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차언니 Sep 26. 2020

월요병이 없는 가족

주 7일을 금요일처럼 보낸다는 것

- 반백수 1호_육아휴직 아빠
- 반백수 2호_전업주부 엄마
- 반백수 3호_만 1세 아기


<월요일>엔 어김없는 발단 '월요병'

<화요일>엔 스트레스 전개 '화병'

<수요일>엔 기력 위기 '수전증'

<목요일>엔 과로 절정 '목디스크'

<금요일>엔???! 행복한 결말 '금사빠!'


결혼 전 회사에 다니던 시절, 2호는 일주일 내내 금요일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 월요일부터 목요일을 서서히 거쳐 가며 그녀를 잠식하던 '발단-전개-위기-절정'의 잔병치레가 드디어 '결말'로 치닫는 그 날. 명칭부터 블링블링 광이 나는 금요일엔 왠지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기분이 되었다. 아직 주말이 아니므로 지친 몸뚱이가 너덜너덜 패잔병스러울 적도 다반사이긴 했다. 그래도 주말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평범한 회사원의 일상에 해방의 기쁨을 보장해주었다. 쾌감의 발원지라고 지칭해도 좋을 만큼 행복한 시점이었다. 아무것도 강요받지 않는 자유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화려한 주말의 기운이 그녀를 온전히 감쌌다.


프리랜서로 전향하며 어느덧 금요일의 기쁨에 무뎌져 버린 2호에 비해, 1호의 금요일은 여전히 간절했다. 적성에 찰떡같이 맞는 일을 하는 그였지만, 그래도 직장은 직장. 일과 인간관계의 무게에 짓눌려 묵직하게 내려놓던 발사위가 금요일 오후에 들어서면 거짓말처럼 가벼워졌다. 곧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꽤 큰 위로로 작용했다. 하지만 금토일의 행복은 잠시. 이유 없는 불안 일요일 오후부터 그의 심사를 배배 꼬이게 만들곤 했다. 한없이 자유했던 주말의 나날이 곧 소진될 예정이라는 현실이 어김없이 그의 발목을 잡아채는 것이다. 아, 월요병은 그렇게 월요일이 되기 훨씬 전부터 찾아와 1호의 마음을 난도질하고 말았다.




Photo by Sincerely Media on Unsplash


1호의 육아휴직 이후 반백수 패밀리는 '금금금금금금금' 주 7일 금요일의 일상을 살고 있다. 1호의 출근이 사라지니 끈질겼던 '월요병'도 자연스레 소멸되었다. 함께 하는 육아로 기쁨은 늘고 슬픔은 줄었으니 '화병'이 남아있을 리 만무했다. 시시때때로 서로가 서로의 비타민이 되어주고, 맛있는 음식을 틈틈이 챙겨 먹을 여유도 생겼으니 파리한 기력으로 '수전증'이 생길 일도 없었다. 하루하루가 따사로운 나날인데 어찌 과로가 있을쏘냐! '목디스크'도 어느새 남의 일이 되었다.


앞에 나열된 내용에 다소간의 허풍이 더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1호의 육아휴직으로 인해 반백수 패밀리의 매일이 행복해졌다는 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그들은 매일 같이 서로의 매력에 새롭게 빠지고, 서로를 더욱 궁금해하고, 함께 하는 하루하루에 설렘을 느끼게 되었다. 모든 날이 금요일이 되었으니 '금사빠'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매 순간 사랑에 빠지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그저 사랑이 일상이 된 삶을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금요일은 여전히 주말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모든 가정에 평온한 주말은 없을 것이다. 한시도 쉬지 않고 파워풀하게 발산되는 아이의 강력한 에너지가, 주말이라고 해서 기다렸다는 듯 소멸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육아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어려운 것이고, 맞벌이 부부든 외벌이 부부든 한부모 가정이든 조부모 가정이든 각자의 사정과 말 못 할 슬픔이 존재할 수밖에. 1호가 육아휴직 중인 반백수 패밀리도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내내 금요일 같은 달달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100% 회복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아니, 그런 것은 영영 불가능한 일이라고 감히 단언해본다.


그럼에도 반전은 있다. 주말을 기꺼이 포기해야 하는 육아라는 녀석이 의외로 강력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잔병이 발생한 것조차 잊게 만드는 마성의 존재랄까. 동화책 속의 그림을 따라하며 '안아줘.'라는 말을 처음으로 성공하던 순간. 동네의 어르신들께 편견 없이 '하부지 안녕!', '할머니 안녕!'을 예의 바르게 외치던 순간. 짧은 팔로 애써 머리 위에 하트를 만들며 '사랑해.'라고 말해주던 순간. 조막만한 손과 발을 흔들며 엇박자로 동요의 리듬을 타던 순간. 말랑말랑한 입술을 내밀며 뽀뽀를 해주겠다는 제스처를 보내던 순간. 반백수 부부는 출구 없는 미로에 자신들도 모르게 발을 들여버렸다. 헤어 나올 수 없는 그곳에서 육신의 고단함은 잊은 채 환희로 가득 찬 환각 속을 헤매게 된 것이다. 속된 말로 '뽕' 맞은 것처럼 말이다.


"오 친구~ 너희 집에도 육아 뽕이 필요하다고? 그래그래 내가 넉넉히 준비해 뒀어. 물량은 걱정 마."


반백수 패밀리가 똘똘 뭉쳐 함께 했던 수많은 금요일이 이제는 모두 지나갔다. 1호의 삶 속에 월요일의 압박이 다시 엄습해왔다. 하지만 반백수 패밀리로 보냈던 굳건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다행히 그의 일상은 잦은 '병'으로 가득 찬 시간으로 변질되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의 오후를 마치 금요일인 것처럼 여기게 되는 독특한 징후가 생겨났다. 3호가 하루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매우 궁금해하는 아빠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를 어쩐담. 그는 육아휴직이 종료된 후에도 여전히 '뽕'삘 충만한 육아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습득하지 못하고 있다.

   

손쓸 틈도 없이 스리슬쩍 육아 중독자가 되어버린 반백수 부부. 두 사람은 혼미해진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한 가지 해결책을 선택했다. 육아 대신 포기할만한 다른 사안을 찾아내는 것! 한 주 동안 정말 하기 싫은 일을 생각해 두었다가, 주말이 다가오면 그 일만은 절대로 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 주에는 화장실 청소가 낙점되기도 했고, 또 다른 주에는 이불 빨래가 간택되기도 했다. 외출을 절대적으로 금하는 주말도 있었다. 어떤 대상이 거론되든 눈 한번 질끈 감고 양심에 털 숭숭 나게 내버려두고 나면, 한결 평화로운 반백수 패밀리의 일상이 탄생하게 되었다. 3호야, 너의 부모는 절~~대 게으른 게 아니란다. 그저 너와 1분 1초라도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지.(라고 속삭이듯 변명해본다.)


그래서, 주말인데 뭐 안 하고 싶어?



이전 14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꿀잠 표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