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불안의 숲에서 평온으로 가는 길을 찾다
"평온이란 무엇일까?"
한때 공황 장애를 앓았다. 어둠 속 수렁에서 발버둥 치는 것 같은 몇 년이었다. 불안의 숲에서 답을 구했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절박한 외침이었다. 사막 한가운데 길을 잃은 나그네 같은 목마름이었다.
많은 철학자와 종교인들의 말을 찾고 구했다. 평온이 뭘까? 뭐지? 먹는 건가? 츄릅, 맛있는 거냐?
달라이 라마는 평온을 '마음의 상태'라고 정의하며, 외부 환경이 아닌 내면의 변화를 강조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우리의 판단이 우리를 괴롭힌다"며,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평온이란 외부 조건이 아니라,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내면의 결정이라고.
불안에 시달릴 때, 막연한 걱정과 후회에 휩싸일 때가 있다. 잠도 잘 안 오고, 밥도 안 먹히고, 땅만 보고 걸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일부러 책을 찾아 읽는다. 최근에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다시 읽었다. 거기에 보면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평온을 얻는 첫걸음"이라 얘기가 나온다. 그 말에 상당히 동의한다. 불안할 때 주로 명상이나 달리기, 독서 같은 활동을 하는데, 그것들을 하고 있으면 덜 불안하다. 외부의 잡음을 줄이고, 시야를 좁힌다. 나와 현재만 남는다. 상황과 상관없이 평온에 닿는다. 오래가지는 않지만.
나 말고도 지구의 많은 사람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2~3%가 공황 장애를 겪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더 심하다. 빠른 사회 변화와 과도한 경쟁 속에서 공황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급증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공황장애 환자 수는 2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20~40대 젊은 층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나는 만 40세다.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체력은 예전 같지 않고, 흰머리도 늘고, 그마저도 뭉텅뭉텅 빠져서 언제 대머리가 될지 모른다. 예전 같은 탱탱한 피부와 활기는 점점 사라져 간다. 젊음의 열정과 패기가 사라져 가는 것을 몸소 느낀다. 아쉽지만, 참을만하다. 정말 큰 괴로움은 불안으로 여전히 떨고 있는 나.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과거의 실패에 사로잡히거나 막연한 미래를 불안해하는 나.
마흔이니까, 이제 좀 평온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불안의 숲에서 헤매는 나.
그런데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살아있다는 건 끊임없이 살아가는 거니까, 당연히 평온했다, 불안했다 하는 것 아닐까. 평온한 상태로 멈춰있다면, 그것은 죽었거나, 태어나지 않았거나. 아마 달라이라마나 세네카나 365일 매일매일 매 순간 평온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다만 평온한 날이 더 많았고,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테지.
평온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인 것이다. 오히려 "평온함"이 정확하지 않을까. 끊임없이 갈구하고 갈망하고 투쟁하는 상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고, 외부보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려고 부단히 애쓰며 살아가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당장 평온하지 않다고 괴로워할 일이 아니다. 평온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누구나 다 그런 거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는 거니까라는 작은 깨달음.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