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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바 Sep 16. 2021

헝다의 파산은 과연 중국판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될까?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흐름은 반복된다. (History does not repeat itself, but it rhymes)"

- 마크 트웨인




이제는 네이버 뉴스 메인에까지 나올 정도로 국내 언론에서도 많이 다루고 있는 사안이다 보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겠지만, 현재 중국의 3대 부동산 개발 기업 중 하나인 헝다 그룹이 파산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히 3대 부동산 개발 기업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위치인지 감이 안 올 수도 있는데,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2021년 글로벌 500대 기업 순위에서 122위에 오를 정도로 큰 회사이다. (국내 기업과 비교하자면 삼성전자가 15위, 현대차가 83위, SK가 129위이다.) 포춘 500대 기업의 선정 기준은 매출액이므로 주식시장의 냉정한 평가를 받은 시가총액과는 차이가 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엄청나게 큰 대기업인 것이다.


그런 큰 회사가 현재 건물 공사 진행을 위한 대급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고, 투자자들은 본사에서 항의 시위를 하기 시작했으며, 자회사에 투자를 했던 임직원들이 항의를 하지 못하도록 재택근무를 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9월 14일에 보도된 자료에 따르면 청산절차 진행을 위한 재정자문사를 선정했다고 한다. 정확하게 청산 절차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선정된 회사들이 구조조정 및 청산 전문 기업들이므로 무슨 목적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대규모 위기에 처했다고 스스로 공시를 했으니 이는 사실상 중국 정부에 살려달라고 협박성 최후통첩을 한 것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


사실 헝다 그룹뿐만 아니라 중국 부동산 개발 기업, 그리고 중국 부동산 거품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시장을 개방한 이후(중국은 현재 정치적으로 1당 독재의 사회주의 체제이지, 경제적인 공산주의 체제는 아니다.) 중국은 빠르게 성장하는 개발도상국들이 늘 그렇듯 가파르게 상승하는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몸살을 앓아왔다. 여기에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중국이 대규모 부양책을 쏟아내자 중국의 부동산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했고, 부동산 가격의 가파른 상승은 과잉 개발과 부동산 금융의 확대를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안 좋은 것은 중국 경제가 부동산 경기에 지나치게 의존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방 정부와 공산당 간부들은 개발할 땅을 팔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느라 바빴고, 부동산 개발 기업들은 일단 건물과 집만 지으면 돈이 되었으므로 닥치는 대로 개발을 진행했고, 중국 국민들은 부동산은 사두기만 하면 무조건 가격이 올라 이익이 된다는 생각에 세입자가 있건 말건 돈이 생기는 대로 부동산에 투자를 했다.


그래서 2008년 이후 중국 중앙 정부가 경기를 조절하기 위해 유동성을 완화하거나 재정 부양책을 사용하기만 하면 그 돈은 무조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부동산 시장을 들썩거리게 만들었고, 슬슬 부동산 시장에 대한 위험을 감지한 중앙 정부가 부동산을 잡겠다고 나서면 경기가 침체되는 현상이 몇 년 주기로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 최근까지 중국의 현실인 것이다.


현재 중국 정부는 중국이 처한 저출산 문제의 원인이 부담스러운 주택 가격과 교육비, 빈부격차 등에 있다고 판단하고 이번에야말로 경기가 어찌 되었건 무조건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잡겠다고 천명한 상황이다. 얼마 전 발생한 사교육 규제와 빅테크 규제, 게임 산업 규제 등도 이 저출산 문제 해결 방안에 연장선상이다.


