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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남 Nov 17. 2024

친구

친구가 있어 덜 불안하다

대학교 친구 둘을 만났다. 3년 만에 만난 20년 지기다.


대학교 다닐 때는 늘 붙어서 다녔다. 게임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시험 공부할 때도, 미팅을 할 때도, 함께였다.


둘 다 술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애슐리로 갔다. 애슐리에서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늘어놨다. 학생일 때는 그렇게 붙어있었는데,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는 각자의 인생길을 사느라 바빠서, 연락이 뜸해졌다.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는 친절하고, 밝았다. 긍정적이었고, 에너지가 넘쳤다. 젊어 보였다. 상대적으로 나만 늙고, 힘 빠지고, 병들고, 우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석증이 발병해서, 세상이 빙빙 도는 것만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살은 5킬로를 쪘고, 새로 옮긴 회사는 언제 망할지 모르는 재정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생이 점점 수렁에 빠진다는 생각이 들던 차였다.


나와 동갑인데, 세월은 나한테만 직격타를 날리고, 두 친구는 슬쩍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캘리포니아 토네이도가 내 삶을 밟고 지나는 동안, 친구들의 삶은 비도 오지 않고, 평화로운 써니 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슐리에서 남자 셋이 술 한잔 안 먹고 수다를 떨었다. 이야기보따리가 한가득이었다. 3년은 많은 일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A라는 친구는 베트남에서 사회 초년생부터 일했다. 그러다 이번에 한국으로 완전히 귀국하게 되었다. A는 베트남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항상 돌아오고 싶다고, 이국은 외롭다고 말하던 친구였다. 첫 번째 어메이징 뉴스는 A에게서 나왔다.


"나 애 생겼어."

응? 이게 뭔 앞뒤 잘라놓은 프랭크 소시지 같은 소리일까.


얼마 전에 소개팅을 봤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한국 여성이 베트남까지 찾아온 적도 있다고. 그렇다면,


속도위반했구나,


아니었다. 베이비의 출처는 소개팅녀가 아니라, 전 부인이었다. 전 부인한테서 한국에 오기 전 연락이 왔고, 한 달 전 만났다고. 얼굴만 보려고 했는데, 스파크가 튀었고, 손만 잡았지만, 애가 생겨버렸다고.


애...이, 뭔, 박혁거세 같은 이야기야.


가게 앞에서 만났을 때부터, 조커처럼, 입꼬리가 귀밑까지 올라왔는데, 이거 때문이었구나 싶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얘기에 축하한단 말도 제대로 못 했다. 그보다는 어째서, 왜, 어떻게 하는 질문이 먼저 쏟아졌다.


A는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아내와 많이 싸웠고, 서로에게 상흔을 잔뜩 남겼다. 결국 이혼했다. 베트남 여자는 다시 만나지 않을 거라며, 헤어졌다. 그래서 전혀 예상 밖의 전개에 놀라웠다. 너무 행복해 보였다. 전 부인이 이상형이라고 늘 말하고 다녔으니까. 또 하나의 분신인 애까지 생겼다니, 이보다 축하받을 일이 또 어딨을까. 원샷 투 피플이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어서 다른 친구 B도 말했다. 본인에게도 기쁜 소식이 있다면서.


이 친구는 공무원 시험을 여러 번 실패하고, 원치 않는 회사에 들어갔다. 워낙 성실했기에, 다른 회사로 이직하지도 않고, 10년이 넘도록 같은 회사를 다녔다. 회사가 연봉도 오르지 않고,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이직도 힘들다고 했었다. 이제 초등학교 올라간 애도 있고, 회사가 최근 재정난도 와서 어려운 상황이라고.  3년 전에 만났을 때, 난 열심히 위로를 해주었다. 어차피 될 일은 될 거고, 안 될 일은 안 될 거다. 너는 충분히 꾸준하고, 성실한 사람이니까, 뭐라도 될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는 만나기 전에 백수가 되었다고 했다. 아, 결국 백수가 되었구나, 위로해 줘야겠다 생각하고 나왔다. 그런데, B가 꺼낸 또 하나의 어메이징 뉴스는 백수가 되었는데, 곧 발령될 거라는 얘기였다. 발령? 응, 발령. 나 공무원 됐거든. 9급 공무원이지만.

B는 그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남는 시간을 전부 공무원에 갈아 넣었다. 20년 전 B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몇 차례 했었다. 결국 시험에 계속 떨어져서 지금의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보다 더 극악의 상황인데, 친구는 그토록 바라던 공무원이 되었다. 회사 다니면서 평소에 하루 6시간씩 공부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잘 때까지 쭉 공부만 했다. 허튼 생각, 회사가 없어질 거란 불안, 공포, 어떻게 살아야지, 결심하는 시간, 그런 기름기 다 싹 빼고, 온전히 공부만 했다.


두 친구의 표정에는 여유와 웃음이 가득했다. 왠지 이쯤 되면, 나도 숨겨놨던 비장의 좋은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았다.


할 말이 없었다. 아이가 생기지도 않았고, 직장에서도 순탄치 않았다. 그저 얼마 전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노라고, 100킬로에 가까운 몸으로 해냈다고 쭈뼛거리며 겨우 말했다. 친구들은 대단하다고 했지만, 그들에게 일어난 세렌디피티 같은 일에 비하면, 거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은 쓰레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내 나만 이렇게 우울하고 별 볼 일 없는 걸까. 대학교 다닐 때는 그들보다 내가 더 잘 나갔다. 항상 무리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밥을 먹어야 할지 똥을 싸야 할지 모를 때, 똥 싸자, 밥 먹자 하던 게 나였다. 내가 더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흔이 된 지금 그들에 비해 난 형편없다.


