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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남 Aug 11. 2023

[초단편소설] 인간동경

늙은 개가 바다로 가는 방법

오늘도 늙은 개는 슈퍼 앞에 있다. 슈퍼 앞에는 개 집이 있고, 개 집 안에는 늙은 개가 있다.

늙은 개는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목줄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목줄이 개 집에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는 개집 채로 끌고서 가출을 했던 적도 있다. 집이 싫어서라기보다, 그냥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슈퍼 앞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를 보고 싶었다.


그 시절, 늙은 개는 가출을 했었다. 견생 단 한 번의 일탈. 

바다를 향해 뛰었다. 이윽고, 다다른 곳은 바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늙은 개가 다다른 곳은 한강이었다.


다행인 것은 해가 중천에 뜨자마자, 헥헥대며, 숨을 헐떡이는,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끝이 보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바닥에 엎어져 있는,

늙은 개는 지금도 그때 본 것이 바다라고 믿는다.


이렇게 뜨거운 여름날이면, 늙은 개는 떠올린다. 오랜 고생 끝에 다다른 곳에서 온몸 가득 느꼈던 자유의 감촉.

앞발이 바닷물에 닿았을 때의 시원한 감촉. 철벅 철벅 바닷물을 뛰어다녔었다.

늙은 개가 아직 늙은 개가 아닐 때, 힘이 세고, 덩치도 더 크고, 발톱도 더 단단하고 날카로웠을 때,

온 힘을 다해 개 집 채로 끌고 뛰쳐나갔었다. 지금은 비록 슈퍼 앞에서 한 발도 못 움직이고 헥헥헥 숨을 몰아 쉬고 있지만,


여름이다. 뜨겁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시야를 흔든다.

뿌옇게 번지는 시야 머로 바다가 보인다.


풍덩.


 빠지고 싶다. 바로 저기 바다가 있다. 늙은 개는 자유형은 못해도, 배은 못해도, 개헤엄은 자신 있다.

그때도 멋지게 개헤엄을 쳤다. 자신 있었으니까, 자신 있었는데, 물밑으로 꼬르르,


가라앉았다. 목줄 때문이다. 목줄에 매달린 개집 때문이다.

하마터면, 개죽음당할 뻔했다고,

한편으로는 개죽음당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지나가는 불법 낚시꾼 아저씨가 낚싯대를 던져 구해주었다.)


왜냐하면 지금, 늙은 개는 슈퍼 앞에 있기 때문이다. 다 늙어서 개집을 끌고 달릴 힘이 없기 때문이다.


툭.


슈퍼 할머니다. 양철로 된 개밥그릇에 밥 한 덩이를 던져준다. 비빔밥에 가까운 개밥이다. 허연 밥에, 된장찌개에, 시금치까지. 늙은 개는 사료보다 개밥을 더 좋아한다. 떠날 수 없는 이유 중에는 개밥도 한 몫했다. 한 번 맛보면 이 맛을 떠날 수 없다. 할머니는 한 번도 늙은 개의 끼니를 미루거나,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본인의 밥을 잊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늙은 개와 함께 항상 거기서, 평생 때되면 밥 먹고, 부채질하고, 잠들었기 때문이다.


개 같은 일상이 반복되다, 슈퍼 할머니가 먼저 죽을 수도 있고, 늙은 개가 먼저 죽을 수도 있다.  조만간 둘 중 하나는 죽을 것이다.  늙을 만큼 늙었으니까. 지칠 만큼 지쳤으니까.


은 개가 개처럼 개밥을 먹는다. 개같이 배가 고팠다. 같이 먹고 있는데, 슈퍼 할머니가 오래된 양산을 꺼낸다. 먼지가,

후둑, 떨어진다.

할머니는 양산을 편다. 오랜 잠을 자고 일어나듯, 낡은 양산이 기지개를 핀다.

푸드덕, 흙먼지가 날린다.


늘어진 피부와 앙상한 뼈, 바람이 불면 날아갈지도 모르는 할머니가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양산을 피고, 총총총 걷는다.

바람이 불었다. 정말로, 사실은 약간 과장을 보태, 날아갈 것 같았다.


좁은 골목길을 부앙, 소음기를 뗀 외제차가 하필, 달려왔다. 하마터면, 할머니가 부딪칠 뻔했다.

바람이 개같이 불어서, 외제차가 골목을 개처럼 달려서.


늙은 개 달렸다. 할머니를 밀어내고, 대신 외제차에 치었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파란 지붕의 개집을 끌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외제차를 끌고 나온 금수저 엄친아는 놀랐다. 아버지의 흰색 벤츠에 붉은 피가 묻었기 때문이다. 아, 씨발. 재수 없게.


재수 없게, 늙은 개는 개죽음을 당했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깨어났다.