사실 중국 부동산 거품은 중국 정부가 난리 법석을 피우지 않더라도 더 이상 스스로 지탱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현재 중국에선 대학교 교수가 추정한 비공식 공실률은 대략 20% 수준이고, 비어있는 아파트는 대략 5~6천만 채를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 좋은 통계는 발표하지 않는 중국의 특성상 공식적인 부동산 거품의 정도는 알 수 없으며, 사실 정확하게 얼마나 안 좋은지는 중국 중앙 정부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헝다 그룹의 위기도 꽤 오래전부터 흘러나오던 이야기였다. 2017년 헝다의 쉬자인 회장은 중국 최고 갑부의 위치에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하는 듯 보였지만, 2018년 헝다의 채권은 신용평가사에 의해 투기 등급으로 평가되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2018년을 기점으로 중국 부동산 개발 기업들의 거품이 심각하며, 대규모 유동성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헝다의 위기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치명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중국 광둥성 정부가 헝다 그룹의 자회사 상장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헝다 그룹이 큰 위기에 처할 수 있으므로 도와달라는 내용의 문서가 인터넷에 유출된 것이다. 이 사건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헝다 그룹의 실수라기보다는 의도적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는데, 문서 내용에 헝다가 위기에 처할 경우 대략 8,441개 기업, 은행을 포함한 400여 개 금융회사, 직간접적인 고용 효과 300만 명이 위기에 처할 수 있으니 도와달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타이틀은 도와달라는 것이지만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결국 광둥성 정부는 헝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게 된다. 나 또한 이 사건을 기점으로 헝다 위기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기 시작했다.


(아래는 내가 즐겨 찾는 중국 경제 관련 브런치 작가님이 쓰신 헝다 그룹 문서 유출 사건에 관련된 글이다)

https://brunch.co.kr/@chulrhee/480




하지만 같은 이야기가 10년 가까이 반복되다 보니 사람들은 중국 부동산 시장 리스크에 대해 무척 무뎌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중국 부동산 거품이 곧 꺼질 수 있어!"에서 차츰 "중국 부동산 거품? 언젠가 꺼지겠지 근데 그게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잖아?"로 변했고, 급기야 중국이 별다른 위기 없이 G2의 위치에 오르다 보니 "중국만큼은 다를 수 있어"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 몇 년간 수천 개의 중국 기업이 도산하는 과정에서도 주식시장은 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전문가들이나 언론은 중국이 건강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며 칭찬을 할 정도였다. 이번 헝다 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달라졌다. 언론에서 헝다의 부도와 구조조정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알리기 시작하자 지금까지는 헝다 그룹의 주가가 박살이 나건 말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주식시장이 이를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이다.


헝다 그룹이 상장해있는 홍콩 주식시장을 필두로, 중국 상해 증시도 헝다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소식에 부동산과 관련된 기업들은 물론이고 은행과 금융회사들의 주가까지 제법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주식시장만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 부동산 시장은 이미 몇 달 전부터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작년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펼친 중국 정부의 정책도 약발이 끝나자 올해 여름을 기점으로 각종 경제지표들이 후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조업 지표도 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있고, 8월 중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17%나 감소했다. 급기야 9월 15일 발표된 중국의 소매판매 연 성장률은 2%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전문가 예상치가 7.5%였고, 8월 성장률은 8.5%였던 것을 감안하면 중국 경기가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식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부동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도 델타변이 확산 방지를 위해 봉쇄를 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헝다 그룹 부실에 대한 블룸버그, 로이터 등 미국 언론의 보도 이후 헝다에 대한 검색량이 치솟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갑자기 하루에 수십 건씩 관련 기사가 업데이트되고 있으니 미국에서도 곧 후속 보도 기사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헝다 그룹에 대한 미국인들의 구글 검색량>




그렇다면 이번에 만약 헝다가 파산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 지금까지 다른 많은 중국 기업들이 파산했을 때도 별다른 큰일이 있진 않았으므로 이번에도 별일 없이 넘어갈 수 있을까? 아니면 일부 언론의 말처럼 리먼 브라더스 사태와 같은 일이 발생하게 될까?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에 만약 헝다가 파산할 경우 1997년 초 한국의 IMF 외환위기의 시작을 알렸던 한보 그룹 파산이나 2008년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파산과 유사한 영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보 그룹이나 미국 리먼 브라더스, 그리고 헝다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위기의 종류나 처한 상황, 지금까지 흐름도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앞서 설명한 것처럼 동일한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크게 '한 국가의 경제를 크게 흔들만한 흐름의 시작'이라는 점에서는 헝다는 리먼 브라더스나 한보 그룹 파산과 몇 가지 유사한 잠재적 요인들을 가지고 있고, 유사한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간단하게 2008년 있었던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훑어보자.


