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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제인 Jul 14. 2024

예~ 가겠습니다!

7월 2주 간의,

240703


며칠이 지나고 상사와의 긴 면담이 있었고 그렇게 선택하게 된 데에의 원인과 감정들을 서로 솔직하게 나누었다. 나는 직장인이라는 노예로서 회사에서 해방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얘기를 나눈다고 한들 입장이 같지 않고 볼 수 있는 시각도 다르다. 계약과 규범들에 얽매여 있다. 내게 연봉을 협상해 주거나 특혜를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회사에서 사람이 없고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꼈었다. 회사와 사람, 그 사이에 투명하지 않고 거리가 있어서 내게 닿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회사와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금이 갔었다는 걸 느꼈다.


...


내가 듣는 이야기들, 현실의 알람과 나를 걱정해서 해주는 말들, 여러 설득과 나를 휘청이게 만드는 시선들까지도 꺼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무엇을 쫓나.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서 구걸한 끝에 얻는 것은 뭘까. 


다 내려놓자. 슬그머니 고개 드는 욕망과 적어도 남들처럼은 살고 싶어 하는 비교의식,

 그 모든 걸 꺼버리고 어떤 것을 보고 살아갈 것인지 정하자.




더 높은 가치를 찾겠다는 결정을 했다.



 누구를 도움으로써 내가 쓸모 있는 사람임을 느끼는 데에 목표를 두지 않는다. 우월감을 느낌으로써 내 효능감을 얻는 방법도 아닌 것 같다. 탈출은 지능순이고, 대부분의 직장인의 꿈은 퇴사인 세상, 회사 욕과 상사 욕을 하면서 절대 퇴사는 하지 않는 직장인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데.



그런데 수동적인 나를 발견했다. 사장으로 일했던 시간을 경험 삼아 회사라는 조직에 들어갔을 때, 괜스레 으스대거나 과거의 영광을 못 잊은 채 현실에 불만만 많은 부적응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무척 노력했다. 그저 주어진 일에 잘 해내야지. 그러면 그다음 스텝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인내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친구들이 평범하게 사장 욕을 하고 있을 때 나는 그 반대의 입장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공감을 받기도 공감을 해주기도 어려웠었다. 나도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회사 욕이나 좀 하고 주 5일 일하며 주말엔 휴식하는 일상을 보내고도 싶었다. 그러다 수동태가 된 내 태도가 보였다.


정답이 맞는지 몰라서 선생님 눈을 피하기보다는 내가 생각한 정답이 틀리더라도 손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 내게 더 이롭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인생이 대체로 소극적인 인간이었다고 쓰인다면 좀 별로일 것 같다.




240710


제안받았던 신규 매장으로의 이동에 그리고 두 가지 조건을 말씀드렸다. 내게 주겠다는 작은 혜택도 양보하는 것과 확실한 선. 연봉협상은 없었다. 혹자는 손해 보는 선택을 왜 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어지러운 혼란 가운데 확실히 결정한 것만 전달했다.



 내가 어마어마한 인력이라서 그런 조건을 제시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도 “그래서 어떻게 살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나만 아는 수고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내가 얼마나 잘했는지보다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퇴사 통보를 하고서야 두꺼운 벽 하나를 부서뜨렸다. 그래서 이 과정은 꼭 필요했다. 내가 속한 조직에의 신뢰를 회복당해야 하는 것만큼 나에 대한 신뢰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고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미친 거냐며 친구나 가족에게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도 얻을 것 같다. 아무리 열심히 했다고 한들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 공들여 쌓은 것들이 무너질 수도 있었던 경험이야 없지 않다. 그렇지만 헤맸던 시간들과 외롭게 고민했던 것들이 무용했던가. 어떤 기회와 어떤 사람과 어떤 터닝포인트를 만나게 될지 모르는 거였다. 불확실한 미래에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근육은 당장의 현실에서 만들어지고 있어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냉큼 잡을 수야 있겠지만 내게는 특별히 가치 있게 보이지 않는다. 자아실현 그 이상의 것을 찾아야 후련해질 속이었다. 





 삶의 태도는 내가 결정한다. 가치의 가치를 너머 내가 추구하는 것이 당장에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기에 그것을 지키고 살 정도의 여유는 필요하다. 경제력은 물론 중요하다. 돈과 능력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세상에서 또다시 비교당하고 자존이 위협당하지 않을 자신은 없다. 그러나 연봉이 조금 더 오르는 직장으로 이직한다고 해서 특별히 행복해질 인간도 아닌 것 같다.


 그냥 하자. 주어진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거기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나를 믿고.

 그냥 이런 결정을 하고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겪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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