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원으로 사는 삶(박정미)⟫에서 다시 발견한 작은 공동체의 힘
‘무소비 프로젝트’ 중에 우연히 읽은 책 ⟪0원으로 사는 삶(박정미)⟫은 ‘무소비’에 대한 시각을 기존 체제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 구체적인 지향점을 향해 저항하는 것으로 한 단계 넓혀주었다. 책 소개와 함께 업로드된 저자의 ‘0원 살이’ 영상은 무소비, 무지출로 1년 간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 그들과의 따뜻한 포옹과 인사, 손을 맞잡고 ‘우리는 모두 하나이며,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외치는 모습들이 숨 가쁘게 펼쳐져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밤마다 컴컴한 침실에서 작은 등만 켜고 이 책을 찬찬히 읽고 있으면, 박정미 작가가 들려주는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풍경 안에 고요히 스며드는 듯했다.
영국에 거주 중이던 저자는 직장에서 해고된 뒤 막막한 생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던 중 ‘0원 살이'를 시작한다. 본격적인 무소비 생활에 앞서 그녀가 삶에서 필수적인, 탈소비의 장벽이 높은 영역으로 결론 지은 것은 바로 잠잘 곳, 먹을 것, 교통수단이었다. 책의 초반에는 ‘식주차(食主車, ‘의식주’의 ‘의’를 교통수단인 ‘차’로 바꿔보았다^^;)’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가 시도한 방안들이 소개된다. ‘집’의 대안으로 보트살이,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타인의 소파에서 무료로 숙박하면서 문화적 교류를 나누는 것), 스쿼팅(squatting, 장기간 방치된 건물을 무단 점거해서 사는 것) 등을 시도하고, 먹을 것은 스킵 다이빙(skip diving, 음식점, 마트 등에서 버린 재고품을 먹는 것), 친환경 자급자족 공동체에서 직접 키운 작물을 먹는 것으로 해결한다. 프로젝트 취지에 공감한 이웃에게서 무료로 제공받은 자전거를 이용하면서 소비 없이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한다. 주어진 현실 조건을 영리하게 풀어가는 법을 체득하면서 저자는 이러한 대안이 단지 돈을 아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구하는 소극적인 수단이 아니라, 과잉생산-과잉소비로 지탱되는 자본주의에 가하는 적극적인 저항임을 깨닫는다.
저자가 경험한 무소비 삶의 비법은 (1) ‘자급자족’과 (2) ‘버려진 것의 재사용,’ 그리고 (3) ‘다른 사람들의 대가 없는 도움’으로 압축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소비하지 않고 일상에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체득하거나, 사회적으로 쓸모를 잃었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다시 가치를 부여하여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용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주변에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좋은 이웃들을 두어야 한다.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의 목록을 적어보고 이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라도 적용될 수 있는지를 고민해 본다. 안타깝게도 세 가지 비법 모두 소비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우리에게서 멀어진 것들이다.
식문화만 보아도 식재료를 직접 기르는 것은 고사하고 저녁 한 끼를 해 먹는 것마저도 대기업에서 만든 갖가지 냉동식품이나 배달음식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끼니 해결을 위해 현관문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것조차 배달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식재료를 공급하는 농업, 축산업마저도 종 다양성이 확보된 가운데 땅과 태양, 비바람의 힘으로 자라기보다는, 비닐하우스나 축사에서 공장식 소품종 대량 생산 시스템에 따라 만들어진 것들이 지배적이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만큼 필요를 찾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 역시 넘쳐나며,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에 막대한 비용을 치르면서도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먹을 것이 부족해 굶주리는 이들이 존재한다.
‘집’은 자급자족은 고사하고 값싼 자재로 네모 반듯하게 높이 쌓아 올린 레고 블록 같은 단지형 아파트가 주를 이룬다. 절대량은 넘쳐나지만 투기꾼들의 장난으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탓에 값을 치를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다. 버스를 타고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도로를 지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멋없는 자재로 하늘을 찌를 듯이 반듯하게 쌓아 올린 자태가, 그 멋없음을 단조로운 페인트와 무슨 뜻인지도 모를 거창한 외래어 이름으로 치장한 게, 마치 웨딩케이크 같다고. 겉은 크고 화려하지만 재료와 맛은 별스럽지 않은 웨딩케이크 말이다. 그마저도 오래 사용하기는커녕 20년만 넘긴 아파트에서도 재건축 이야기가 돌고, 아파트가 아닌 건물은 잘 고쳐서 쓰기보다는 허물고 용적률을 높여 고층 건물을 짓는 데 혈안이다.