영화 '빅 숏(Big Short)'이 유명해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가 흔히 리먼 브라더스 사태라고 이야기하는 일련의 사건들의 시작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부실과 그로 인해 파생된 금융상품들의 부실화였다. 1970년 금본위제 폐지 이후 시작된 자산의 증권화 현상이 부동산 대출을 고수익 저리스크 상품으로 만들었고,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에서 시작된 저소득층 주택 마련 정책이 소득이 낮거나 없더라도 집을 살 수 있도록 돈을 빌려주는 무분별한 주택담보대출(모기지 대출)을 만들어냈으며, 이러한 부실한 모기지 대출을 기반으로 파생 상품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면서 그 거래 규모는 제대로 파악이 안될 정도로 커지게 되었다. 실물 자산을 기반으로 한 파생 상품을 가지고 다시 이를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이 만들어지다 보니 파생상품이 파생상품을 낳는 지경이 되었고,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파생상품 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금융회사가 어떤 피해를 입을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맨 먼저 미국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베어스턴스가 무너졌고, 부동산 담보 대출 금융회사였던 페니메이와 프레디맥이 망하면서 국유화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크게 패닉에 빠진 상태가 아니었다. 금융회사들이 문제가 생기더라도 금융회사를 구할 권한이 항상 존재하는 연방준비위원회(이하 연준)가 금융회사들을 살려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의 반응만 보더라도 S&P 500 지수를 기준으로 2007년 10월 1500선 최고치를 찍은 후 2008년 9월까지 -20% 정도의 하락이 있었지만, 이 정도는 몇 년에 한번 돌아오는 통상적인 경기 침체 국면 정도의 하락에 불과했다.


그런데 단 하나의 사건이 모든 것을 바꿔 통상적인 경기 침체의 과정을 1929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로 발전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2008년 9월 14일 일요일에 발생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었다.


당시 미국 정부와 연준은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전까진 부실한 금융회사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적극적으로 사용했었다. 연준이라는 존재 자체가 20세기 초에 금융과 신용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구해낼 수 있는 구제기관이 있어야 된다는 목적하에 만들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금융회사를 살려야 될 목적과 방법을 충분히 갖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연준은 2007년부터 계속된 문제가 탐욕스러운 자본가들과 금융회사들의 실수로 인한 문제인데, 이들을 아무런 처벌 없이 살려준다는 정치적 공격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정치적 부담에 직면하자 정부와 연준은 리먼 브라더스는 스스로 살아나야 된다면 구제 금융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렇게 미리 경고를 해두면 리먼 브라더스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던가, 아니면 최소한 진짜 파산을 하더라도 사람들이 예상을 하고 있을 것이므로 패닉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 기대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리먼 브라더스는 부실의 규모가 정부나 연준 예상보다도 더 컸기 때문에 스스로 살아날 능력이 없었고, 사람들은 정부와 연준이 리먼 브라더스와 같이 큰 금융회사도 구하지 않았으므로 다른 금융회사들도 구제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충격에 빠졌다.


연준이 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기는 순간 사람들은 어떤 금융회사는 살아남고 어떤 금융회사는 살아남지 못할 것인지 판단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당연히 사람들은 그런 판단을 할 수 없었고 결국 모든 금융회사를 리먼 브라더스와 같이 취급하기 시작했다.


