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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소희 Jan 07. 2018

어떤 리더십을 지향하는가

2년 전 여름, 롤링다이스가 기획한 ‘여성의 일, 새로고침’ 행사에서 한 분이 자신의 고민을 나눠주셨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에 보통 남자 학생들은 축구를 하고 여학생들은 발야구를 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남학생들이 잘못을 했는데, 발야구하는 벌을 받는 거예요. 축구를 못하게 한 거죠. 그리고 갑자기 여자애들이 운동장을 다 써서 축구를 하게 됐죠. 항상 남자애들이 운동장을 다 쓰고 여자애들이 구석에서 발야구를 했었는데, 남자들이 벌을 받느라 처음 거꾸로가 된 거예요. 그렇게 운동장을 다 쓰게 됐는데도 여학생들은 결국 축구를 못했어요. 하는 방법을 몰라서.


사업을 단념하면서 든 생각이 그거였어요. 운동장을 다 쓸 수 있는 기회가 나한테 왔는데 내가 축구 하는 방법을 모르는구나. 다시 운동장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축구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고민의 작은 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이야기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다르게 전개되었지만, 나는 저 대목을 꽤 오래 잊지 않고 있었다. 그분의 대답은 ‘못할 것 같아요’였다. 나는 나대로 고단한 일상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마다 저 질문을 다시 떠올렸으나 내 대답도 ‘아니오’ 이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대표와 같은, 말하자면 최선봉에 선 장군도 아닌데 말이다. ‘아니오’를 ‘그럼요’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부표로 여길 수 있는 자질들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내 역량을 온전히 다 쓸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 또는 그럴 수 있기 위해서 어떤 치열함을 더하는 방식으로 계속 일해야 할까.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


머리를 뒤적이며 떠올린 건 리더십이라는 식상한 단어였는데, 경험이 적기도 했고 리더십으로 뭉뚱그려 말하는 게 편하기도 했기 때문에 나는 제대로 리더십이라는 말의 의미를 따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일의 총량을 늘려나갈 때 — 각기 다른 일의 가지 수일 수도 있고 난이도일 수도 있고 문자 그대로 양이 많아질 때조차 —  나와 같이 일하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결합할지는 리더십에 달려있다. 결합의 형상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가 리더십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경험이 쌓이면 항목이 추가되고 구현하는 방법이 달라지겠지만, 이 시점에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질에 대해 분명히 하고 싶었다.




메타적 사고와 학습의 속도 유지


일을 하다 보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충분히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가 많다. 내게는 작년 한 해가 그랬다. 대책을 찾기 위해 부산했으나, 기껏 취한 방법은 같은 일을 하던 방식으로 더 열심히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통시적으로 봤을 때,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엇을 할지, 그 선택지를 제대로 고안하지 못했다.


궁리하는 과정에서 익숙한 시선과 방법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도 이미 익숙해진 프레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안과 밖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는데, 안이라고 하면 조직이 할 수 있는 것들 중에 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밖이라고 하면 다음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 외부에서 어떤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서있는 위치가 어딘지 알고,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최선인지 판단하고, 실제 그 역할을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안을 만들어내는 일. 메타적으로 보고 생각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현실은 간명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한 가지 기획으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목표를 다르게 잡지 않으면 여러 안을 병행해 써야 하기 마련이고, 여러 안을 병행하다 보면 나나 경쟁사나 산발적인 시도를 할 확률이 높다. 그런데 이러한 산발적인 시도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지금 부족한 역할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없다면 언제나 빨리 봐야 트렌드에 동승하는 것이고 비슷한 시도를 하는 다른 곳과 같은 메시지를 발신할 뿐이다.


무수한 시도를 관찰하고 해석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개인이 높은 학습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높은 학습 속도를 유지하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무기력이다. 리더십의 가장 기본 단위는 본인을 무기력한 위치에 두지 않는 것이다. 비관적인 결말을 인지하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만, 그 안에서 내가 다르게 만들 수 있는 부분을 찾고 다르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배운 유능함의 정의이고 리더십의 전제 조건이다.


마주한 현실에서 일하는 누구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더, 메타적으로 볼 수 있을 때만 나와 내 동료가 한 일들에 쉽게 실패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무엇을 남길지도 결정하며 궁극적으로 그 함의를 과대평가하지도 반대로 축소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정 중심

앞서 말한 메타적 사고가 무엇(What)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질이었다면 과정 중심은 일하는 방법(How)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질이다. 어떤 식으로 업무 환경을 조성할지 고민했을 때, 내가 주요하게 생각한 건 다음 2가지였다.


명확한 do와 don’t. 사업의 우선순위를 매길 때도, 조직은 운영할 때도 무엇은 왜 되고 무엇은 왜 되지 않는지가 구성원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자원이 없는 곳은 자원이 없기 때문에 손에 닥치는 대로 일하기 쉽고, 자원이 있는 곳은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겠어?’라는 마음을 품기 쉽다. 마음은 귀하지만 그 일에 적합한 대상이 본인인가를 곰곰이 따져야 한다. 조직 사명에 맞는 업무 범위를 정하지 못하면, 불어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그럼 일하는 개인은 회사의 역량이 분산된다고 느끼기 쉽고, 회사에 들어올 때 기대했던 업무 능력의 변화나 개인 생활에 대한 모든 예측가능성을 훼손하게 된다.


조직 문화 차원에서도 어떤 행동은 가능하고 어떤 행동은 지지받을 수 없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에둘러 말했지만 성과 평가 기준이 구체적이어야 하고 그 기준이 행동상의 do와 don’t를 오해의 여지없게 전달해야 한다.


변화 가능성에 대한 안정감. 개인이 아닌 조직의 소속으로 일할 때 느끼는 재미는 자의든, 타의든 지속적으로 숙련도가 쌓이는 ‘나’를 활용할 기회가 만들어지면서 얻어진다. 도전적인 일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재미 덕분에, 일을 하는 개인이 미래의 자신을 — 주어진 역할에서든, 일 하는 과정에든, 본인이 만들어낼 결과에 대해서든 — 긍정적으로 기대할 수 있고 그런 개인으로 구성된 팀이어야 안정감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 안정감을 만들어내는 장치란 도전적인 기획, 명료한 디렉션, 구체적인 피드백, 체계적인 업무 프로세스라는 생각을 하고, 그랬을 때 위 마음이 소실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직 생각이 여물지 못해 글에 적지 못한 내용이 많다. 그리고 이미 이야기한 자질들도 내가 언제 갖췄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노력해도 평생 어렵겠지만 같이 계시는 분들 덕에 매해 전보다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자신한다.

때때로 어떤 사람은 당사자도 모르는 무언가를 발견해 빛을 볼 수 있도록 꺼내준다. 어떻게 감지하고 발견하는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부표로 삼는 자질들은 내게 어떤 사람인 한 분과의 추억을 돌아보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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