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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차언니 Aug 17. 2020

우리 집엔 삼식이가 세 명

삼시 세 끼 집 밥 차리는 인생으로의 회귀

- 반백수 1호_육아휴직 아빠
- 반백수 2호_전업주부 엄마
- 반백수 3호_만 1세 아기


2호는 <삼시세끼>라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출연자들이 티키타카 환상의 조화를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이긴 하지만, 차승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양한 요리를 뚝딱 만들어 내는 모습이 특히 마음에 들어서다. 그의 요리에는 타 요리 프로그램을 아우르는 셰프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투박한 모양새가 정말 '먹고살기 위해' 하는 요리라고 느껴진달까.


TVN <삼시세끼 어촌편 5>에서 요리 중인 차승원님 (출처:공홈)


우리 2호도 저렇게 잘하는데.


내둥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어쩌다 한 번씩 곁눈질로 프로그램을 힐끗거리던 1호가 한 마디 던진다. 물론 립서비스에 불과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쩐지 2호의 어깨가 우쭐해진다. 실제로 2호는 요리실력에 남모를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예쁜 데코레이션을 할 자신과 의지는 없기에 그녀의 요리는 매번 '생존 요리'다. 차승원의 요리에 눈길이 갔던 이유는 다소간의 동질감 때문이었는지도.


대학시절 5년여의 자취를 거치며, 2호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나름의 소질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을 올려가며 레시피북을 탐독하지 않아도, 각종 조리도구를 활용해 정성스레 계량에 애쓰지 않아도 그럭저럭 먹을만한 결과물이 완성되곤 했다. 솜씨가 좋기로 유명한 어머니의 비법을 전수받았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배움은 어깨너머에서 한 것으로 족했다. 요리에 대한 열정이 딱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를 필요한 때에 재빠르게 할 수 있는 정도. 소질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적성에 맞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요리실력이었다.




결혼 후, 2호가 처음으로 삼시  끼 요리하기를 포기했던 것은 시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시어머니는 젊은 부부가 아침식사를 챙겨 먹는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셨다. 아침에 밥을 먹고 출근한다는 사실을 수차례 말씀드렸음에도, 대화는 어김없이 자식들이 당신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는 내용으로 흘러갔다. 밥을 반드시 해 먹으라는 강요는 아니었고, 떡이나 빵으로나마 허기를 채워야 하루가 든든하다는 간단한 조언이었다. 결코 나쁜 의도가 아니었지만, 아침마다 눈 못 뜨는 1호를 어르고 달래 식탁 에 앉혀놓고 가까스로 수저를 들게 했던 2호였기에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프리랜서 특성상 출근이 늦은 2호의 입장에서는 1호의 출근시간 전에 하는 상차림이 꽤 수고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1호와 2호는 합의 끝에 시어머니의 말씀대로 떡과 빵, 과일 등으로 아침식사를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때는 바야흐로 결혼 후 1년 반쯤이 되던 시기였다.


점심은 일을 하며 각자 해결하는 상황이었지만, 저녁만큼은 집에서 함께 먹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부부의 주방에서는 저녁 시간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 순조로운 흐름을 막아선 것은 임신이었다. 임신 초기부터 심한 입덧을 하는 2호 덕분에 부부의 주방은 시시때때로 운영을 멈췄다. 이 입덧은 놀랍게도 출산하기 전 날까지 꾸준히 이어졌고, 둘은 숱한 끼니를 양가에서 챙겨주시는 반찬에 의존했다.(출산 뒤에야 이 입덧이 담낭에 문제가 있어서였음을 알게 되었다.) 출산 후에는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3호의 이유식을 준비하는 것 외에는 대부분 주방을 비웠다. 대신 집 근처의 반찬가게를 애용다. 아예 요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주방의 가동률이 현저히 떨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1호의 육아휴직에 돌입하며, 새로운 결단이 필요했다. 집밥을 해 먹지 않을 구실이 사라졌고, 되려 꼭 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다.


첫째로, 지출적인 측면에서 확실한 변화를 보일 수 있는 부분은 식비뿐이었다. 고정비용을 줄이는 일은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 당분간 정지할 수 있는 지출은 정지하고, 일부 소비는 규모를 축소하기로 결정했지만 괄목할만한 성과가 나타날 리 만무했다. 하지만 배달앱을 이용하거나 반찬가게를 방문하는 대신 직접 고른 식재료로  요리를 하면, 불필요한 지출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둘째로, 반백수 패밀리 모두의 건강을 위해 '건강한 음식'이 필요했다. 육아휴직의 목적 중 하나는 2호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는데,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노력이 건강한 음식을 해 먹는 것이었다. 출근을 하는 내내 점심시간마다 외식을 해온 1호에게도, 한참 성장을 해야 하는 아기인 3호에게도 음식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양질의 식사가 필요했다.


위와 같은 이성적인 판단이 서자, 2호는 자기도 모르게 무시무시한 발언을 하고 말았다.


다 같이 지내는 동안 우리 식구들 입에는 건강한 것만 넣어줄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2호는 이 약속을 아주 훌륭하게 지켜냈다. 150일의 여정 동안 외식을 하거나 배달 음식을 주문해 먹은 일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것이다. 반백수 패밀리는 건강해졌고, 그들 가정의 엥겔지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어 가계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말이 쉽지. 황혼의 부부 문제에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삼시 세 끼 밥 차리기 미션이 2호의 눈앞에 펼쳐졌다. 자조 섞인 농담으로 누군가 '삼식이'라고 지칭하던 애물단지가 이 집엔 셋이나 있는 것이다. 세 명의 삼식이들을 위해 하루 세끼 요리를 하는 일은 하루의 절반을 주방에서 보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어른의 요리와 아이의 요리를 별도로 해야 하다 보니 품이 더 들었다. 매번 무슨 메뉴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것도 생각보다 큰 일이었다.


그럼에도 2호는 대부분의 끼니때마다 행복하게 주방에 들어다. 조금 지치기는 했지만, 요리 솜씨를 뽐내는 일이 보람찬 하루 일과로 자리 잡았다. 요청하는 재료를 원하는 시간에 맞추어 마트로부터 공수해 오는 1호의 든든한 후원과, 요리하는 2호의 곁을 수호천사처럼 맴도는 3호의 사랑스러운 애교 덕분이었다. 어쩌면 적성은 주변의 환경에 의해 많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닐까. 홀로 자취를 하던 20대 초반 그때에는 지지리도 하기 싫었던 요리가 그럭저럭 해볼만근사한 일이 될 수도 있다니!


삼식이들이 다 같이 (모양은 안 예뻐도 맛 좋은)파스타와 피자 먹던 날


삼식이들이 밥을 먹기 위해 입을 뻐끔뻐끔 벌릴 때마다, 입에 넣은 음식을 씹기 위해 볼을 오물오물거릴 때마다 느껴지는 희열. 하루가 따르게 뽀얘지는 1호의 얼굴과 아침 다르고 점심 다를 정도로 급격히 자라나는 3호의 성장을 관찰하는 것도 아주 신나는 일이었다. 2호는 비로소 '내 새끼들 입에 먹을 것 들어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멤버들 입에 맛난 음식 넣어주는 차승원의 마음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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