소리는 자신을 신이라고 소개했다. 늙은 개에게 24시간을 주었다. 착하다고. 하늘 가기 전에 인간으로 한 번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개처럼 살다, 아니 개로 죽었으니, 인간으로 한 번 살아보라고.


늙은 개가 꿈인 듯, 생시인 듯, 분간을 못하며, 알람시계를 끈 시각은 아침 9시였다.

눈을 비비며, 두 발로 일어났다. 깜짝 놀랐다. 두 발로 서다니. 눈을 비비다니.


와, 대박! 신이여!


새어 나온 소리에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멍멍이 아니라, 와, 대박! 뉘앙스를 완전히 살린 네이티브 인간 발음.


얼른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보았다. 거기에는 인간이 있었다. 일흔은 넘어 보이는 늙은 인간이.

목줄이 없다. 개집도 없다. 인간 집에서 인간답게 자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두 발로 걸을 수 있다. 어디든 갈 수 있다.


하하하.


기뻐서 웃음이 났다. 늙었으면 어떤가, 두 발로 걷고, 목줄이 없는데, 기쁠 따름이다. 웃다가, 신이 한 말이 떠올랐다. 주어진 시간은 24시간.

시계를 보니, 자는데 9시간을 보냈다. 남은 시간은 15시간. 자정이 되면, 하늘에 갈 것이다.


해야 할지 고민하다 시간이 간다, 티브이를 켰더니, 눈을 떼지 못해서, 드라마 한 편을 다 봐버렸다. 금 같은 시간이 흘러 버린다. 어쩌지.

그러다 바다를 떠올렸다. 바다를 떠올렸고, 늙은 인간은 인간처럼 깨끗하게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희끗한 머리를 빗질하고, 옷을 입었다. 옷장에 톰브라운이라는 브랜드 네임이 적혀 있는 검정 슈트가 있다. 멋있는데. 걸쳤더니, 핏이 몸에 착 붙는다.


슈트 안주머니에는 약간의 돈이 들어 있었다.

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았고, 태양은 뜨거웠다. 땀이 줄줄 흘렀다. 입을 벌려 혓바닥을 내밀고 싶었다. 헥헥대고 싶었다. 늙은 인간은 늙은 인간이라, 그럴 수 없었다.


 늙은 인간은 걸었다. 바다가 나올 때까지, 달리려고 했지만, 달릴 수가 없었다. 숨이 가빴다. 개집을 끌고 갔던 그곳은 너무 멀었다.


어떡하지.


소리를 내어 말했는데, 길 가는 여대생이 멈춘다. 눈이 마주친다.


도와드릴까요?


자기도 모르게 사타구니에 손이 갈 뻔했지만, 참는다. 이제는 더 이상 개가 아니므로.


되게 많은 물이 있어요. 물 위에는 다리가 있고, 다리 위에는 차가 있어요. 바다 주변으로 아파트가 있어요.

쫄쫄이 바지 입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곳이 어딜까요?


어디 아프세요?


아니요.


농담하시는 거예요?


아니요.


퀴즈 내시는 거예요?


아니요. 아니, 퀴즈라면 어디라고 말할 건가요?


여대생의 친절한 미소는 사라졌다.


저거 타시면, 여의도까지 20분이면 가요.


여대생은 말을 마치고, 성큼성큼 제 갈길을 간다. 늙은 노인은 사타구니를 다시 한번 만질 '뻔' 한다. 만졌거나.

여대생의 말대로 버스를 타고, 늙은 노인은 되게 많은 물이 있는 곳으로 갔다. 바다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늙은 노인은 이곳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리라 결심한다.

멍하니 한강변에 앉아 한참을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본다. 옆 자리에 모여 있는 젊은이들이 하이네켄을 마신다. 태양은 뜨겁고, 늙은 인간은 목이 마르다.

젊은이들처럼 편의점에 가서 하이네켄을 고른다. 맥주를 마신다. 시원하다. 바닷물보다 시원하다, 고 생각한다.


인간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목줄이 없어서, 바다에 올 수 있어서, 하이네켄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늙은 인간은 그렇게, 강물을 바라보다 24시간이 지나고도 5시간이 지나서, 새벽 다섯 시에 얼어 죽는다.


왜냐하면, 겨울이기 때문이다. 추운데 강에서 잠을 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여름이라고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름을 추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늙은 개라고 생각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한강을 바다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늙은 인간은 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중화장실에서 씻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버려졌기 때문이다. 아들이 외제차 타려고, 아버지를 버렸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늙은 인간은 차라리,

개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늙은 개는 늙은 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늙은 인간인지, 늙은 개인지는 죽었고, 아무도 그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들은 그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들은 하얀 벤츠에 묻은 늙은 개의 피를 닦고, 아버지의 재산을 어떻게 할지 변호사와 상의하고, 여자 친구들과 새로 산 마흐바흐 S를 타고 달려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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