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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잌쿤 May 10. 2018

라이크 크레이지(2011)

깨진 유리를 다시 붙일 수는 있지만, 결코 되돌릴 수는 없다.

※ 브런치 무비패스 참여 작품입니다(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언어에 있는 말이지만 가장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가 바로 '사랑' 아닐까? 사랑을 뜻하는 단어가 언어의 종류만큼 많다고 하더라도, 사랑의 정의는 사람의 수만큼 많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 무엇인지 아느냐 등의 표현은 낭만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만큼 우매한 질문도 없다. 사랑은 애초에 정의될 수 없는 단어이며, 정의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모두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언가 정의할 수는 없더라도 모든 이가 공통적으로 사랑에 대해 겪는 한 가지 패턴이 있다. 열정적으로 불타오르는 초반의 설렘과 점차 하향세를 그리는 감정의 쇠퇴. 누구나 첫사랑에는 영원 불변한 마음을 믿는다. 상대방도 그럴 것이라고 의심치 않늗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토록 사랑했던 감정마저 결코 영원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될 때 좌절감을 느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를 몇 번이고 되뇌이고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라이크 크레이지(Like Crazy), 제이콥이 애나를 위해 만든 의자에 새겨져 있던 이 문구는 말 그대로 미친듯이 사랑했던 두 사람의 초창기 설레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부터 'Crazy'한 관계로 이어지기까지, 사랑에 빠지는 속도 만큼이나 영화의 초반부는 매우 속도감있게 초창기 설렘의 감정을 조명하고 있다. 제이콥과 애나는 정말도 미친듯이 사랑을 했다. 영국인이었던 애나가 법을 어기고 불법체류자가 되는 상황까지도 감수할 정도로. 그리고 이러한 미친 짓이 결국 두 사람의 시공간적 거리를 벌어지게 했고, 둘 사이에는 아주 서서히 작은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도 옳지 않았으며 동시에 누구도 잘못되지 않았다. 영원할 것만 같이 단단히 굳어있던 마음에 균열이 생겼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은 각자의 균열을 채우기 위한 3자를 찾았고,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에 생긴 균열과 그 사이를 메우고 있는 타자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어쩌면 그들은 두 번 다시는 서로의 마음이 처음처럼 단단히 굳어질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겠으나, 결코 그 비난의 화살이 일방적으로 한 쪽에게 향할 수는 없다. 그걸 알기 때문에 두 사람은 점점 격렬하게 다투면서도 반대로 논리는 점점 상실하고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알기에 상황은 감정 싸움으로 치달았고, 오히려 그랬기에 둘은 서로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대타'로 기용된 사이먼과 사만다는 제이콥과 애나를 'Crazy'하게 만들지 못했고, 한계를 느낀 그들은 다시 서로를 찾았다. 제이콥과 사이먼, 애나와 사만다는 전혀 다른 성향의 인물들이었다. 위스키로 표현되는, 애나의 성향에 맞춰주던 제이콥과 자신의 성향을 주입하려던 사이먼의 대비는 애나가 결국 제이콥에게 돌아가도록 만들었고, 수동적이고 헌신적인 사만다는 오히려 제이콥이 다시 애나와 느꼈던 설렘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결국 다시 만난 두 사람에게 'Like Crazy'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결코 돌아오지 못할 과거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불법체류를 강행하면서까지 제이콥의 곁에 남고 싶었던 마음도, 미국으로 돌아가는 제이콥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공항에서의 심정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았다. 미묘하게 복잡한 마지막 샤워 씬에서, 두 사람의 닮은 듯 비교되는 표정은 두 사람의 마음에 뿌리깊게 새겨진 균열이 표출된 결과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애나가 순순히 영국으로 돌아가 수 개월 만에 정식 비자를 발급받고 돌아왔더라면? 사이먼과 사만다가 없이 두 사람이 온전히 홀로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살았더라면? 결혼 후 제이콥이 미국에서의 사업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건너와 애나와 함께했다면? 그랬다면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세상 어떠한 사랑도 처음의 설렘을 끝까지 가져갈 수는 없다. 균열은 필연적이며 상처도 피할 수 없다. 깨진 유리를 다시 붙일 수는 있지만, 결코 깨지기 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엉성하게 붙여놓은 유리도 아직 사랑이라면, 감정의 변화에 따라 사랑의 정의도 다시 내려져야 할 지 모른다.


Like Crazy(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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