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근만근의 샌드위치가 가르쳐준 단순 노동의 평온함
급기야 나는 창업을 고려하기에 이르렀다. 지원한 이력서들이 거절당하거나 무응답으로 돌아오는 지겨움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될 때까지 지원해 보는 게 정답이라 말하겠지만, 나는 어쩐지 다른 시도를 해보라는 내면의 음성을 듣는다.
사실 7년간 카페를 경영했던 시간과, 세뇌될 법한 엄마의 염려—‘장사는 정말 다시는 하지 마라’는 말—가 나를 과거의 상처나 실패에 묶어두었던 것 같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잃었고, 또 이루었다. 그러나 하루도 불안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토로할 정도로 힘들었던 시간보다는,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에 마음 편히 사는 편이 낫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내가 겪어낸, 체계와 시스템이 없는 조직에서 벗어나 그런 곳을 찾을 수 없다면, 결국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회사 생활을 할 때 나는 조직에 속해 있는 것이 좋았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이뤄내는 에너지가 좋았다. 어쩌면 사회의 가치 있는 부품이 되어 거대한 시스템이 돌아가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바람이 그때 비로소 이뤄졌던 것 같다.
나를 더 깊이 알고 싶어 ‘클리프턴 강점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지에 적힌 34가지 강점 중 주요 5가지 강점을 읽어 내려가며, 확신할 것은 확신하고 약한 부분이 약점으로 작용하지는 않는지 살폈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방황하는 게 맞는 건지 자꾸만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는 지금 가장 중요한 시기에 서 있다. 나는 과연 다시 창업해야 하는 것일까. 그게 답일까.
이런 고민 끝에 ‘샐러드를 파는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아이템을 떠올렸다. 함께 일했던 장애인 선생님들은 퇴사한 지 1년이 넘었음에도 가끔 안부를 전해온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은 언제나 그들과 함께하던 자리로 돌아간다. 그들의 사회화와 직업 활동에 대해 늘 고민해 왔던 마음이 ‘함께 샐러드를 만들고 팔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그 공정은 실제 어떠할까. 마침 생계유지도 필요했던 시점에서 나는 ‘샌드위치 생산직’ 공고에 지원했고 바로 출근할 수 있었다.
근로계약서를 쓰는 것부터 철저한 위생 복장 착용, 대량 생산과 포장에 이르는 과정은 단순해 보여도 정교했다.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눈만 내놓은 ‘특별하지 않은 나’가 되는 일은, 그동안 짊어져 온 과도한 책임감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소음 속에서 고성이 오가는 불편한 상황도 있었지만, 의외로 재미를 느꼈다. 단순 노동이지만 결코 허투루 할 수 없고, 온종일 서서 일하며 욱신거리는 몸에 요령이 생기기엔 나는 아직 너무나 서툰 초보였다. 그런 내가 어려워할 때면 누구라도 손을 내밀어 도와주었다. 그 협동의 과정이 고마웠다. 매일 이어지는 잔업과 일용직으로서의 삶은, 처음 경험해 보는 생동감을 안겨주었다.
복잡한 사업계획서와 미래에 대한 불안 사이에서, 당장 눈앞의 샌드위치를 만드는 일은 의외의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레일 위로 샌드위치가 오자마자 놓아야 하는 토마토, 치즈, 그리고 양상추 한 줌.
막막한 마음에 찾아갔던 사회적 경제지원센터에서 들었던 “당신의 아이템은 특별하지 않다”는 차가운 말에 마음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라인에 서서 내가 만들어 내는 샌드위치 행렬을 보고 있으면, 적어도 현재의 이 일에 집중할 수 있어 다행스럽다.
종일 레일 앞에 서서 만든 샌드위치의 무게는 천근만근이었다.
하지만 어깨가 무거워질수록, 갈 곳 몰라 붕 떠 있던 내 마음은 오히려 차분히 내려앉았다. 적어도 오늘, 현재, 당장 눈앞의 샌드위치에 집중하는 것이 다른 걱정들을 잊게 해 주었다. 거창한 사업계획서나 다시 써야 할 이력서보다, 오늘 내 손을 거쳐 간 양상추 한 줌의 무게가 나를 더 단단히 지탱해주고 있다.
“특별하지 않다”는 차가운 평가를 들었을지언정, 특별하지 않은 내가 모여 누군가의 소중한 한 끼를 완성한다. 이름도 나이도 지워진 채 오로지 눈만 내놓고 일하는 이 시간 동안, 나는 비로소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샌드위치 식재료들처럼 차곡차곡 포개진다. 일정한 속도에 맞춰 손을 움직이다 보면 내 안의 소음들도 제 박자를 찾아간다.
이것은 일종의 수행이다. 몸의 고단함이 마음의 고단함을 덮어주는 일. 이 생경한 리듬 속에서 나는 다시 시작할 힘을 조용히 비축하고 있다.
내가 만든 샌드위치가 차갑기보다 신선하길, 그렇게 나도 리프레쉬되어 푸릇해지길 바란다. 이 창업의 고민이 끝내 흐지부지되어 그저 샌드위치 공장에서 일해본 사람으로 남는다 한들 뭐 어떤가.
나는 방황보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믿으면서 나만의 문장들을 계속 써 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