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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22. 2024

518자유공원 방문

눈비 날리는 날에

지난 주말에 귀찮다고 미룬 518자유공원에, 이번 주말에 가기로 마음먹었지만,

아침에 문을 나서니 눈비가 섞여 내리고 있었다.

돌아설까 하고 0.5초 정도 망설였지만,

그냥 강행돌파.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을 상대로 잔혹행위가 벌어졌던

상무대 법정, 영창 등 시설을 이전하여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원래 자리에서 100미터 정도 이동했다고 하니, 여전히 상무지구에 있는 것이다.


입구 펜스를 노란 리본들이 담쟁이처럼 덮고 있다.



관람 순서 안내판도 있는데, 관람 동선이 꽤 효율적으로 짜여 있다.



별도 건물에 있는 전시 공간에는 당시 계엄사령부에서 배포한 경고문 쪽지,

그리고 시민들이 직접 만든 결의문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상무대 경내로 들어서면,

내무반, 사무실, 식당, 영창, 법정 등이 보존되어 있다.



소설 <소년이 온다>에도 묘사되었던,

2인 1조의 식판.

어제까지 함께 싸웠던 동지를 미워하게 만드는,

정말 단순하지만 악랄한 괴롭힘 방법이다.


숟가락이 하나 아니었던가


고문과 가혹행위를 묘사한 전시물들이 곳곳에 있다.

사진을 더 찍을 수도 있었지만, 무슨 소용인가 싶어 그만두었다.



전시장 중 하나는 경고문과 함께 검은 커튼으로 막혀 있었다.

경고문 내용은, 시체 사진이 있으니 노약자는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커튼을 걷고 안으로 들어섰으나, 웬일인지 불이 켜지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그 상태로 시체 사진을 마주하니 무서워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어차피 관람객은 나 하나뿐이었으니 별일 없었겠지만.)


<26년>에서 밝혔던, 강풀 작가가 518 희생자들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섬뜩한 느낌이 이런 것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고문 현장은 저 급식실 안쪽의 설거지 공간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영창 전시물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2인 1조의 식사,

10여 시간 동안 가만히 정좌하게 하는 형벌,

빼곡히 수감되어 사생활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공간.



군사법정도 잘 보존되어 있다.



영화 <택시 운전사>와 두 주인공에 관한 전시물은

이 숨막히는 공간에서 그나마 웃음을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주인공 송강호의 노란색 운전사 유니폼 때문일까.



당연한 얘기지만, 거울상은 좌우 반전이다.

그걸 잘 보여주는 사진.



언론 검열을 보여주는 전시물.

검열 전후의 신문 1면을 나란히 보여준다.



공원을 돌아보는 중, 정유정의 <영원한 천국> 오디오북을 듣고 있었다.

소설은 가상현실 기술이 생활에 구현된 근미래가 배경이다.


가상현실을 통해 행복만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한계에 다다르면,

고통을 경험하여 도파민 역치를 낮춘다고 한다.

고통을 경험하고 나면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아무리 빈곤한 식사라고 해도,

당시 시민들이 강요당한 2인 1조의 식사보다는 모든 점에서 나으리라.


그러나,

고통에 못 이겨 정신질환을 겪고, 결국 자살한 사람들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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