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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조앤 Aug 04. 2021

아버님께 올리는 글

아버님 전 상서(前 上書)

아버님,

하늘이 참 예쁩니다, 오늘.

짙푸르지 아니하고 연합니다.

깊은 청靑이 아니라

솜털같이 부드러워 포근해 보입니다.

하여 제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당신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당신이 영혼이다.당신은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바다 건너 제가 사는 이곳에

아침해는 무심히 떴고

바람은 숨을 죽였으며

낮에 공기는 쉬이 뜨거워졌습니다.

오늘은 아버님께서 작은 몸으로 태어나셨던

그 여름날과 똑같은 8월입니다.

아버님,

저는 참 이상하게 사람의 손을 잘 기억한답니다.

얼굴과 함께 그 사람의 손도 기억이 나는 것이지요..

그러니 아버님의 손도 기억을 하구 말고요.

손이 참 곱구나 했었지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마디가 굵지 않으며

손끝이 도톰하나 뭉특하지 않고

손등과 손바닥이 딱딱하게 마르지도 않으셨지요.

동그랗고

둥근

가지런한 손

그 손이

아버님의 속을 닮았겠구나

아버님의 마음을 닮았겠구나

저는 그리 생각했었답니다.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함께 배드민턴을 쳤던

늦여름의 초저녁과

안동 고택 대청마루에서

왕뚜껑 라면과 참깨 라면을 사 오셔서

맛있게 먹었던 6월의 초 여름.

아버님,

저에겐 봄도 가을도 겨울도 없습니다.

아버님과의 추억은 모두 여름에만 새겨져 있습니다.

뜨겁고 짧은 한 여름밤만 생각나게 생겼습니다.

사람이 영혼을 가진 게 아니라

몸을 가졌다는 말

이제 이해하고 싶습니다.

흙으로 빚어졌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말도.

생의 시작이나 끝이나

나 혼자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그러니

아버님과 저의 인연은 얼마나 깊은 것인지요.

이리 살뜰한 것을 귀한 것을

맘껏 보듬지 못했음은 또 왜인지요.

흙은 먼 우주 별에서 비롯되었다 하니

흙으로 돌아감은 별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짝반짝 부지런한 빛을

매일 저녁

저는 볼 수 있을 테니

눈물은 그만 흘려야겠습니다.

아버님 좋아하신 트로트를 저는 잘 모릅니다.

사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일 좋아하신 것, 들어보겠습니다.

그 속의 비밀을 제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 속에 아버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 아버님의 안식처는 청풍이다.

오늘 삼우제(三虞祭)를 지낸다 했다.

**청풍(淸風)

충청북도 제천지역의 옛 지명.

지명의 유래는 이곳의 산천경개가 빼어나 남도의 으뜸으로 쳐, 이에 따라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 한 데에서 따온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진산(鎭山)인 인지산(因地山) 부근의 남한강유역에 한벽루(寒碧樓)가 있어 많은 시인 묵객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청풍(淸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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