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 결혼 전 직장을 그만두었다. 신혼여행을 가기 전에는 불면에 시달렸고, 조증이 극에 달했다. 신혼의 달콤함 따위는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병이 심각할 땐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먹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병원과 약을 바꾸고 서서히 호전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라디오를 듣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의 카페인이 정신과 약의 나른함과 졸림을 잡아 주었다. 분명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 전에는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이었는데, 병에 걸리고 나니 커피 애호가가 될 수 있었다. 취향이 늘었다고 병에 감사해야 할까. 그렇게 빈티지 커피잔을 사서 모으고 드리퍼에 향긋한 커피를 내리면서 소소한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에게 라디오란 무엇일까. 처음 알게 된 것은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덕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라디오를 늘 들었던 한 살 터울 언니와 방을 같이 쓴 덕분에 질리도록 매일 가요와 팝을 들었다. 그때는 원치 않던 음악을 매일 들어야 해서 불편했지만 라디오와 음악에 익숙해진 계기가 되었다.
나의 즐거운 일과 중에 하나인 사야할 물건 검색과 쇼핑의 시간이 다가왔다. 최종 낙점된 아이는 티볼리 라디오로 그 소리가 특별했다. 디자인도 직관적이고 훌륭하지만 중저음의 따뜻한 울림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렇게 말하긴 거창하지만 영혼을 울리는 소리라고 해야 할까. 티볼리로 듣는 라디오 DJ의 따뜻한 음색이 좋았고 그들의 유머가 좋았다. 가까운 관계보다 멀리서 하는 그들의 위로가 마음에 들었다.
음악에 입문한 시절은 20대였지만, 20대의 나는 멋 부리듯 음악을 듣고, 앎과 허세로 이해했다면 음악을 마음의 동반자, 진정 치료제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조울병에 걸리고부터다.
답답하고 안절부절 해지고 괴로울 때 위로가 되는 음악을 들어야 우울이 멈추고 눈물이 흘렀다. 이소라의 노래들은 안정제 보다 효과가 있었다. 이소라의 Rainy days and mondays(My one and only love), Track 9(이소라 7집), 바람이 분다(눈썹달), 바람이 불어요(슬기로운 의사생활 ost) 등 그녀의 목소리는 뭐랄까 나에게 특효가 있어서 가사를 음미해도 좋고, 목소리가 주는 음색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쉽게말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Take me home, country road(귀를 기울이면 ost)도 일본어 가사가 저절로 외워질 만큼 좋아하는 곡이다. 원곡자인 존 덴버가 어떤 삶을 살았든 어떻게 죽어서 컨트리로드로 돌아갔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세계관과 캐릭터 등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세계가 좋아 보였다. 원곡자보다 더 잘 부르는 사람, 그 시대에 그 노래로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과 주고 본질을 알게 하는 보컬이 있기 마련이다. 클래식도 연주자가 과거 거장의 곡으로 감동을 주듯 말이다. 조성진의 쇼팽이 고요한 우아함으로 좋다고 하듯이.
분명 아프기 전에는 그토록 죽을 만큼은 공감하지 못했던 음악이 나를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