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엔 동물원을 가는날이 소풍날 처럼 신나 총총 걸음으로 따라나섰지만 막상 우리 안에서 축처져 우울하게 지내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가여움이 들었던 마음이 남아 있다.
실내 동물원의 암사자
아이에게 동물원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나니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동물을 접하게 하면 좋을 지 고민이 되었다.
남편은 이제 우리 아이도 동물원에 갈 나이가 된 것 같다고 동물원에 한번 가자고 하는데 애써 그의 말을 외면하면서 동물원에 가지 않은 지 3년째다.
동물원에 가지 않고 동물의 삶을 보여주기
그러던 중 의도치 않게 고민이 자연스럽게 해결된 사건이 있었다. 호주 여행을 간 친구가 캥거루 모양의 작은 손지갑을 아이에게 주라며 선물로 사왔다.
아이에게 "엄마 친구가 호주에서 선물을 사왔네~" 라고 했고, 아이는 호주가 어디냐며 궁금해했다.
이때다 싶어 전집으로 사둔 자연관찰책의 부록인 세계동물지도를 펼쳐 호주를 가르키며 여기가 호주고 여긴 코알라나 캥거루가 살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아이의 관심은 갑자기 아프리카로 옮겨갔다. 그럼 이쪽(아프리카)에는 뭐가 살아? 설명충 아빠가 어느새 아이 옆으로 와 아프리카에 대해 미주알 고주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아이의 관심은 아프리카와 정글이 됐다. 아이는 아프리카카 보고 싶다고 했고 아프리카를 당장 갈 수 없던 나는 넷플릭스의 다큐로 아프리카를 보여주기로 아이와 약속했다.
아이와 처음 본 자연 다큐 '야생의 새끼들'
아이와 처음 보게 된 다큐는 야생의 새끼들이라는 다큐멘터리였다. 아기 사자 카야를 주인공으로 한 이 다큐는 아이가 몰입하기엔 충분한 서사였다. 거대한 정글에서 살아남기게 아직은 너무 연약한 존재인 아기 사자 카야에게 자신을 대입해 표범아저씨, 아프리카 들개 아저씨들이 나타날때마다 아이는 몸을 움츠렸다. 엄마 사자가 사냥을 나가 형제들과 혼자 남게 된 카야를 볼 때면 눈물을 훔치며 엄마는 회사에 돈벌러 가고 어린이집에 홀로 남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측은해하는 듯했다.
잔인한 상위 포식자 인간
꼭 아이와 함께이지 않아도 나는 평소 자연 다큐멘터리를 즐겨본다. 넷플릭스가 나오기 전엔 '동물의 왕국'만한 자연 다큐는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 외의 지구 상의 다른 종이 어떻게 각자의 서식지에서 생존을 하는지에 대한 사실적 정보를 얻음과 동시에 적당한 서사 부여는 내 관심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넷플릭스가 나오고는 '우리의 지구' 시리즈를 즐겨 본다.
일과 육아를 퇴근하고 조용하고 어두워진 집에서 혼자 자연 다큐를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하고 또 겸허해지기까지 한다.
가늠도 안되는 우주를 생각할 것도 없이 당장 이 지구만 생각해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문명은 한낱 한 종의 생명체들이 머무는 서식지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겪은 힘들다 여겨진 일도 이 지구,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까지 미친다.
우주까지 가지 않아도 이 지구에만 해도 인간이 알지 못하는 생명체들과 또 그 생명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 나가는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육아와 일 모두 퇴근하고 혼자 자연다큐를 보는 나만의 힐링시간
자연 다큐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삶에서 인간들의 삶을 반추해보곤 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참으로 비참하면서도 때론 비열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어떤 가치를 능가하는 고귀함이 스며있단 생각을 했다. 거대한 성체 물범에겐 함부로 다가가기 어려운 고래들이 여리디 여린 아기 물범을 타깃으로 잡는 것은 비열했지만, 결국 그들 역시 굶어가는 자기 새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필연적으로 취할 수 밖에 없는 전략이고 또 희생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한편으로 인간의 무분별한 이기심으로 플라스틱을 먹고 속절없이 죽어가는 알바스트로를 비롯한 다양한 생명체들을 보면서 아무죄도 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삶이 참 비참하면서도 인간이 이 지구에서 참으로 잔혹한 상위 포식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의 자유'에 대해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이동을 한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365일을 주기로 계절이 바뀌면서 지구상의 생명체는 각자 생존에 유리한 장소를 찾아 수백에서 수천키로미터를 여행한다. 그 여정 자체는 참으로 경이롭고 신비롭다. 한편으로는 이런 이동으로 인해 우리 몸속의 혈류와 같이 지구가 흐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동물원의 동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으로 안좋다. 어떤 사람들은 살기 힘든 자연 속에서 생존하느니 비바람 막아주고 먹이 제때제때 주는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이 더 낫지 않냐는 말을 하곤 한다.
교도소가 제 아무리 최신식 호텔급에 최고급 식사가 제공된다 한들 이동의 자유를 박탈 당한 그 곳에서 행복할 사람이 있을까?
삶이 고되도 나에게 주어진 내 삶을 내가 책임지고 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연을 누비며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 땅의 주어진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권리이지 않을까. 생명에게 주어진 그 권리를 인간이 박탈할 자격이 있을까.
햇빛 한번 못 보고 쾌쾌한 실내 동물원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동물들을 생각하면서,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며 하나씩 해나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