하다. 말보다 마음이 닿는 거리 중년의 인간관계는 조용하지만 견고하다.
크게 티 나지 않아도, 바람처럼 곁을 감싸준다. 지금도 어디선가 가벼운 안부를 나누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관계는 이미 깊은 신뢰를 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잘 지내지?” 한마디 건네보자. 그 짧은 말이 상대에겐 하루의 무게를 덜어주는 따뜻한 손길이 될 수도 있다. 중년의 인간관계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가볍게 웃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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