‘당근마켓’ 등을 통해 물건을 재사용하는 문화도 정착하고 있지만, 여기에도 허점은 있다. 고가의 새 제품을 구매하여 외양이 닳지 않을 정도로만 사용한 뒤 당근마켓에 내놓고 다른 제품으로 갈아타는 문화도 함께 생기면서 오히려 소비를 부추기는 경향도 보이기 때문이다. 내구성보다는 값싸고 꽤 괜찮은 디자인을 갖춘 제품까지 즐비하면서 제품의 실사용 수명은 짧아지고, 유행이 지난 제품은 다른 제품으로 빠르게 대체된다. 필수품의 범주도 넓어졌는데, 최근까지 개인의 노동이나 시간으로 해결해 왔던 일들이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빨래건조기 등에 위임되면서 새로운 소비 영역이 꾸준히 창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기댈 구석이라 할 수 있는 이웃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아파트 일색인 공간에서 ‘사람들과의 정’은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특히 아파트 구조로 이루어진 주거공간은 타인의 소리와 냄새가 조금도 흘러들어와서는 안 되는, 철저히 개인적인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나 또한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층에 사는 이웃을 만나도, 심지어 옆집 사람과 마주쳐도 인사는커녕 서둘러 도어록 키패드를 가리고 집안으로 들어갈 궁리부터 한다. 주거공간조차 익명성에 기반한 관계들로 채워지면서 특히 혼자 사는 사람들은 경제 수단을 잃을 경우 고립되기 십상이다. 이웃들과의 관계를 통해 구할 수 없는 도움의 손길(주로 돌봄과 관련된 것들)은 주로 플랫폼 시장에서 돈을 주고 구매된다. 서비스를 구매할 돈이 없으면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체험한 방식들을 모든 사람이 시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이러한 사례들에서 주목할 점은 행동 그 자체보다는, 행동에 담긴 가치와 철학이어야 할 것이다. 스쿼팅으로 방치된 건물을 무단 사용할 수는 없지만, 건물 재사용을 통한 자원의 절약에 초점을 맞춘, 각자에게 적합한 방식을 채택할 수는 있다. 완벽한 자급자족은 불가능하지만, 베란다 텃밭을 가꾸며 자주 먹는 식재료를 직접 조달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에 색다른 공기가 감돈다. 공공시설의 자전거 거치대에는 사용하지 않은 채 방치된 자전거가 꽤 많은데, 지자체 차원에서 재사용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지정 장소에서 빌리고 반납해야 하며 돈을 지불하는 방식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말이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대안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공동체 회복이다. 자급자족도, 물건 재사용도 마을 공동체 안에서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데, 바로 거대한 시스템에서 벗어나 소규모 공동체로 삶의 중심이 이동하는 것이다. 나도 기후위기에 따른 삶의 체질 개선을 고민하면서 비슷한 결론에 다다랐기에 더욱 공감했던 부분이다. 루이스 하이드의 책 ⟪선물⟫에는 ‘선물공동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선물공동체는 각자가 자신이 가진 것을 베풀면서 유무형의 자산이 공동체 안에서 순환되고, 구성원들 사이에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되면서 더욱 성숙해 가는 소규모 공동체를 일컫는다. 물론 ‘선물’이라 일컬어지는 유무형의 자산의 이동은 단일 공동체의 폐쇄회로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른 공동체들로도 확장된다. 현실 가능성이 없는 이상 사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수도권을 벗어나 소도시에만 가도 ‘선물공동체’의 방식으로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특히 먹을 것들)을 해결하는 방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국가라는 강력한 매듭을 풀고 모두가 작은 공동체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무게중심이 이동할 필요는 있다. 절대적인 인구와 자원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수도권에서는 넘쳐나는 자원을 소비하는 데 급급하고 지방은 수도권 주민들이 소비할 자원을 대는 곳으로 전락했다. 우리는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것이 하나씩은 있고 이것을 잘 발휘하면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이 원리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적용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서울은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역량을 갖춘 반면, 지방은 각자의 특색을 잃고 있고 자기만의 특색을 찾을 수 있는 힘마저도 잃고 있다. 수도권 과밀화가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 위기를 겪으면서 더욱 빠르게 드러나고 있다. 모든 도시가 동등해질 수는 없다. 그러나 각자 잘할 수 있는 기능을 나누어 맡으면서 상생할 수는 있다. 지금의 공고한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방법으로 ‘작은 공동체’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0원으로 사는 삶⟫의 전반부가 탈소비의 철학적 기반을 깨달은 과정이라면, 중반 이후는 ‘레인보우 개더링’이라는, 우주의 모든 존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를 연결해 주는 것은 바로 ‘사랑’ 임을 느끼고 실천하는 공동체와 함께 하면서 느낀 영적 진리로 고고히 나아간다. 직장생활 동안 항상 타인의 미움과 공격을 감내하면서 상처받고 위축되었던 저자는, 레인보우 공동체와 함께 하면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서서히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그녀의 변화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바로 대자연이었다. 대자연의 품에 안겨 먹고 자고 교류하고 명상하면서 그녀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대자연을 느낀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의 한계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의 무한한 힘을 받아들인다. 그 힘으로 그녀 안에는 타인에게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베풀 수 있는 힘이 자리 잡는다. 그리스에서 터키로, 이란으로,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로 이동하는 내내 낯선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 이동 수단을 의지하면서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안감을, 자기와의 꾸준한 대화와 기도로 이겨낸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의 마음을 갖는 순간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이 선물처럼 다가오는 순간들을 겪으면서 그녀의 믿음은 현실이 된다.
저자의 무소비 프로젝트가 인생을 바꾸는 프로젝트가 된 데에는 어느 정도의 행운도 있었지만, 그녀가 자기 고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 깨달은 점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황이 생길 때마다 자기를 넘어서는 선택을 하면서 만들어낸 것이었다. 인생에서 자기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경험을 한 사람의 목소리가 이 책에 빼곡히 담겨 있었다. 전설 같지만, 실화이기에 더욱 힘이 되는 이야기였다. - 에필로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