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뮤지션 Mar 23. 2020

리시차가 온 몸으로 보여준 베토벤의 본질

베토벤의 근본은 슬픔에 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여성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는 많은 열성팬을 보유한 연주가지만, 나는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연주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의 그녀에 대한 이미지는, 꽤 많은 경우에서 작곡가를 자꾸 앞서가려는 본능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이건 클래식 음악 연주에서는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행보만큼은 늘 높이 평가해 왔다. 항상 청중들과 소통하며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고, 코로나 19로 쑥대밭이 된 시국을 뚫고 “대한민국을 믿는다”고 외치며 내한공연을 예정대로 진행한 강단은 큰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물론 나는 그 내한공연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리시차는 베토벤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온 몸으로 강하게 설파했다. 시국과 리시차 본인의 개인적인 사정절묘하게 맞물려서 말이다.

https://youtu.be/ETjfAIHpJjY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29번 Bb장조 op.106 "함머클라비어"

 발렌티나 리시차, 피아노


 리시차가 들고 나왔던 프로그램은 올해가 베토벤 250주년의 해임을 의식한 듯 묵직한 피아노 소나타 세 곡(템페스트, 열정, 함머클라비어)이었다. 그런데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이었던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에서 리시차는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는데, 3악장을 연주한 후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다가 결국 4악장을 연주하지 못하고 앵콜곡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그녀는 공연 후 주최사를 통하여 이렇게 입장을 밝혔다.


갑자기 86세이신 고령의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더불어 사람들이 계속 코로나 때문에 안 좋은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여기 와주신 한국 사람들도 다 마스크를 낀 채로 있는 것이 제 마음을 건드렸습니다.곡도 굉장히 공감을 일으키는 곡이라 감정에 복받쳐 끝까지 연주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달빛이 사람들을 따뜻하게 비추고 감싸주는 것처럼 사람들을 감싸주고 싶어서 월광을 연주했습니다. 오늘 저의 연주가 많은 사람에게 달빛 같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미안하고,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소식만 들었기에, 처음에는 연주자의 책임감 부족이라고만 생각했다. 함머클라비어 소나타가 어떤 곡인가. 그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이 어렵고 거대한 곡을 연주할 생각을 했나 따위의 생각만 가득했다. 그런데 이 입장을 접하자, 그 생각이 얼마나 꼰대 같은 고정관념이었던가를 반성하게 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리시차는 앞서 언급했듯이 시국과 연주자 본인의 개인적 사정 맞물려 베토벤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온 몸으로 강력하게 설파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사실 음악의 본질이 이런 돌발적인 사고로 인해 확실히 증명되는 사례는 과거에도 없지 않았다. 영국의 성악가 캐슬린 페리어는 지휘자 브루노 발터와 함께 말러의 “대지의 노래”를 연주하던 중 마지막 악장에서 흐느끼며 노래를 부르다가 마지막 가사의 단어 한 개를 부르지 못했다. 페리어는 연주 후 발터에게 사과했지만, 따뜻한 인성으로 많은 존경을 받던 발터는 “우리 모두가 당신처럼 훌륭한 음악가라면 모두 울었을 것입니다” 라고 화답했다는 훈훈한 일화가 있다. 어쨌든 이 일화로 페리어와 발터는 말러의 이 슬픈 작품이 가진 본질을 확실하게 증명한 것이다.


 이 베토벤의 본질이란, 바로 슬픔이다. 이 명제는 우리가 베토벤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에 비춰봐서는 크게 공감이 안 갈 명제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베토벤의 이미지는 웅장함, 환희, 파워풀 따위다. 물론 틀린 묘사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상적인 베토벤에 대한 이미지 묘사는 베토벤의 본질이란 큰 전체집합에서 아주 작은 부분집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베토벤의 생애를 상고해 보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일반인이 보기에는 인간적으로 너무나 불행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렸지, 음악가로서 궤도에 오를 만하니 귀가 멀기 시작하지,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나빠져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 되어버렸지, 말년에는 제수와의 머리아픈 법적 공방전으로 5년을 재판장에 끌려 다니며 조카의 양육권을 획득했건만 조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만 치고 다니지…거기다 베토벤은 미혼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보살펴 줄 아내도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탄생한 음악들이 베토벤의 음악들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의 본질 깊숙한 곳에는 슬픔이 근본적으로 묻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것을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베토벤은 알면 알수록 측은한 마음이 드는 작곡가다”..


나도 베토벤의 본질이 슬픔이라는 것을 가슴 속 깊이 깨달은 지는 의외로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고 나니 베토벤의 작품들이 근본적으로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계기는 작년에 계획도 거의 세우지 않고 즉흥적으로 떠나다시피 한 빈 여행이었다. 빈의 한 한인민박에 여행짐을 풀어놓은 후, 나는 철저히 가슴이 지시하는 네비게이션에만 의존해(심지어 구글맵도 거의 쓰지 않았다!) 빈을 여행했는데, 그것이 좌표로 찍어놓는 곳은 예외없이 베토벤의 유적들이었다. 책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베토벤 관련 유적들을 두 발로 모두 걸어다녔고, 특히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썼다는 그린칭이라는 마을에서는 발에 초강력 접착제라도 붙여놓은 듯 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유서를 쓸 당시의 베토벤의 심경이, 당시에 너무나 심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던 나의 상황과 오버랩되어 가슴을 강하게 울렸다. 그리고 여행의 막판에 무지크페라인에서 안드리스 넬슨스가 지휘하는 빈 필의 연주로 베토벤 교향곡 2번을 관람했는데, 이 곡이 상당히 밝은 심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객석에서 옆 사람이 눈치를 줄 정도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자살까지 생각했던 베토벤의 극단적인 고뇌와 극복이 피부로 전달되어 가슴을 뚫었기 때문이었다. 유명한 교수의 강의를 몇백만원 주고 듣거나 회당 몇십만원 하는 유명한 선생님의 레슨에서도 깨달을 수 없는 살아있는 베토벤을 직접 만나고 온 여행이었던 것이다. 이 여행 이후 나는 베토벤의 본질이 슬픔이라는 것과, 그 속에서 무한한 자유를 추구한 것이었음을 종교처럼 믿기 시작했다.


사실 나처럼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은 배우는 과정에서 베토벤의 소나타들은 좀 의무적으로 친다는 인식이 상당히 강하다. 음대 입시의 과제곡으로 베토벤은 거의 100퍼센트 등장하고, 입학 후에도 베토벤의 작품들은 매우 막중한 비중으로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토벤의 본질이 슬픔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는, 고백건데 “의무감”이라는 장애물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느낀다. 마음에서 우러나서 베토벤을 치게 되고, 프레이즈 하나하나에 연습 과정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기도 한다. 이것을 느끼게 되니, 손이 안 돌아간다 따위의 테크닉적인 문제가 문제로 느껴지지 않게 된다. 음악 자체가 품고 있는 정서를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손을 알아서 딸려 오게 만들 수 있겠다는 굳은 믿음과 자신감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리시차가 말하고자 했던 것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3악장이 품고 있는 그 극한의 슬픔을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하고 연주에 임했을 것이 자명하기에. 그 현장에 전공을 준비하고 있는 피아노 입시생들이 얼마나 왔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많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레스너들은 리시차의 연주를 공부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현장에 있던 입시생들이라면, 베토벤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거대한 영감을 얻어갔을 것이며, 그것은 그들의 음악인생에 크나큰 밑천이 되리라. 이보다 어떻게 더 정확하게 베토벤의 슬픔이란 본질을 설파하겠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슈만이 쇼팽을 처음 본 그날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