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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마회사선배 Aug 12. 2024

회식도, 워크숍도 업무다

사소한 것에도 배울 게 있다  

  업무 외적인 자리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1994년은 그야말로 매일  회식이었다. 상사와 눈만 마주치면 번개회식이 잡혔고,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호응했다. 신입사원에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가 매월 회식장소를 물색하고 예약하는 일이었으니...  일단 시작한 회식은 1차 소주, 2차 맥주, 3차 노래방까지 이어졌다. 상/하반기 1박 2일 워크숍도 신입사원이 TFT장이 되어 전체를 기획했다. , 해병대 캠프, 한 겨울 야간  산행도 진행했다. 구성원 의견을 취합하고, 장소를 예약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식당을  예약하고, 먹거리 장을 보는 모든 과정을 신입사원들이 준비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못 간다는 말? 상상도 못 하는 일이었다. 뚜렷한 이유로 빠졌는데도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찍힌 거다.

  

  요즘은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회식 자체가 줄었고, 사전 공지한 회식마저도 자율 참석이다. 1종류의 술로, 1차만, 9시 전에 끝낸다는 '119'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회사도 있다. 그렇다고  회식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회식 자리는 회사에서 보이지 않던 다른 면을 관찰하기  매우 좋다. 평소 조용하고 젠틀한 사람이 술자리에서 실수하면 '저 사람은 술 먹으면 개가 된다.'라는 소문이 돈다. 그래서 회식자리가 중요하다.


  회식자리에 임하는 자세를 설명하겠다. 먼저, 한두 시간 전에 숙취해소제를 먹는다. 숙취해소제는 보통 간의 해독 능력을 높여주는 간장약과 구역감/울렁거림을 방지하는 위보호제로 구성되어 있다. 술 마시기 전, 후 2번 먹는 게 가장 좋은데, 약사와 상의하면 약을 처방해 줄 것이다. 그게 제일 좋다. 아무리 술을 못해도 미리 약을 먹으면 만취가 되거나  다음 날 덜 힘들다.

  

  혹시 실수할 수 있으니, 파인 옷이나 스커트보다는 편한 바지를 입는 게 좋다. 술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만 마신다. 자신의 주량을 미리 파악해, 어느 선을 넘으면  실수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너무 단호하게 술을 거부하면 분위기가 쎄해질 있으니  적당히 맞추는 요령이 필요하다. 술 한잔에 물 한잔 마시기, 화장실 들락거리기, 원샷 가급적 피하기 등이다. 어떤 신입사원은 술을 받자마자 해맑게 옆에다 버린 적도 있었다. 어찌나 황당하고  민망하던지.. 그건 술을 따라준 상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못 마시더라도 살짝 입이라도 대는 시늉을  하라.


  나는.. 너무나 미련스럽게 술도 전쟁처럼 마셨다. 칙칙폭폭주(한 잔 먹고 옆 사람에게 두 잔 주고, 두 잔 먹고 옆 사람에게 세 잔 주는 방식), 버들잎주(상사의 겨드랑이 털을 담가 먹는 충성주),  4대 강주(맥주와 막걸리를 섞어 옆 사람에게 돌리며 술이 맑아질 때까지 먹는 술), 사발주(냉면그릇에 각종 주류를 섞어 충성심만큼 마시고 옆으로 돌리는 술 등)... 술 얘기 나오면 밤을 새울 수 있다.  남에게 지기 싫어 중간에 화장실에서 토하고 멀쩡한 척 또 마셨다. 사람들이 술 세다고 추켜  세워줬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죽을 듯이 취하려고, 취하게 하려고 애썼는지 모르겠다. 술 잘 먹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선배들의 가스라이팅 때문이었을까? 속이 뒤집어졌지만, 인정받았다는 성취감은 들었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근위축성 위염을 앓고 있다. 새벽 운동 때마다 헛구역질이 난다. 많이 후회된다. 사람들은 여전히 술고래라 알고 있지만, 사실  맥주 한 캔에도 취한다. 나 같은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 되지만, 그래도 회식자리의 중요성은 알았으면 좋겠다. 작은 행동도 조심하라. 수저를 세팅하고, 고기를 굽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끝까지 챙겨 집으로 보내고, 화장실을 동행해 주는 모습 등 주변 사람을 챙기는 모습을 일부러라도  보여라. 상사와 동료들에게 배려심 있는 따뜻한 사람으로 인상이 박힌다. 아무리 취해도 흐트러진  모습은 안 된다. 필름이 끊기거나,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욕을 거나, 스킨십이 해지거나, 상사한테 대들어도 절대 안된다. 상사는 절대 안 취한다. 취한 척하는 거다. 다 보고 듣고 기억하며 사람을 평가한다. 나도 그렇다.


