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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차언니 Aug 18. 2020

처음, 그리고 마지막 플렉스

한 번뿐인 돌잔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 반백수 1호_육아휴직 아빠
- 반백수 2호_전업주부 엄마
- 반백수 3호_만 1세 아기


반백수 패밀리가 결성되기 직전, 통과의례에 견줄만한 사전 미션이 하나 주어졌다. 바로 3호의 돌잔치였다. 3호의 첫 생일이 1호의 육아휴직 기간 중에 있었던 것이다. 돌잔치를 하게 된다면 미리 준비할 요소들이 있었으므로 논의가 필요했다. '첫' 아기의 '첫' 생일이니 대충 때우고 넘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육아휴직을 앞두고 금전적인 부담감과 처음으로 당면한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가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돈을 아껴야 하지?'


고정비용을 줄이거나 비상금을 모아두는 등 육아휴직에 임하기 위해 여러 대비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지출을 두고 고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직 여유가 있으니 일단 쓰고 싶은 만큼 써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초반부터 허리띠를 강하게 졸라 매야만 육아휴직 후반부의 시간이 보다 여유로울 것이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른들이 행사의 당사자였다면 어떻게든 돈을 아껴보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심장 속에는 애달픔이 상시 장착되어 있는 것인지, 3호를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찌르르 아렸다.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니고 '돈' 때문에 무언가를 해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정작 3호는 돌잔치가 무엇인지조차 모를 텐데 말이다.


3호의 돌잔치는 '소규모'로 진행되기로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1호와 2호 자신들의 결혼식에 느끼고 있는 감정 때문이었다. 많은 분들 한 가정이 시작되는 첫걸음을 함께 축복해주셨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행사를 준비하고 치르는 내내 둘은 늘 지쳐있었다. '결혼식을 두 번 하기 힘들어서라도 이 사람이랑 절대로 이혼은 못할 것 같다.'는 농담을 한동안 입에 달고 살았을 정도였다. 그렇다. 반백수 패밀리의 부부에게는 큰 행사가 잘 어울리지 않았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비싸다는 이유로 꾸역꾸역 삼켜야 하는 기분이었달까. 물론 이 결정에는 대외적인 요소도 일 기여했다. 1호가 몸담은 회사의 경우, 돌잔치에 동료를 초대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반백수 2호는 직장생활에서 벗어난 지 오래된 상황이었으니, 공적인 손님을 초청할 필요가 없었다. 굳이 친구나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부담감을 주기 싫었다. 그저 가까운 가족들과 간소하고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돌잔치의 규모를 미리 정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의 볼륨을 정하는 것은 여전한 숙제였다. 남들 못지않게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모두 하기에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플렉스(flex)와 세이브(save) 사이에서의 번뇌였다. 고민 끝에, 남들이 하는 걸 다 하되, 지출되는 금액을 가능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근교에 갓 오픈한 소규모 돌잔치 전문 홀을 예약하는 것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음식과 돌상, 의상 대여가 모두 연계되어 있었는 업체였다. 오픈 초창기인지이라 홍보가 필요한 곳이었다. 맘 카페에서 여러 사람들을 모아 상부상조하는 공동구매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 방법을 통해 대관비와 각종 대여비, 식사비를 20% 가까이 절감했다. 남는 건 사진이라는 생각에 스냅사진도 꼭 찍고 싶었다. 업체에서 추천해주는 전문 스냅 작가 대신 경험과 경력이 필요한 신진 작가를 수소문해서 알아보았다. 이를 통해 50% 내외로 촬영 예산을 아낄 수 있었다. 행사 당일 상영될 동영상도 육퇴 후에 짬을 내어 직접 제작했다. 비용 절감은 물론이고, 지난 1년의 추억을 돌이켜 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답례품 역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직접 준비했다.




상큼 발랄 우리 아기의 돌잔치에 초대합니다!


드디어 3호의 돌잔치 초대장이 발송되었다. 양가의 부모님과 형제들, 형제의 배우자, 조카까지 총 8인에게 초대의 말을 건넸다. 1년 동안 3호가 자라나는 모든 순간에 함께 울고 웃어주었던 사람들. 그들과 함께 보내는 3호의 첫 생일은... 결혼식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그래도 의무감으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온 사람 한 명 없이, 모두가 기쁘고 행복한 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주 감격스러웠던 것 같다.


자신의 첫 번째 생일파티가 꽤 마음에 들어 보였던 3호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기 생일 축하합니다♪

   

돌잔치의 주인공도 날 만큼은 진심으로 신나 보였다. 자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을 아는 눈치였달까. 생일 노래를 부르며 함께 박수를 치고, 웃음 만발한 사진을 건지기 위해 카메라 렌즈 너머에서 자신을 향해 온갖 재롱을 부리는 어른들. 왁자지껄한 현장 속을 신나게 누비던 어린아이의 심정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비록 3호가 그 순간을 기억 속에 또렷이 담아놓을 수는 없을 테지만, 이토록 사랑받았던 순간들이 3호 인생의 밑거름이 되어 그녀의 삶이 흔들리거나 쓰러지게 될 때에 언제나 그녀를 따스히 안아줄 것이라 믿는다.




다행히 참석했던 이들 모두 만족 속에 돌잔치가 마무리되었다. 적어 내려가다 보니 돈을 아끼려 버둥대던 이야기만을 나열한 듯싶지만, 이것은 명백히 반백수 패밀리의 전무후무 플렉스 스토리다. 실제로 반백수 패밀리는 육아휴직이 끝날 때까지 더 이상 이 정도 규모의 소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백수 패밀리가 플렉스 했다며 뽐낼 수 있는 분야는 아마 따로 있는지도 모른다. 육아휴직이 진행되는 내내 1호와 2호, 3호를 연결해주는 사랑의 양만큼은 언제나 플렉스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고 그 마지막을 지나쳐 지금까지도 반백수 패밀리의 집에는 늘 그때의 벅찬 감격과 무한한 신뢰가 한없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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