한편, 금융회사들은 금융회사 나름대로 스스로 살아남을 준비를 하기 위해 급히 모든 거래를 청산하고 현금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금융이란 서로를 믿고 금을 융통하는 행위인데, 사람들이 금융회사를 믿지 못하고, 금융회사가 금융회사끼리 서로 믿지 못하니 자본주의의 혈액순환이라 할 수 있는 신용이 경색되고 유동성은 순식간에 말라붙어버렸던 것이다.


주식시장은 다시 재차 급락하여 2008년 9월 S&P 500 지수 1200선에서 2009년 3월 670선까지 -30% 추가로 하락을 하게 된다. 그전까지 발생한 하락보다 더 큰 하락이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발생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만들어진 원인과 그토록 파장이 커질 수 있었던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정부가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거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문제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내릴 것


2. 문제의 규모와 파급효과가 얼마만큼 클지 알 수 없어 사람들이 공포에 빠질 것


3. 시장이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고 있을 것


이 세 가지 요소가 갖춰져 있으면 자세한 줄거리는 어찌 되었건 간에 결국 리먼 브라더스 사태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고, 이 세 가지 중 한두 가지만 빠지더라도 리먼 브라더스 사태와 유사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헝다 파산 위기는 위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상태이기 때문에 기존에 중국 기업들이 파산할 때와는 다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정부가 오판을 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정부는 지난 몇 년간 자국 경제에 껴 있는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애를 써왔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우리도 이름을 알만한 칭화유니 그룹(SMIC), 하이난 그룹, 화룽자산관리공사 등 제법 규모가 큰 기업들이 파산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큰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렇게 시장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중국 정부는 헝다를 포함한 부동산 개발 기업들도 디폴트가 되도록 용인할 가능성이 없다. 지금까지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중국 정부는, 정확히 말해 시진핑 그룹은 신 마오주의(공동부유)를 내세우며 공산주의 이념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들에게 기업과 자본가는 지나친 탐욕으로 인민들을 등쳐먹는 존재일 뿐이지, 인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 국민들에게 그렇게 어필을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들이 갑자기 특정 기업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다른 때보다도 낮아진 상황이다.


그래서 현재까지 중국 정부가 취했던 행동들은 모두 관계자들을 모아서 대책 회의를 하거나 현황 파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잘 하라고 지도하고 다그치는 것뿐이었다.


다만 9월 15일 블룸버그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잇따른 서방 언론의 보도와 소요 사태로 인해 중국 정부가 부담을 느낀 것인지 주요 은행들을 불러 모아 9월 20일 도래하는 헝다 회사채에 대해 이자를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지도를 했다고 알려졌다. 헝다는 올해 지급해야 하는 회사채 '이자'만 6억 6900만 달러(한화 약 8000억 원) 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문제의 규모와 파급효과를 예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헝다 그룹이 기존에 파산한 칭화유니 그룹, 하이난 그룹, 화룽 등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기업이라는 것에 있다.


칭화유니 그룹은 반도체/전자가 주력인 기업이었고, 하이난 그룹은 항공 산업이 주력인 기업이었으며, 화룽은 애초에 부실기업 청산을 위한 특수 목적 법인이었다. 하지만 헝다 그룹은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들이 무척이나 많은 부동산 개발 기업이라는 점에서 그 결이 다르다.


중국의 부동산 개발 기업은 대규모 레버리지를 일으켜 땅을 사고, 여기에 건물을 만들어서 되파는 기업들을 의미한다. 헝다는 이렇게 얻은 이익으로 은행도 인수를 하고, 생수도 만들고, 전기차도 만들며 중국에서 뜬다 싶은 사업들은 닥치는 대로 인수를 했다. 중국에는 이런 식의 부동산 개발 기업이 1,600개 정도 되고, 주식시장에 상장한 기업만 120개 정도라고 한다.


