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19년 1월.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본 갓난아기가 한 명 있었으니, 사람들은 후일 '반백수 3호'라 그녀를 칭했다. 천사 같은 그녀에게는 특별한 악마의 재능이 여럿 존재했는데, 그 가운데도 주특기라고 명명할 만한 것은 '안겨서 잠들기'였다.
조리원을 나서는 순간부터 1호의 육아휴직이 시행된 때까지 그녀는 땅에 등을 댄 채 눈을 감는 법이 없었다. 누워서 잘 놀고 있다가도 졸음이 오는 기색이 느껴지면 여지없이 복식호흡으로 굳은 각오를 다졌다. 거센 울음보를 터뜨리기 위해 시동을 거는 것이다. 곧 터져버릴 것처럼 검붉게 닳아 오른 얼굴, 가슴 옆에 다부지게 붙여놓은 꽉 쥔 주먹, 당장이라도 바닥을 박차고 일어날 것처럼 쭉 뻗은 다리. 여기에 아기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우렁찬 울음소리까지 더해지면, 곁에 있던 사람은 패닉 속에 동공이 풀리기 일쑤다. 당최 저 목청은 누구를 닮은 건지. '제발 목소리를 높여줘.'라는 요청을 종종 받곤 하는 반백수 부부가 그녀의 부모라는 사실이 아리송하다. 어쨌든 누구든 그 상황을 벗어날 재간이 없다. 홀린 듯 그녀에게 다가가 숨이 넘어갈 듯한 작은 육신을 번쩍 안아 올릴 뿐이다.
동요가 이렇게 간절하고 애절한 노래였다니. 둥개 둥개 음률에 맞춰 절실한 마음을 쏟아붓다 보면 어느덧 3호의 거친 숨소리가 진정된다. 헐떡이는 울음의 잔해가 고요함으로 일변하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가냘픈 생명체의 쌔액쌔액 들숨 날숨에는 악의가 없다. 어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아기의 안온한 표정 속에는 믿음이 담겨있다. 그 자그마한 신앙을 잠자코 바라보자니, 별 수없는 반성의 시간이 뒤따른다.
아가야, 아주 잠시나마 너를 원망해서 정말 미안해.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이 다짐은 그리 오래갈 수 없다. 적어도 두 시간마다 한 번씩 낮잠을 자는 신생아 때는 자주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함이 문제였다. 더군다나 잠든 3호를 침대에 뉘이려고만 하면 기가 막히게 눈을 번쩍 뜨는 탓에, 잠을 자는 시간 내내 그녀를 어깨에 올린 채 망부석처럼 뻣뻣한 모양새로 의자에 앉아 벌을 선 적도 많았다. 크면 나아지겠거니 하고 막연한 기대를 했는데 웬걸. 잠을 자는 주기는 줄었지만, 몸무게는 정확히 반비례했다. 날로 무거워지는 3호를 힙시트에 올리고 둥가 둥가 춤을 추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녀는 자장가로 잔잔한 동요 대신 빠른 힙합 음악을 선호했다.(태교를 고등래퍼와 쇼미더머니로 한 탓인가...) 3호는 넘치는 흥을 충분히 만끽하다 잠들기를 원했다. 허리가 좋지 않은 1호와 2호에게는 잠과 씨름하는 모든 순간이 고통이었다.
안아서 재우는 것은 눕혀 재우는 일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이 소요된다. 음악과 혼연일체가 되어 리듬을 타고 있노라면 평균적으로 15분 안에는 3호의 머리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툭- 하고 품 속으로 미끄러진다. 어쩌면 3호의 기준에서는 이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꿀잠에 이르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시루에서 콩나물이 자라나듯 하루가 다르게 불쑥불쑥 커가는 아이를 백날 천날 안아 재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는 바닥에 등을 댄 채 스스로 잠드는 방법을 깨우쳐야 했다. 새로운 습관을 통해 얻어질 장점들은 안아 재우던 과거의 수난사를 비교해 볼 때 앞도적인 비교우위에 있었다.