얘기를 하다 보니, 돈 얘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다들 집이 있었고, 벤츠를 몰고 있었다. 나는 애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따릉이를 6개월 결제해서 타고 다녔다. 자전거 대여소에 따릉이가 남아있으면, 앗싸 하고 환호를 했다.


뭐, 하나 신나는 이야기가 없었다. 괜히 나왔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때문에 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인생의 경쟁자처럼 생각되었다. 도저히 삐딱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나보다 잘나지 않은 친구를 만나야 하는데, 더 멋지고, 젊고, 돈 많은 친구를 만나, 자존감이 나락 가는구나 싶었다.


세상이 비뚤게만 보였다. 오목 렌즈에 비친 것처럼, 내 모습도 울퉁불퉁 비뚤게 보였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친구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부러워. 정말 부럽다. 그리고 내 인생이 부끄럽다. 나는 왜 너희처럼 꾸준하게 뭘 하지 않았을까. 너네처럼 성실하게 살지 않았을까. 광대처럼 살 게 아니었는데, 뭐 하나 제대로 못하고 내 인생은 완전히 바보 같구나. 허탕만 잔뜩 쳤어. 옛날에 우리 셋은 함께였는데, 지금은 나만 뒤처진 것만 같다. 부럽고, 부끄러워.


두 친구는 미소를 감추며, 허겁지겁 자신들의 불행을 주워 올렸다. A는  최근 한 달 전 사이에 일어난 좋은 일이고, 그전까지는 악몽이었다고. 한국 와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고, 퀀트 투자라는 방식으로 주식을 했는데, 처음에는 수익이 났지만, 지금은 -40%라며, 수천만 원을 잃었다고. 사랑하는 사람도 없어서 외롭고 쓸쓸해서 죽고 싶을 때도 많았다고. 내 인생도 그렇게 순탄치는 않다고, 말했다.


B도 얼마 전에 녹내장이 재발해서, 수술해야 할 수도 있었다며,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게다가, 자신의 동생이 이혼했다는 얘기도 했다. 가상 자산으로 1억이 넘는 빚을 져서 온 집안이 난리 났었다고. 결국 부모님이 모아둔 노후자금으로 해결했다고. 게다가 자신 역시 가상 자산에 투자해서 수천만 원을 잃었다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었고, 운이 좋았었다고.


그들의 불행을  듣는데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힘들다고 하니까, 애써 불행을 꺼내 내 불행 주머니 옆에 나란히 진열해 주는 것 같아서. 혹은 내 불행이 더 크다, 아냐, 내가 더 커. 그런 식으로 경쟁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주로 듣기만 하고, 잔뜩 먹었다. 애슐리였으니까, 먹을 수 있는 걸 먹고도, 먹고 싶은 만큼 더 먹고, 도저히 못 먹겠다 싶은 순간, 새끼손가락만 한 감자튀김을 하나 더 밀어 넣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3년 만에 만났는데, 오랜만에 만난 소중한 친구들인데, 왜 기분을 못 이기고 , 삐쩍 꼬른 콩나물같이 굴었을까. 좀 더 나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꼭 불행한 티를 내며, 친구들의 행복을 시기 질투했어야 하는가. 좁구나, 좁아. 티스푼만큼이나 작은 마음통이구나 싶었다.

비단 그들이 좋은 일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밝은 모습을 보였던 게 아닌데, 늘 그 친구들은 밝았다. 만남 자체가 즐거우니까 웃었던 것이고, 나를 좋아해 주니까, 힘껏 웃어주었던 것인데.

성향 잘 맞는 친구라는 거, 세상에는 그런 친구들을 만나기 힘드니, 당연히 즐거워서 웃고 있었던 건데, 나 혼자 자격지심에 빠져서 모임에, 친구들에, 내 인생에, 나에게 집중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또 한편으로는 친구들도 어려운 가운데, 다 해냈으니, 나도 뭐라도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오랜만에 샘솟는 긍정적인 생각을 마주 대하니, 친구들의 선한 영향인 것만 같아서 고마웠다. 친구를 경쟁자라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함께 걷는 동반자로, 고된 인생을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인생이 얼마나 힘들든, 벗(but)이라고 생각을 바꾸게 해주는 소중한 벗인데.


그렇게 생각하자, 친구들의 행동이 다르게 보였다. 불행조차 경쟁하려 드는구나 비뚤게 생각했는데, 위로해 주려고 자신들의 불행을 끄집어냈다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같은 일인데, 관점을 바꾸니,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지니, 힘이 솟았다.


오늘은 또 다른 친구를 만난다. 친구와 약속이 늦었다. 변명을 한다.


버스가 안 와. 평소에는 벌써 왔어야 하는데, 무슨 일이 있나, 정말 미....


올 거야.


다른 말 없이, 올 거야라고 당연한 사실을 말해주는 친구.

그래, 인생이 내려갈 때가 있으면, 올라갈 때도 있고,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고.


나는 미처 떠올리지 못긍정 친구에게 듣는다. 친구들을 생각하면, 불안이 깊은 잠에 빠지는 것 같다. 종종 자주 봐야겠다.


나를 알아주는, 염려해 주는, 솔직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들. 인생길을 많이 걸어온 만큼 그 수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니 더 소중히, 더 소중히, 그들 인생이 힘들 때 but이 되어주는 친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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