   다음은 행사 준비다. '00님, 올해 송년회 준비 좀 해볼래요?'라고 상사가 말했다면, 그건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라 예의를 갖춰 지시하는 것이다. 눈치 없이 '아뇨~ 제가 요즘 너무 바빠서요.'라고  해맑게 웃는 직원도 있었다. 황당하다. '네, 부족하지만 열심히 준비해 보겠습니다.'가 정답이다.


  워크숍 준비는 아래 순서대로 하라. 먼저, 상사가 생각하는 워크숍의 취지와 개요에 대해 파악한다. 목적이 뭔지, 1박 2일/종일/반나절인지, 가까운 거리/1시간 내/좀 멀어도 되는지, 바다/산 중에 선호하는 곳이 어디인지 등 대강의 가이드라인을 받아라. 만약, 'oo님이 알아서 준비해  보세요.' 라고 한다면, 구성원들의 연배, 관심도, 최근 트렌드를 고려해서 세 가지 안으로 정해 본다.  만약 40대 이상이 많은 조직이라면 활동적인 곳보다는 힐링이 가능한 곳, 자극적인 메뉴보다는  몸에 좋은 메뉴가 좋다. 20대가 많은 조직이라면 최근의 핫플레이스나 트렌디한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다음은  가용 가능한 예산의 규모를 파악한다. 현재 예산 외에 더 끌어다 쓸 예산은  없는지 재무팀이나 인사팀을 통해 다각도로 찾아본다. 상사가 묻지 않더라도 한 장으로 워크숍  기획안을 작성해서 먼저 보고까지 드린다면 당신을 보는 상사의 눈이 하트로 변할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기 때문이다. 가는 곳,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을 칭찬할 것이다.


  팀장시절 워크숍을 자주 갔다. 당시 직급에 상관없이 가장 위축되어 있는 직원을 워크숍 TFT장으로 임명했다. 사전 기획서를 작성하게 하고, 사후에는 리뷰 보고서를 작성하게 해서 후임 TFT장에게 파일째로 넘겨주게 했다. 워크숍이라는 업무 외적인 활동에서도 Plan-Do-See를 업무 프로세스로 정착시킨 것이다. 투덜거리면서 힘들게 준비했던 신입사원 시절 많은 행사진행을 통해 실제로  많은 것을 배웠다. 상사의 의도를 파악하는 방법, 의견을 수렴하는 방법, 업체와 협상하는 방법  진행하면서의 리더십 등 어느 하나 버릴 게 없었다.


  2024년 5월 GPT4O가 출시되었다. 이젠 컴퓨터가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기분을 파악하고, 사람의 속도로 반응한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결국 모든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다. 사회생활을 하면 누구든 회식을 몇 번쯤은 할 것이고, 워크숍이나 행사 등을 준비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왜 이런 일을 나에게 시키는 거야?라고 투덜대지 말라. 업무의 확장이다 생각하고, 완벽하게 수행하라. 본업만 충실하면 되는 게 아니다. 사회생활은 집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집 현관문을 닫는 순간까지고, 그 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살면서 다 도움이 돼더라.


  경험은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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