만약 헝다 그룹이 파산한다면 은행과 투자자들은 이를 헝다만의 문제로 한정 지어서 생각하고 끝낼까? 당연히 나머지 부동산 개발 기업들도 헝다와 같은 취급을 받을 것이며, 채권 만기 연장을 하지 못하거나 즉시 상환하라는 압박이 들어올 것이므로 극심한 유동성 부족 현상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이들 부동산 개발 기업들은 지금 헝다가 그러하듯 부채 상환을 현금 대신 부동산으로 대신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가진 것이 현금보다 부동산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중국 부동산 시장은 1선 도시들마저도 고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이 제값을 받을 수도 없을 것이고, 이런 걸 받으려고 하는 채권자도 없을 것이다.


간혹 중국의 부동산 대출은 LTV 비율이 60% 이상이므로 2007년 미국의 사례보다 안전하다고 이야기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부동산 개발 기업들과 재빨리 부동산을 처분하려는 개인과 비 부동산 개발 기업들이 갑자기 몰린다면 부동산 가격이 최고치 대비 50% 이상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이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지만 중국의 부동산 개발 기업들이 붕괴되면 부동산 시장이 급락하고 이는 단순히 중국 개인 자산의 부실화 뿐만 아니라 부동산 금융 비중이 엄청나게 높은 금융회사들과 그동안 땅 팔아서 세수 부족을 지탱하던 지방정부 등이 모두 한 번에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여기에 중국 외환 보유고가 사실 조작이었다거나 부족했다는 뉴스까지 나오면 이는 곧 세계 대공황급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사람들은 헝다가 무너지는 순간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그러했듯 제2, 제3의 헝다가 생길 것을 미리 상상하고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헝다와 유사한 부동산 개발 기업인 광저우 R&F와 화샤싱푸는 주가가 3개월간 -40%, -20%가량 하락한 상황이며, 신위안부동산, 판타지아홀딩스 등 부동산 관련 기업들의 주식과 회사채 가격이 급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의 의심과 공포는 한번 발생하기 시작하면 떨쳐내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전염성이 굉장히 높은 감정이다. 정부가 나서서 먼저 이를 차단하는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헝다를 향한 의심과 공포는 다른 기업들에게 들불처럼 번질 것이다.




3. 시장이 이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지 않다.


앞서 설명했듯 리먼 브라더스 사태 때도 사람들은 정부와 연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는 1년간 계속된 위기의 연장선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방심을 하던 순간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을 했고, 이어 며칠 뒤 다른 금융회사들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높다는 두려움이 전염되자 증시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어쩌면 현재 사람들이 헝다 그룹의 위기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중국 부동산 거품 붕괴 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수시로 나왔던 이야기이고, 이미 칭화유니 그룹, 하이난 그룹, 화룽 등의 대기업들이 망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헝다가 파산하더라도 그 영향이 어디까지 미칠지 현재로서는 알기 어렵다는 점도 사람들이 애써 이를 무시하게 만드는 요소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얼마나 큰 문제일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과 얼마나 큰 문제일지 알 수 없으므로 마치 당장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무시해버리는 것은 결국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만약 시장이 벌써 중국에 큰 문제가 생길 것처럼 걱정하고 있다면 오히려 헝다 그룹이 파산하고 중국 정부의 조치가 나왔을 때, 앙드레 코스톨라니가 말하는 페타꼼쁠리 현상(마법의 단어인 '선반영'과 같은 효과)이 발생하며 헝다의 파산을 끝으로 반등을 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이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중국에서 진짜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다면? 주식시장과 자산시장은 이미 거쳐야 했었던 고통스러운 과정을 더 짧은 기간 안에 겪어야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전자보다는 후자 쪽에 가까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영미 서방권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나 일본조차도 아직까지는 중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상태는 아니라 할 수 있다. 만약 헝다가 9월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진다면 후자와 같이 시장은 급격히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으며, 헝다가 무너질듯하면서 해를 넘겨 내년쯤 문제가 터진다면 (그리고 그 문제로 인해 주식시장이 오랫동안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면) 전자와 같이 문제가 터진 시점을 기점으로 반등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헝다 그룹의 파산 사태 역시 기존 다른 중국의 대기업들의 파산과 마찬가지로 당장 큰 영향 없이 넘어갈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해야만 될 것으로 보인다.



