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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진 Apr 30. 2023

창문을 닫는 방법

 세상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바람이 부는 곳이다. 생명이 꺼지는 순간을 목도한 곳이고, 서로가 등을 돌린 채 사는 곳이고, 논설하는 곳이고, 판단하는 곳이고, 겉모습이 어떻고 학력이 어떻고 하는 개 짖음으로 가면을 쓰는 곳이다.     


꿈, 소망, 사랑, 별, 우주, 동심 따위를 찾는 나는 세상에서 연약하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나는 외출할 때마다 사바나 지대에 맨몸으로 버려진 사람처럼 몸을 웅크려야 한다. 마실 물을 찾아야 하고, 맹수의 이빨을 경계해야 한다. 온순한 초식 동물이라고 얕잡아 볼 수 없다. 그 단단한 뿔로 언제 내 폐를 꿰뚫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집에 틀어박히는 것을 택했을 뿐이다. 내가 거주하는 집은 내벽 외벽이 진흙으로 지어진 아주 좁디좁은 곳인데, 내가 집을 구매할 당시 집주인이 그러더라고.      


“아 타고나길 좁고 약한 집이야. 작은 충격에도 외벽이 쉽게 허물어지지. 좋게 말하면 섬세한건데... 음, 단단해지려면 많이 아플거야.”     


누가요?     


집을 구매한다는 표현도 웃기다. 누가요? 하고 묻기도 전에 집주인은 이미 사라진 채였고, 내 손에는 방 열쇠가 들려있었다. 계약서 한 장도 없다. 애초에 나에게 선택이란 없다는 말이다. 낡은 집에 들어오니 창문 하나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항상 열려있는 창문이었다.      


크기와 규격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생김새가 어떤지도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창문은 내 마음 상태에 따라서 달라지는 요물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슬프고 외로운 날이면 창문은 아주아주 커진다. 내 온몸을 집어삼킬 것처럼. 내 정수리를 짓누를 것처럼. 그렇게 커진 창문으로 세상 웃풍이 든다. 웃풍이란, 나를 향해 찡그린 얼굴, 혐오하는 눈빛이 주를 이루는데, 가끔 ‘이 모지리 같은 녀석’, ‘쓸모없는 녀석’하고 쏜 살이 날아오기도 한다.     


창문 곁에서 바람을 맞을 때마다 나는 바보가 된다. 창문 닫는 방법을 모르게 된다. 바람 피하는 방법을 모르게 된다. 그때마다 그저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바람은 언제 그치나 하고 오매불망 기다린다. 피부는 싸늘하게 식어가고 눈물조차 말라서 흐르지 않는다. 그 창을 통해서 부는 바람은 퍽 서늘하고 날카로워서 잔뜩 나를 상처입힌다. 고립시킨다. 온 방 안에 불을 소등시킨다. 결국 내 존재가 원래 그림자 조각이었던 것처럼 믿게 한다.  


어떤 날은 비바람이 몰아치기도 한다. 채찍 소리처럼 요란한 바람 소리가 섬뜩하게. 빗물은 바람의 어깨를 타고 내 방안을  헤집고 나간다. 이때의 나는 무기력해질 뿐이어서, 축축하게 젖은 침대에 묻혀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이불 속은 따뜻하지 않다. 무겁고, 춥다. 무덤에 산채로 묻힌 것만 같다. 불안으로, 슬픔으로, 외로움으로 뒤집어진 방을 청소하는 건 언제나 내 몫이다.      


한날은 방 청소를 하다가 아주 성질이 나서 빗자루를 집어던졌다. 나는 더 이상 깨질 물건도 없어서 휑한 방안을 서성거렸다. 고민했다. 관련 서적을 뒤적거렸다.   

  

방 청소 효율적으로 하는 법, 자존감 올리는 법, 건물 외벽을 단단하게 만드는 법,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법.     


그렇게 찾다가 만난 것이 ‘창문을 닫는 방법’이었다. 이 책도 요상한 것이 책 두께는 내 키만큼 두껍고 높다랬는데, 책을 펼쳐보면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백지였다. 나는 그 책에 기록된 방법을 찾기 위해서 쉼 없이 뒤적거렸다. 그러다 찾아낸 한 문장.      


‘창문을 닫으시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세찬 비바람이 내 뺨을 두드렸다. 하늘이 밤처럼 새까맸다. 어느 쪽에서 쏜 살이 날아올까 가슴이 쉼 없이 뜀박질하고 있었다. 창문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바라보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항상 열려있던 창에는 닫는 유리문이 있었고, 내가 쉽게 손을 뻗을 수 있는 위치에 손잡이가 있었다. 창문의 테두리는 금속이였고,  창의 크기는 벽면의 절반 정도였다.


그리고, 방 내벽은 어느새 콘크리트로 단단했다.  

떨리는 손으로 유리문을 잡고 끌었다. 드르륵-하고 쇳소리가 긁히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난생처음으로 창문을 닫은 방안은, 난생처음으로 타인에 흔들리지 않는 나는.

안개처럼 고요할 뿐이었다.


내가 두려워하던 바람은 불지 않았고, 방도 지저분해지지 않는다. 소란스러운 빗소리는 부드럽게 창문을 쓰다듬었다. 이윽고 물방울로 맺혀 유리 표면을 타고 스스륵. 툭. 한밤의 유성처럼 떨어진다. 그것을 쓰다듬어 보아도 내 손은 젖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낙하하는 유성을 손으로 덧그린 것 같다.     


나는 그날 덤덤한 기분으로 마트에 가서 유리를 꾸미는 스티커를 사 왔다. 별무늬가 알록달록하게 채색된 셀로판 스티커였다. 사람들은 조금 촌스럽다고 말했다. 그에 나는 썩 괜찮게 미소 지으며 창문을 닫았다. 피할 수 있는 비는 피해도 되더라. 창문은 닫는 기능도 있더라. 때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나는 해 질 녘을 등지고 방으로 들어섰다. 스티커 주둥이를 열어서 스티커를 유리에 붙였다.      


이건 내가 지키고픈 동심이야.      


그렇게 꽤 오랫동안 별 스티커를 손으로 덧그렸다. 나는 창으로 세상을 본다. 해가 지고 별이 떠오르는 그때를 본다. 별 스티커가 붙여진 작은 면적으로 세상을 본다. 동심을 본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창문이 원래 이렇게 작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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