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페르소나
이직 및 퇴직 상담을 하다 보면 가끔씩 상담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대부분의 상담은 본인이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당장 떠나야 하는지 아니면 꾸준히 다녀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즉 퇴사를 결정하기 전에 보다 객관적인 조언을 구하고자 한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이미 마음속에서 퇴사를 결정하고 필자를 찾아온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본인의 결정에 대해서 찬성해 달라는 눈빛이 간절하다. 결국 상담을 통해서 퇴사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어떤 분은 실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당장의 이직 및 퇴사가 비합리적이어도 그 판단이 맞다고 우긴다.
본인도 현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우겨야만 하는 심정인 것이었다.
퇴사해야 하는 이유는 각양각색인데 결정적인 이유는 한 가지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경우라도 퇴사를 결심하게 한다. 보통의 논리적인 이유는 월급이 터무니없이 낮아 연봉을 높게 받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혹은 야근이 너무도 잦아 워 라벨을 추구할 수 있는 기업으로 가는 방법이 무엇일까 정도이다. 아니면 직장 내의 인간관계를 통한 갈등도 대표적인 퇴사사유이다.
비이성적인 이유로 고민하는 직장인은 다른 논리적인 퇴사 사유들을 머리 속에서 끄집어내고 결국 몇 가지를 혼합해서 얘기한다. 일종의 자기 합리화인데 마치 어떤 사람이 싫어지면 그가 하는 몸짓이나 표정, 말투까지도 싫어지는 현상이랄까....
그렇다면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퇴사사유란 무엇일까? 그것을 필자가 글로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해당 사유가 아니리라. 굳이 표현해보자면 아래와 비슷할 것이다.
'직장으로 향하는 출근길은 너무도 괴롭다.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는 가급적 피하고 싶다. 자리에 앉아있으면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오면 매우 피곤하고 회사에서 무엇을 한지 잘 모르겠다.
마치 내 몸에 맞지 않는 무거운 모자와 옷을 입고 물속을 걸어 다니는 느낌이다. 그냥 직장이 싫다 '
위의 상황만을 놓고 보았을 때,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가령 일종의 단기적인 무기력증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더 나아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위에서 표현한 심정적인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거나 이직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주변에서 아무리 만류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사를 떠난다. (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한다. )
퇴사를 결심한 사람을 다시 설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직급이 낮은 경우 우선 해당 팀장이 설득을 하고 안 될 경우 인사팀에 맡긴다. 인사팀에서도 힘들면 임원들이 나선다. 처음에는 설득했다고 착각하지만 시기상의 문제 일 뿐 다시 퇴직 상담이 시작된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마음이 떠난 것이다.
마음은 여러 가지 요소들을 기반으로 복합적으로 생성된다. 그 기반 중에 가장 밑바닥은 영혼이다. 영혼은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을 통해 만들어진 정체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정체성이 자리 잡히면 가치관이나 신념들이 뒤따라서 자리한다. 다른 설명으로 에고(자아)를 형성하고 사회 및 조직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서 자기 모습을 갖추게 된다.
우리는 현시대를 살아가면서 여러 가면을 쓴다. 보통 페르소나, 즉 외적 인격이라고 하는데 누구나 한두 가지 이상의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다. 어떤 TV CF를 보면 직장에서 매우 얌전하게 보이는 사람이 퇴근 후에 활동적인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상품 광고를 하는데 개개인들은 어떤 상황이나 위치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인격을 지니고 산다.
그런데 개인이 지니고 있는 페르소나 중에 직장에서 표출되는 것이 내적 인격과 부딪힐 때가 발생한다. 필자가 내적 인격이라고 얘기했지만 결국은 마음이다.
페르소나가 외적 인격이라고 하지만 그 또한 내부에서 발현된 것이기에 본질적인 것에서 벗어 날 수 없다. 내적으로 합의된 것이 아닌 외부와 영합하는 페르소나를 표출하면 할수록 마음이 상처를 입고 병에 걸리게 된다.
누구나 직감적으로 마음이 병들고 상처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환경을 개선하게끔 되어 있다. 기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싶어 한다.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퇴사의 이유는 내적인 본질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주변에서 '다른 곳으로 이직해도 별 소용이 없더라. 어디 가나 똑같더라'라는 발언들은 스스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거나 이직한 기업에서도 유사한 가면을 쓰고 있는 경우일 것이다.
퇴사한 동료를 오랜만에 만나서 처음 건네는 얘기 중에 '얼굴이 좋아졌다'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 글을 보면서 막연히 퇴사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우선 현재 쓰고 있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내면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여 진정으로 원하는 가면으로 바꾸어 쓰길 바란다. 퇴사하고 나면 어차피 그 가면은 쓸모가 없어 버려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