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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차언니 Aug 25. 2020

금수저를 쥐어줄 순 없을 테지만

낮에도 아빠가 놀아주는 '반백수저'의 위엄

- 반백수 1호_육아휴직 아빠
- 반백수 2호_전업주부 엄마
- 반백수 3호_만 1세 아기


2호가 속해 있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이 후끈 달아올랐다. 한 구성원이 충격적인 목격담을 올려서였다. 볼일이 있어 잠시 유치원 건물 앞에 서 있었는데, 6~7세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셋이 실랑이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A: 너네 집은 몇 평이야?

B: 음.. 잘 모르겠는데.

C: 우리 집은 아마 20 몇 평일걸?

A: 야, 너 바보 아니냐. 20 몇 평에서 어떻게 살아. 잘못 안거 아니야?

B: 20평에는 사람이 못살아?

A: 우리 집이 3명이라 30 몇 평에 사는데? 10 몇 평에는 1명이 살고 20 몇 평에는 2명이 사는 거야. 근데 너네 가족은 4명이잖아.

B: 맞아, C는 동생도 있으니까 4명이지.

A: 그럼 4명이니까 40 몇 평에 살아야 되는 거야.

C: 아, 그럼 우리 집 40 몇 평인가 봐.


1호에게 이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하면서, 2호는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저 이야기 속 아이들의 말에 따르면 10평대에는 1명, 20평대에는 2명, 30평대에는 3명이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런 식이라면 이미 우리 가족은 정원이 초과된 거주지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거주 형태나 위치에 따라 친구를 '빌거지(빌라 거지)', '휴거지(휴먼시아 거지)', '엘사(LH 사는 사람)', '전거지(전세 거지)', '월거지(월세 거지)' 등으로 부른다는 사실을 이미 들은 적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 내용이 피부에 썩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가 되고 나니 이 사소한 에피소드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한 귀로 흘러 들어오기는 했는데, 길을 잃은 것인지 다른 귀로 나갈 줄을 몰랐다. 미취학 아동조차 자신의 부에 대해 고민하는 시대라니.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2015년 이후, 우리나라에는 '수저 계급론'이라는 슬픈 이론이 등장했다. 부모가 가진 재력에 따라 자식의 미래가 결정지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수저의 단계가 금-은-동-흙으로 간결히 나뉘나 싶더니, 이마저도 성에 안찼는지 다이아몬드나 납, 수은 등의 단어까지 앞세웠다. '벚꽃엔딩'이라는 노래로 일명 '벚꽃 연금'을 타고 있다는 장범준 님의 자식들은 '벚꽃 수저'를 쥔 채 태어났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때때로 이런 이야기는 어른들 사이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농담인 양 소모되곤 했지만, 이제 막 태어나고 자라나는 새싹들에게는 어쩌면 지독히 무서운 현실로 다가오게 될 미래였다. 그러니 자식에게 자신이 쥐고 있는 수저를 대물림해야 하는 부모는, 스쳐 지나는 풍설 하나에도 마음이 아려올 따름이다.


셋이면서도 30평 대 이상의 브랜드 아파트에 살지 못하는 반백수 패밀리가 갑작스레 금수저로 변모할 방도는 없다.(서울이라 불가능한 것이라고 애먼 핑계를 대 보았자, 아이들에겐 같은 조건이겠지. 흑흑.) 로또라도 한 번 시원하게 당첨되면 좋겠지만, 로또를 사 본 적이 없으니 그런 일이 벌어질 리도 없다. 결론적으로, 3호의 손에는 반짝반짝 금수저가 쥐어질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우리는 동네 애들이 부러워하는 반백수저(반백수+수저)잖아?


인정할 것을 재빠르게 인정하고 나니, 반백수 패밀리에게도 자랑할만한 것은 있었다. 규격화된 자본주의의 계급 안에 어쭙잖게 들어가 사다리 한 칸이라도 더 기어 올라 보려 애쓰는 것은 어차피 이번 육아휴직의 목적과 전혀 부합하지 않았고, 실질적인 벌이가 없으니 육아휴직 기간 중에는 노력해 볼 방편도 마뜩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필요한 건? 자기 합리화와 정신 승리가 아니겠는가!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위해 2호는 밝은 목소리로 반백수 패밀리만의 특장점을 설파했다.


요즘 우리 동네 놀이터의 핫 피플이 바로 우리야.


정확히 말하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은 1호였다. 무료함을 피해 놀이터로 나온 어르신들도,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들도, 나 홀로 놀아야 하는 아이들도 모두 1호에게 주목했다. 대낮에 놀이터에서 아이와 뛰어노는 아빠의 모습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르신들의 눈길은 '저 집 가장이 밥 벌이는 하는 건가?' 하는 우려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운이 남아도는 아이를 따라다니는 것이 힘에 부치는 엄마들은, 주중에도 3호와 놀아줄 수 있는 1호의 여유로운 시간과 체력을 부러워했다. 어쩐지 2호의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아이들도 1호와 3호의 곁에서 맴도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낯선 아저씨에게서도 남자로서의 동질감을 느끼는 것인지, 1호와 함께 놀고 싶어 했다.(막상 3호와 같이 놀고 싶어 한 것은 아니다.) 심지어 자주 마주치는 한 외국인 아이는 늘 아빠와 동행했는데, 벤치에 앉아 핸드폰만 바라보는 아빠 대신 1호 곁에서 철봉 실력과 축구 실력 등을 가열하게 뽐내며 인정받고 싶어 했다. 낮에 놀이터에 나와 적극적으로 아이와 함께 행동하는 반백수 아빠는 그렇게 동네의 셀럽이 되었다. 유명인 아빠를 둔 3호 역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1호와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3호


닭을 쫓던 개는 별 수 없이 지붕을 쳐다봐야 한다. 날아오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불굴의 노력으로 지붕 위까지 오르는 경우도 있겠으나,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목표를 바꿔보면 어떨까? 닭을 쫓던 이유가 배고픔 때문이었다면 지상 위에는 또 다른 먹거리들이 분명 있을 테고, 얄미운 녀석을 잡아 혼쭐 내주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거나 다른 이에게 대신 복수(?)해 줄 것을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 지나간 모든 일은 싹 잊고 완전히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수도 있다. 아마 정서적으로는 훨씬 윤택해지지 않을지.


반백수 패밀리는 금수저가 아니다. 하지만 이 사실로 인해 평생을 비관하며 살아갈 이유도, 금수저가 되기 위해 현재의 나날을 소모품처럼 마모시키며 살아갈 필요도 없다. 주어진 위치에서 오늘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서로를 사랑하는 일에 자신의 하루를 기꺼이 소비하는 것이 그들이 할 몫이다. 뭐 이런 발언을 하면 꼭 고나리로 돌려주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1호와 2호는 우당탕탕 꽁냥꽁냥 '반백수저'를 3호에게 쥐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YOLO!

인생에서의 오늘은 단 한 번뿐이기에, 온 가족이 똘똘 뭉쳐 함께 꿈꾸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값지며,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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