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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차언니 Aug 12. 2020

반백수 패밀리의 유효기간

아빠 육아휴직 시기와 기간에 대한 고찰

- 반백수 1호_육아휴직 아빠
- 반백수 2호_전업주부 엄마
- 반백수 3호_만 1세 아기


자, 반백수 패밀리의 유효기간을 정해볼까?


시작하는 시기가 있으면 끝나는 때를 꼭 준비해야 한다며 회자정리를 운운하등, 쓰잘데기 없는 군소리를 시발점으로 반백수 부부의 난상토론이 펼쳐졌다. 주제는 1호의 육아휴직 시작 시기와 기간. 가족이긴 하지만 타인의 커리어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 2호는 매우 조심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러니 이를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1호의 몫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다만 이 부부에게는 백년가약을 이룬 날로부터 비롯된 숭고한 토론과 토의의 문화가 있었으니, 이 자리는 형식적으로나마 의의가 있었다. 나름의 동의-재청-표결에 참여할 잉여 인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주로 이것은 주관자의 입장이고, 참여자는 보통 상대의 말에 사소한 꼬투리를 잡기 위해 자리에 임한다.)




첫 번째 안건은 육아휴직의 시기였다. 처음 육아휴직에 대해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당시에는 1호의 회사가 신규 사업으로 꽤 바쁜 시기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육아휴직을 진행하고 싶었지만, 팀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젠가 다시 호구지책의 중심에 서게 될 삶의 터전이었기에, 회사의 윗분들에게 눈총 받을 일을 만들 생각도 없었다. 결론은 쉽게 도출되었다. 사업이 마무리되는 2개월 후. 관용과 아량이 넘치는 연말연시의 분위기를 틈타 육아휴직에 돌입하는 것이 목표였다.


두 번째 안건은 육아휴직의 기간이었다. 1호는 세 가지 사안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자고 이야기했다.


1. 2호가 회복하기 충분한 기간일 것

돌이 지나고 3호가 걷기 시작하면, 그녀를 안고 생활하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3호가 언제부터 걷게 될 것인지는 미지수였다. 다른 아이들의 평균치에 빗대어 보아 돌이 지난 후 2개월 정도면 스스로 걷는 일에 익숙해지지 않을까 어림짐작해볼 뿐이었다. 이 추측으로 최소 2개월의 육아휴직 기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다.


2. 회사(동료)에 주는 피해가 최소한일 것

1호의 팀 계획을 살펴보았을 때, 익년 상반기에는 일이 적은 편이었고 하반기부터 바쁜 일정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다. 한 명이 빠지면 남은 사람들이 빠진 사람의 일을 나누어서 해야 하는 업무 구조이다 보니 동료들의 업무 부담을 등한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업무가 비교적 한가한 상반기에 해당하는 1월부터 6월까지의 6개월을 육아휴직이 가용한 최대의 기간으로 삼았다.


3. 금전적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일 것

외벌이 가족 육아휴직의 가장 큰 화두. 아주 중요하고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었다. 논의가 이루어지던 2019년을 기준으로 부모가 최초로 사용하는 육아휴직 급여는 3개월까지 매월 최대 150만 원.(맞벌이 가정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제의 경우 상한액이 250만 원으로, 훨씬 높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었는데, 육아휴직 급여액 중 25%를 복직 후 6개월이 지난 후에 일괄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1호가 육아휴직을 쓰는 동안에 받을 수 있는 급여액은 한 달에 최대 112만 5천 원이었다. 여기에 아동수당 월 10만 원, 양육수당 월 15만 원까지 포함하여 약 140만 원이 한 달 수입의 전부가 되는 상황이었다. 고정지출을 고려할 때 3개월이 지난 뒤 육아휴직 급여의 상한액이 더 하락한다면, 행복하게 생활하는 것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사항들을 고려하여 1호 육아휴직 기간 3개월로 해졌.




1호의 육아휴직이 정식으로 시작되는 것은 2020년 1월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바빴던 2019년이 남긴 선물 아닌 선물이 있었다. 대망의 전리품은 바로 10개가 넘는 연차휴가. 남은 휴가를 탈탈 털어 신청하고 앞 뒤로 낀 주말과 공휴일(크리스마스)까지 합산하니, 공식적인 육아휴직을 제외하고도 반백수 패밀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보름 이상 늘어났다. 물론 연차휴가를 수당으로 치환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약간의 설전 끝에 그러지 않기로 결정했다. 앞서 언급했듯 온 가족이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려거든 금전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 확실한 명제이기는 했으나, 그것이 최우선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반백수 부부는 다른 방식으로 금전적 여유를 마련해보기로 했다. 대신 육아휴직 기간만큼은 '가정의 행복'에 집중하기로 말이다.


추후 코로나 19와의 예기치 못한 조우로 당초 3개월로 신청했던 육아휴직 기간을 1개월 연장하게 되면서, 연차휴가까지 포함해 반백수 패밀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은 총 150여 일에 달했다. 그것이 이제 막 첫발을 뗀 <반백수 패밀리>의 유효기간이었다.




드디어 육아휴직 아빠, 전업주부 엄마, 만 1세 아기의 150일 시시콜콜 생존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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