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성취감, 존중, 연봉 VS 단명
임원이 되면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명확하다. 좋은 점은 좀 더 존중받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그 삶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이다.
임원이 되면 직장생활에 정점을 찍은 듯한 성취감이 든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그동안의 고생을 한 번에 보상받는 느낌이다. 임원은 나와는 먼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회사가 인정해 주는구나, 지켜보고 있었구나. 감사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런 다음 회사에 충성을 맹세하게 된다. 그래, 남은 삶은 이 한 몸 바쳐 회사에 절대 충성하리라. 사심 없이 후배들을 키우는데만 전념하리라. 굳게 다짐한다. 물론 며칠 후 마음이 바뀌는게 문제다.
평소 아는 체 않던 후배들이 갑자기 고개 숙여 인사한다. 뜸하던 지인들의 연락이 쇄도한다. 협력사를 방문하면 부장 때와는 의전이 다르다. 초면에 명함을 건네면 흠칫 놀란다. 가족들도, 양가 식구들도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특히, 부모님한테 임원승진은 최고의 효도다. 아직도 아버지의 감동에 겨워했던 울먹임이 생생하다.
무엇보다 좋은 건 연봉이 크게 오른다는 사실이다. 보통 1.5~ 2배 정도 오르는 것 같다. 임원만이 누릴 수 있는 복지혜택도 크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의료비, 의복비, 골프비 등일반 직원하고는 차원이 다른 복지가 따라온다. 퇴직 후에도 임원에 준하는 대우를 해준다. 업무에 따라 전담 기사가 배정되고, 건강검진 시 전담 간호사가 배정되며, 혼자만의 방이 생긴다. (요즘은 대표 정도는 돼야 방을 주는 곳이 많다.) 임원이 되면 큰 조직을 맡고, 업무 범위가 늘어나면서 권한과 책임이 커진다. 리더로서 아무런 방해 없이 가치관과 전략 방향대로 내 조직을 이끌어 갈 수 있어 시야가 넓어진다. 의사결정 범위가 늘어나니 속도감 있게 일할 수 있고 업무 효율도 높아진다. 고급 정보를 포함한 회사 정보량이 늘어난다.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 시 주체적인 역할을 하며 자존감이 올라간다.
반대로, 임원이 되면 일반 직원보다는 재직기간이 짧아진다.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전환되어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법적 보호가 줄어든다. 냉정하게 성과를 평가받고, 그에 따라 매년 말 계약 연장 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니 항상 내년은 없다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한다. 인사시기가 가까워지면 불안감에 약을 먹는 임원도 많다. 신임 임원은 보통 새로운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다. 기존 사업보다는 신사업, 부진사업 등 새로운 도전과제를 부여받는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사업이 많아 1~2년 안에 성과를 내지 않으면 집에 가게 될 확률이 높다. 임원으로 승진된 지 1년 만에 퇴임 통보를 받은 사람도 부지기수다.
개인 삶에 방해를 받는다. 항상 긴장상태로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대표님이나 회장님이 언제 연락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화장실이나 샤워할 때도 핸드폰은 늘 곁에 두어야 한다. 보통 윗 분들의 전화는 세 번이 울리기 전에 받아야 노여워하지 않는다. 샤워 중 회장님의 전화를 놓쳐 잘린 임원도 실제로 있다. 또, 개인언행이 자칫 회사에 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일거수일투족 조심해야 한다. 교통신호를 어기는 작은 일부터,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도 언성을 높이지 않으려 애쓴다. 외부 공식석상에서도 개인의견이 회사나 그룹 전체의 색으로 비칠 수도 있기에 조심, 또 조심한다. 특히, 정치, 종교문제는 절대 언급하지 않는다. 모든 개인 약속은 회사의 주요 일정에 따라 조정된다. 중요한 회의가 일찍 있으면 전날 저녁약속은 절대 잡지 않는다. 술자리에 가 게 되더라도 가급적 과음하지 않는다. 임원이라는 직책은 이렇게 아침에 눈을 떠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니 잠자면서도 모든 행동과 영혼을 지배한다.
항상 감시당한다. 모든 사람이 보고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비서가 알고, 기사가 안다. 때로는 감사팀이나 인사팀에서 동선과 동향을 몰래 인터뷰하기도 한다. 임원이 되고 나서 단 한 번도 업무와 관련 없는 개인전화를 자리에서 받은 적이 없다. 주변 사람들이 다 듣고 있다는 걸 알아서다. 듣고 생각한다. 아 저 사람도 별 수없는 아줌마 아저씨구나. 임원으로서의 품격이 훼손된다. 통화내용이 와전되어 소문이 돌 수도 있다. 개인으로서도, 조직관리에도 마이너스다.
'이제 임플란트나 해박고, 편하게 골프나 쳐.' 임원 승진날 선배들의 조언에 웃음이 터졌다. (당시 1년에 3개씩 임플란트비 지원을 해줬다.) 그때만 해도 임원들은 방에서 헛기침하면서 편하게 사는 줄로만 알았다. 과거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절대 아니다. 보상과 복지는 늘어나지만, 그에 상응하는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언제 잘릴지 몰라 좌불안석이다. 출근할 때 전화 한 통으로 잘린 임원도 있고, 회장님과의 회의 후 문을 쾅 닫고 나와서 괘씸죄로 집에 간 임원도 있다.(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 때문에 쾅 닫힌 게 팩트임.) 일주일에 한 번씩 서류를 다 버리는 버릇이 생긴 것도 이 즈음이다. 사과박스 한 상자에 들어갈 만큼만 짐을 유지한다는 원칙 덕분에 항상 내 책상은 깨끗하다. 노트북, 거울(표정 체크용), 화분 몇 개가 다이다. 회사 책상에 놓인 화분을 보면서 나중에 퇴임할 때 들고 가야 하나를 고민해보곤 한다. 아무도 가꾸지 않아 말라죽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임원과 화분의 운명이 같은 거다.
그래도 좋은 점이 훨씬 더 많다. 무엇보다 더 성장할 기회를 가질 수 있고, 퇴임 후에도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높아진다. 제일 안 좋은 것은 만년 부장으로 있다가 퇴직하는 것이다. 갈 데가 없다.
기를 써서 임원이 되려는 이유도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