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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l 02. 2024

강요된 미니멀리즘, 좋다!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어 짐을 줄이고 있다.

불과 반 년 전에 이사를 하면서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또 들고 왔다고?


라는 생각이 드는 아이템들을 계속 발견하면서 새삼 놀란다.


지난 번 이사 때, 나는 오피스텔과 아파트 사이에서 고민했다.

오피스텔로 결정했다면 지금 이렇게 짐이 많지는 않을 거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택지가 없다.

그냥 오피스텔로 가야 한다.


선택하지 못했던 선택지, 미니멀리즘이

이번에는 단 하나뿐인 선택지로 강요되고 있는 거다.


어떤 블로그 이웃님이 하는 것처럼, 

매주 한두 가지라도 쓰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고 나눔했더라면 더 좋았을 거다.


한꺼번에 가져다 버리려니 나눔이 쉽지 않다.

사진 찍고, 당근 올리고, 채팅해서 약속 잡고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없다.


풀지도 않은 반 년 전 이사짐을 다시 헤쳐보며, 나눔하고 버릴 것들을 정리한다.


왜 아직도 가지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넷북(초소형 노트북).

다이소에서 샀지만 쓰지 않고 잠자고 있던 침실용 알람 시계 등등 소형 가전이라기보다 장난감들.

휴대용 배터리, 무선 충전기, 블루투스 스피커 등등 주로 선물받은 물건들. 

마사지기, 주방용 소형 도구, 초음파 세안기 등 호기심에 돈 날린 물건들. (다행히 테무, 알리에서는 별로 안 샀다.)

어디에서 났는지 모르겠는 (아마도 은행 적금 선물인 듯) 스테인레스 소스팬. (Geithanier라는 독일 브랜드라는데, 나무위키 검색해 보니 뭔가 아주 재미있는 브랜드다.)


이런 물건들은 금전적인 고려 사항뿐이라서, 헤어지기 쉬운 편이다.

더 어려운 친구들은 역시, 감정이 남아 있는 것들.


샌디에고 시절 엄청 사고 팔던 포케몬, 유희왕 카드.

스위스 시절 엄청 사 모으던 보드게임들.

그리고 그동안 이사할 때마다 한 번씩 쳐다 보고 다시 짐속 깊숙히 들어가 잠자게 되는 여행 기념품들.


별로 안 유명하지만, 나는 엄청 재밌다고 생각하는 게임, <알함브라>


그래도 이 친구들은, 눈 감고 생각을 정리하면 헤어질 결심이 가능한 축에 속한다.

그 다음 단계, 즉 더 어려운 친구들도 있다.


스위스 시절, 아니타와 남자 친구 2인 밴드의 노래 CD.

세계 각지에서 근무하며 받은 편지, 엽서, 이별선물.

이런저런 인연으로 오랫동안 연락하며 지낸 지인들의 편지.


세 번째 관련해서는, 군대 시절 여자친구에게 받았던 편지를 찾고 싶은데, 찾을 수가 없다.

어딘가 깊숙히 숨겨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버렸나 보다.


요즘 같았다면 휴대폰으로 사진이라도 찍어두고 버렸을 텐데, 아쉽다.

아니, 어쩌면 기억 속이라 더 아름다운 것일 수도.


아무튼, 이 세 번째 부류의 친구들은 이번에도 헤어지지 못하고 데려간다.


***


또 다른 이유로 버리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다.

아토피 때문에 반려동물은 키우지 못해서, 반려식물로 함께 지내던 친구들.


당근으로 새 주인을 찾는 중이다.

아무쪼록 잘 살기 바란다.



짐을 확 준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 기분이 나아진다.

놓아줌, 버림으로 인한 해방감.


쓰레기 봉투로 들어가는 것들도 있지만, 

대개 종이(보드게임), 플라스틱(장난감), 고철류(주방용품) 등 재활용품이다.


앞으로는, 사는 단계에서 한번 더 고민하자.

쓸데 없는 소비는, 나 자신에게도 지구에게도 좋지 않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강요된 미니멀리즘이지만, 내 삶의 또 다른 기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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