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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차언니 Aug 13. 2020

들어는 보았나, 아빠지옥

아기, 아빠를 인정하다

- 반백수 1호_육아휴직 아빠
- 반백수 2호_전업주부 엄마
- 반백수 3호_만 1세 아기


이른 아침 눈을 뜬 3호는 바로 옆에 누워있는 2호의 너머로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인다는 사실에 매우 들뜬 모양새였다. 몇 번이고 일어났다 눕기를 반복하며 배시시 웃었다. 그렇다. 그곳에는 최근 그녀의 최애 친구로 떠오른 한 남자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놀이터가 된 반백수 1호와 인간 놀이터에서 유흥을 만끽하는 반백수 3호


1호의 몸은 곧 놀이터가 되었다. 등은 시소가 되고, 다리는 미끄럼틀이 되었다. 때때로 머리를 디딤돌 삼아 손이 닿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작은 몸의 어디서부터 대체 그런 가공할만한 위력이 뿜어져 나오는 것인지, 아직 식사를 하지 않은 아침 시간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채근하는 모습에 못이기는 척 일어난 1호는 이제 기꺼이 그녀의 그네가 되어 주었다. 두 팔에 3호를 잡은 채 크게 주억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2호의 입가에도 이내 웃음이 찾아왔다.


3호는 1호의 육아휴직이 시작되자마자 엄마라는 단어를 거의 잊었다. 아빠를 백 번은 외쳐야 겨우 엄마를 한 번 부를까 말까 할 정도였다. 3호가 처음 엄마를 또박또박 입으로 부르던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마음속의 승기를 놓쳐본 일이 없었던 2호에게 이 상황은 아주 낯설었다. 일주일도 한 달도 아닌 고작 사흘 정도 만에 고배를 마셔야 했기 때문이다. 후순위가 된다는 건 조금 씁쓸한 일이었지만 사실상 2호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환경이 절로 이루어진 셈이었다. 쓴 것이 몸에 이롭다는 말은 어떤 방면에서든 진리인 모양이다.


아무튼 1호는 사랑받기 시작했다. 또한 인정받기 시작했다. 3호가 자신이 일어나기도 전에 출근해 잠들기 직전에야 겨우 지친 얼굴을 내비치던 방문객이 아니라, 일상의 동반자로 그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새롭게 투입된 동반자는 특히 체력적인 면에서 3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충분했다. 그간의 빈자리를 단번에 메우고 싶었던 것인지 몸을 사릴 줄도 몰랐다. 이른 아침에 기상하는 3호를 환한 미소로 반겨줄 준비가 되어 있었고, 언제라도 온몸을 놀잇감으로 기꺼이 내어 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의 마음이 활짝 열리는 것은 아주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이 모든 이에게 해피엔딩일 수는 없었다. 온종일 이름을 불리는 이의 정신력과 지구력은 고갈되기 마련이었으니. 허옇게 질린 1호는 어느덧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3호의 존재는 가히 '아빠지옥'이라 할 만했다. 이 생명체는 마냥 아빠만을 갈구했고, 아빠에게 집착했다. 1호는 '아빠'라고 불러대는 사랑스러운 목소리에 취해 그녀에게 간이며 쓸개를 다 빼주고도 영혼마저 덫에 걸리기 일쑤였다.


2호는 슬며시 눈웃음을 지어가며 1호를 지근지근 찾아대는 3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까지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 실소가 터지다가도, 체력 안배를 제대로 하고 있기나 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는 1호의 미래가 걱정되기도 했다. 한때 파리를 좋아할 뿐인데 '지옥'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파리지옥'을 가엽게 여겼던 그녀였으나, 파리지옥의 파리나 다름없는 1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이름이 전혀 가혹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


다행히 1호가 늘 자신의 곁에 함께 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이후 아빠지옥의 활동은 점차 줄어갔다. 그가 언젠가는 또다시 이른 아침에 나가 밤늦게 들어올 것이라는 불안감이 3호를 더욱 절실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는 부모 모두에게 사랑받을 마땅한 권리가 있으며, 부모는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전에도 물심양면을 다 해 아이를 사랑하고 아낀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아주 작고 연약한 아기인 3호에게는 금전적 수혜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욱 큰 사랑으로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호는 다짐했다. 짧다면 짧은 육아휴직 기간 동안 자신이 기꺼이 아빠지옥에서 허우적거리는 단 하나의 먹잇감이 되겠노라고. 그리하여 행복한 반백수 패밀리의 밑거름이 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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