꿀잠이 찾아올 때까지 어둠 속을 헤매던 1호와 3호
1호의 육아휴직은 절호의 기회였다. 3호에게 새로운 생활 방식을 학습시키는 일이 순탄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숱하게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 불 보듯 뻔했기에 부모 모두가 곁에 있는 편이 훨씬 좋았다. 혼자 이런 도전을 감당하려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욱하는 일이 분명 생길 것이다. 그 모습에 겁을 먹은 아이가 변화를 거부하게 된다면 이 프로젝트는 시작하지 않느니만 못하게 된다. 바통 터치해 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실제로 그것이 유효하든 아니든 간에 아주 든든한 감정의 완충제가 되어주었다.
드디어 시작된 '누워서 재우기' 프로젝트!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긴 것은 3호가 스스로 양질의 잠에 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1호나 2호 한 명이 곁에 누워서 서포터가 되어 주었다.
3호의 오전 일과는 대부분 신나게 뛰어노는 것인데, 몸이 피곤해서인지 바뀐 낮잠 방식에 비교적 빨리 적응했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일주일 정도 지나자 자신이 졸릴 때 눕혀서 재워달라고 요구하는 경지에까지 다다랐다.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문제는 밤잠이었다. 낮잠에서 깬 오후 시간에는 주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정적인 활동이 진행된다. 낮잠을 푹 잔 뒤에는 체력이 무한정 비축되는 것인지, 몸을 쓰는 놀이를 하더라도 지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낮잠 때처럼 스스로 방에 들어가 주면 좋으련만. 대게 더 놀고 싶다고 떼쓰는 3호를 억지로 어르고 달래 눕여야 했다. 반강제로 누운 그녀는 오뚝이처럼 벌떡 벌떡 일어섰다. 어둠 속에서 겁도 없이 뛰어다니고, 율동을 곁들여 허밍을 했다. 꽉 닫힌 방문을 쾅쾅 두드리며 시위를 하기도 했다. 바깥에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빛을 관찰하며 하염없이 옹알이를 쏟아냈다. 깊은 잠에 다다르기까지는 빠르면 1시간, 넉넉잡아 2시간의 인내가 필요했다.
자고 싶지 않은 3호의 취미생활. 공갈젖꼭지와 인형 줄 맞춰 늘어놓기.
꿀잠에 다다르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도 험난했다.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다시 3호를 안아 드는 날도 있었고, 대기하고 있던 다음 타자와 바통터치를 몇 차례나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결실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우리 이제 자러 들어갈까?
조심스러운 물음에 3호가 긍정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나게 놀다가도 놀잇감을 내려두고 당연하다는 듯이 안방으로 향해 베개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막상 재우기 시작하면 오뚝이가 되어 튀어 오를지언정 일단은 정해진 규칙을 따라 준 것이다. 잠에 드는 자신만의 방법도 터득한 것 같았다. 암흑 속의 댄서가 되어 활보하다가도, 어느 정도 졸음이 오면 다시 누워 옆 사람의 귀를 잡고 조몰락거렸다. 1호나 2호에게 곧 잠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취침 전 의식이었다.
3호의 꿀잠으로 향하는 뗏목은 여전히 망망대해 어딘가에 표류 중이다. 이 시도가 1호나 2호의 허리 건강에는 상대적으로 도움이 되었지만, 아직 절대적인 목표치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한 가지.1호의 육아휴직이 아니었다면 이 뗏목은 출발조차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공동육아가 또!! 멋진 일을 해낸 것이다.
목적지를 정한 사공은 노젓기를 시작해야만 한다. 허구한 날 부표만 우두커니 바라보아서는 가고 싶은 곳에 다다를 수 없다. 사공이 여럿이면 배가 무려 산으로도 간다고 하지 않던가. 함께 도전하고, 함께 실패를 극복하는 동료가 있기에 반백수 부부 두 사람은 오늘도 의연하게 '좋은 부모'라는 목표를 향해 노를 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