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월곡동에는 고려인마을이 있다. TV 다큐에도 나온 유명한 곳이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찾아보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10월이 되어서야 드디어 왔다.
큰길가에 고려인마을이라는 안내 조형물이 있다.
우선, 오늘의 주요 목표인 고려인문화관으로 간다.
입구 조형물은 1919년 3.1 운동 당시, 연해주에서도 같은 취지의 행사가 있었음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화면 한가운데 설명문에 첨부된 사진이 최근에 발견되어, 1919년 3월 1일 당시, 연해주도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이 사진으로 증명된 것이다.
아침 10시 오픈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왔는데, 아무도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입구에 계시던 분이 방명록을 적으라 하셔서 적었는데, 평소에도 방문객이 그다지 많지는 않아 보인다.
방명록을 살짝 보니, 교육 목적의 단체 방문이 많은 것 같다.
오늘은 휴일.
30분 정도 관람하는 동안, 관람자는 나 하나뿐이었다.
고려인들의 역사는, 크게 보아 1937년 강제 이주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 사진에 나오는 안중근, 김 알렉산드라, 최재형, 한창걸은 모두 강제 이주 전, 연해주 시기의 위인들이다.
안중근은 워낙 유명하고, 최재형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그의 업적에 비하면 어이없을 정도로 안 알려져 있기는 해도)
김 알렉산드라나 한창걸은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김 알렉산드라는 당시 하나로 묶여 있던 항일 독립 운동과 구소련 혁명 전선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백군에게 붇잡혀 고문을 받고 총살당한 것이 1918년이다.
한창걸은 비슷한 시기 연해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한 인물이다.
백군과 일본군에 대항한 싸움에서는 살아남았지만, 어이없게도 정치 탄압의 결과 숙청되었다.
사망시기조차 모른다.
편히 살 수 있는 길을 버리고 험한 길을 간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의 존재를 몰랐다.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모든 전시물은 한글과 러시아어로 쓰여 있다.
"까레이스끼"라는 단어를 러시아어로 쓴 것도 처음 보았고, "역사"라는 단어나 "백두산"을 키릴 문자로 쓴 것도 처음 보았다.
연해주로 처음 이주한 사람들이 살던 초가집을 보면, 저런 곳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직후, 고려인들은 모국어 교육을 금지당했다.
그 와중에 우리말을 지켜낸 것은 신문 "레닌기치"와 극단 "고려극장"이다.
아래 사진은 1979년 고려극장이 공훈 배우 최봉도에게 수여한 표창장이다.
손글씨로 적은 것도 정겹고, "존경하는 최봉도 동무!"라고 시작하는 표창장 문안도 재미있다.
러시아 땅이 얼마나 넓은가.
2층 전시관 끝자락에 걸려 있는 이주 지도를 보면, 고려인들의 기나긴 행군의 엄청난 공간적 크기에 놀랄 밖에.
2층 관람을 끝내고 계단을 다시 내려오면, 건물 바깥 벽 전시물을 거쳐 주차장으로 나오게 된다.
러시아와 중앙 아시아 국가들을 표현한 아기자기한 조형물이 귀엽다.
작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작다.
규모도 조금 커지고, 기념품 가계도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길로 나오니, 한 쌍의 남녀가 지나가는데 러시아어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