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의 육아휴직 기간 동안 가장 아쉬웠던 점은 단연 '사회적 거리두기'다. 출산 후 1년여간 2호의 몸 상태와 3호의 건강한 성장을 고려해 최대한 외출을 피해왔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기점으로 라이프스타일을 개선해보리라 다짐했는데, 여의치 않은 상황에 처한 것이다.한산한 평일 낮 시간에 전국을 누비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과 흥청망청(?) 풍류를 즐기며, 남들 다 등록한다는 백화점 문화센터 강좌도 등록해 반백수 패밀리의 남다른 팀워크를 뽐내 보리라 얼마나 기세 등등했던가! 설 연휴를 기점으로 스리슬쩍 시작된 코로나 시대의 삶은 세 사람의 열망을 산산이 부숴놓고야 말았다. 너무나 슬프게도 육아휴직 거의 초반부터 쭈욱- 집콕 인생을 영위하게 된 것이다.(웃프게도 덕분에 생활비가 대폭 감소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1호의 친구가 매우 과감한 제안을 했다.
우리 다 같이 만나서 밥 먹자!
신이 나서 제안을 한 친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1호의 입을 통해 이 이야기를 들은 2호는 얼떨떨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첫째로, 누구보다 3호의 건강을 염려해주던 그룹의 친구들이었기에 그런 제안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의아했다. 다 같이 반백수 패밀리의 집에 놀러 오기로 했던 약속도 취소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둘째로, 기대감에 상기되어 보이는 1호의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한동안 양가 부모님과의 교류까지 엄격하게 차단할 정도로 바이러스에 민감하게 대처하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런 사람이 친구들과의 모임을 긍정적으로 언급했다는 자체가 난센스로 느껴졌다. 우물쭈물하는 2호를 바라보며, 그는 한층 더 고조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화상채팅 앱으로 온라인 회식을 하자고 하네?
이야호! 2호는 순간적으로 아주아주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말로만 듣던 화상 회식이라니! 그걸 자신이 해보게 되다니!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동안 쳇바퀴 도는 삶 속에 갇혀 사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얼리 어답터(또는 호기심 대장)로서의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제안한 친구 외에는 누구도 특별히 동조하지 않았다는 1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새도 없었다. 2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음 스텝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한다고 해! 무조건 한다고 해! 내가 다 도와줄게!
그리하여 대망의 회식 날.
이제껏 적극적인 사람은 제안자와 1호뿐이었으므로, 2호는 혹시 이 모임이 깨어질까 봐 아주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이미 그녀는 회식용 상차림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조개 초무침과 어묵 숙주볶음, 호박 부추전이 오늘의 주 메뉴였다. 게다가 와인, 소주, 맥주가 모두 기본 옵션이었으니 그녀의 설렘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굳이 형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방에 있던 2호는 앱을 켠 채 대기하고 있는 3호와 1호를 바라보며, 다른 친구들의 참석 여부를 재차 묻고 또 물었다.
장고의 기다림 끝에 총 4인이 참여하는 온라인 회식이 시작되었다. 화면 밖 깍두기인 2호를 제외하고 반백수 패밀리의 공식 참석자는 두 명. 1호와 3호가 화면 앞에 나란히 앉아 다른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이미 반백수 패밀리의 집에 초대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3호는 이미 삼촌들과 안면을 텄을 터였다. 삼촌들과 조카의 참으로 안타까운 첫인사였다. 다행히 화면 속 삼촌들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3호의 얼굴에는 첫 순간부터 웃음이 만발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2호의 얼굴에도 덩달아 미소가 만개했다.
언택트 시대 화상 회식의 장점 하나. 아무 옷이나 대충 걸치고 참여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 (하지만 얼굴은 해도해도 너무했던 관계로 살짝 가립니다.)
위풍당당 최연소 회식 멤버는 구성원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한참 대화가 진행 중이던 와중에도 삼촌들은 3호의 몸짓에 반응해주었다.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었을 때는 찬사의 환호를 보냈고, 먹던 음식을 퉤-하고 뱉어냈을 때에는 다시 도전해보라는 격려의 박수를 건넸다. 3호는 마음껏 춤추고, 노래 부르고, 먹었다. 마치 잘 나가는 먹방 BJ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원격으로나마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이 회식에는 3호 외에 다른 멤버들도 참여했다. A 씨의 할머니, B 씨의 아버지, C 씨의 고양이들, 그리고 2호도 잠시나마 인사를 나누었다. 각각의 가족들과 모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화상 회식이기에 가능한 점이었고,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단순히 친구끼리 만나 음식점에서 한 끼 식사를 할 때는 할 수 없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가족 동반 모임을 어찌어찌 마련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집이 아닌 이상 앞서 언급한 멤버들이 모두 참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아직 아기인 3호의 경우에는 어른들이 술 한 잔 기울일만한 장소에 함께 하는 것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삼촌들은 꼬마 아가씨의 장기자랑을 볼 기회를 잃었을 테고, 3호에게는 멋진 삼촌들의 덕담을 들을 계기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각자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언택트 시대의 모임은 생각 이상으로 훌륭했다. 평소에도전화나 메신저로 안부를 나누기는 했다. 하지만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시시콜콜 나누는 것은, 음성이나 문자로만 소식을 전하는 일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화면을 통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표정을 공유하는 것이 예상보다 더 서로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물론 위에서 끄집어낸 그 어떤 장점을 가져다 붙여보아도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이 가져다주는 끈끈한 유대감을 이길 수는 없겠지만, 코로나 시대의 슬픈 집콕 생활 속에서 이런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음이 참 감사했다.
랜선을 활용한 이번 회식은 3호가 사회의 일원으로 발돋움 한 멋진 신고식이었다. 그런데 이 경험이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이들과 대화하며 끊임없이 웃을 수 있었던 기회였기에 당연히 온기 충만하고 기운 샘솟는 시간이기는 했다.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3호에게는 이런 상황이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미세먼지만으로도 충분히 안쓰러운 유년을보내고 있는데 끈질긴 전염병이라니. 막막함에 겁이 났다.
한풀 꺾였나 싶던 코로나가 다시 활개를 치고 있는 요즘. 부디 이런 고난의 나날이 하루빨리 극복되어 죄 없는 어린아이들이 제한 없이 행복을 누리고, 드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꿀 수 있는 시기가 찾아오기를 기도한다. 그 날이 올 때까지 모두가 건강하고 안전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