1. 중국 정부가 제2, 제3의 헝다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빠르게 선언한다.


결국 사건이 얼마나 커질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는 핵심은 사람들이 이 문제가 얼마나 더 커질지 알 수 없다는 공포에 빠지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중국 정부가 헝다의 파산과 구조조정을 맞아 더 이상 헝다와 같은 파산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기존 채권자들에 대해 정부가 해결을 해주겠다고 나서면 다른 부동산 개발 기업들은 헝다와 같은 취급을 받지 않을 것이며 헝다의 문제는 헝다선에서만 끝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 중국 정부의 스탠스로는 헝다 사태가 중국의 대규모 경제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실한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러한 선언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2. 중국 정부가 끝까지 잘 은폐한다.


중국 정부의 메시지와 일처리는 모호하고 은밀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제2의 헝다 발생 방지를 위한 약속을 공식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헝다 채권자들을 불러 모아 채권 이자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던 것처럼 비공식적으로 금융회사들을 불러 모아 부동산 개발기업에 대한 기존 채권을 정부가 보증할 테니 유동성 회수를 하지 말고 대출 연장 및 확대를 적극적으로 하라고 지시한다면 이는 금융회사뿐만 아니라 중국 사회 전체에 사실상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메시지처럼 알음알음 전파되어 기존에 있었던 중국의 수많은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해결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사람들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보증만 있다면, 정확한 내용을 알기 어려운 / 해결이 쉽지 않은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려는 경향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3. 시장 참여자들이 유동성과 강세 심리에 취해 잠시 사건을 무시한다.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시장이 중단기적으로는 돈과 심리에 의해 좌우된다고 설명한다. 단기적으로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에 따라 어떤 사건이 엄청나게 큰 문제로 보일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별거 아닌 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주식시장의 오래된 격언에 따르면 약세장은 호재를 무시하고 악재만 생각하고, 강세장에서는 악재를 숨기고 호재만 바라보는 것이다.


현재 주식은 물론 부동산, 암호화폐 등 모든 자산 시장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넘치는 유동성과 이를 기반으로 이어진 연속된 상승에 취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P 500을 기준으로 지난해 미국 시장은 연간 약 15% 이상, 코로나19로 인한 저점에서부터는 약 70% 이상의 상승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상승을 하고도 올해도 거의 20% 정도의 상승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의 역사상 이렇게 연달아 두 해가 크게 상승하는 경우는 전례가 드문 강세장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올해는 모든 잠재적 악재를 다 무시하고 상승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에 좋은 소식이 발생하면 좋은 소식이라고 환호하고, 경제에 안 좋은 소식이 발생하면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이 늦어질 수 있다며 좋은 소식으로 바꿔 생각하는 것이 2021년 미국의 주식시장인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당장 헝다 그룹에 문제가 생겨도 미국인들에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중국에서 대기업이 망했다고? 지금까지도 몇 개 망해 왔잖아? 그리고 여긴 미국이야!'라는 식으로 해석을 한다면 헝다의 파산이 연쇄적인 대규모 파산 사태를 불러일으키기 전까지는 미국에서는 무시될 가능성도 있다. 일단 미국 주식시장이 버텨준다면 유럽이나 다른 아시아 주식시장도 급락이 발생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




이번에도 역시 메모장에 간단하게 끄적이던 내용을 웹상에 게시 하려다 보니 엄청나게 길어졌다. 오랫동안 모니터링 해오던 일이 이제 막 터지려고 하다보니 뭔가 얼떨떨하기도 하고, 실감이 안나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한다. 아무쪼록 이 글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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