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쇼콩 우승자 브루스 리우의 실황앨범을 꼼꼼하게 다 들어보았다. 애시당초 그의 우승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터라 최대한 선입견을 내려놓고 들어봤다. 그러나 유튜브로 봤던 라이브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여전히 최종 결과에 대해 의문부호가 붙는 것 말이다. 좀더 쉽게 말해 1등감은 절대 아니라고 느꼈다. 다만, 그의 연주는 그 연주자체가 아닌 내 자신의 마음에 깊은 성찰을 촉발하는 희한한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브루스 리우의 연주는 일단 화려한 테크닉이 돋보였고 재기발랄함도 두드러진다. 그러나 음악을 대하는 진지함이 상당히 아쉬웠다. 특징적인 리듬을 부분적으로 굉장히 과장해서 가지고 놀면서 마치 게임하듯이 피아노를 친다. 쇼팽이 앞에 있다고 가정했을 때 쇼팽과 실없는 농담따먹기를 하면서 친해지려 한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번 쇼콩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높이 평가한 연주자는 김수연이었는데, 그녀의 쇼팽은 격조높고 우아하고 따스했으며 무엇보다 쇼팽다웠다. 쇼팽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녀에게 기립박수를 보낼 것이란 확신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녀는 파이널에 가지도 못했다. 그리고 게임하듯 피아노를 치던 브루스 리우는 파이널까지 살아남아 1등까지 차지했다. 시상식 직후 그는 인터뷰에서 "피아노는 나의 15가지 취미 중 하나"라는 발언을 했다. 솔직히 말해 제대로 멘붕이 왔다. 내가 느낀 그대로 게임하듯 피아노를 친다는 걸 본인이 직접 입으로 증명해버렸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작곡가의 의도를 공감하고 따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본인의 재미가 우선되어서는 곤란하며, 트렌디함이 반드시 정답이 될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하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가 꼰대같은 생각을 하고 있나 싶기도 하다. 브루스 리우는 97년생, z세대에 속한 사람이다. z세대들은 모태 디지털 세대로 특징지어지며, 아날로그를 아예 모르는 세대라 봐도 무방하다. m세대인 나만 해도 cd로 음악을 오랫동안 들어왔고,lp나 카세트 테이프에도 별 거부감이나 이질감이 없다. 어린 시절에나마 경험해본 매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z세대들은 cd의 존재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처음 사용한 휴대폰부터 바로 스마트폰인 세대인 것이다. 그런 만큼 그들은 무슨 일을 하든 게임하듯 빌드업을 해나간다. 브루스 리우도 그런 마인드로 살아오고 피아노를 익혔을 가능성이 높다. 그를 본 내 느낌을 굳이 갖다 붙여 보자면, 하이든이 베토벤 영웅 교향곡을 현장에서 직접 듣고 새 시대가 완전히 열렸다고 중얼거리던 그 느낌 비슷할 것이다. 전대회 우승자만 해도 정통파 of 정통파인 조성진이다. 그러나 브루스 리우의 스타일은 조성진과 완전히 대척점에 존재하고 있다. 히틀러와 체 게바라가 한 나라에서 차례로 대통령이 되는 상황에 비유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유일까? 어쨌든 브루스 리우의 등장은 z세대의 특징을 가진 자가 주류 음악계에 전입신고를 마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런 성찰을 해본 뒤에도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브루스 리우의 연주가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연주가 업데이트되는 족족 챙겨는 볼 예정이다. z세대 피아니스트의 선두주자인 그가 연착륙을 할지 경착륙을 할지 지켜보는 재미는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