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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아기와 나 Oct 23. 2017

어쩌다 보니, 극장 개봉

영화 <아기와 나> 릴레이 연재 : 세번째 - by 한만욱 촬영감독

존 에딩턴의 <조 카커 : 매드 독 위드 소울>을 좋아한다. 거기 보면 생전의 조 카커가 역시나 생전의 레이 찰스와 나란히 앉아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몸둘 바를 몰라하는 조 카커가 레이 찰스는 자신에게 신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면 레이는 그가 자길 따라하는 거라 한들 이 정도면 세계 최고 복제버전이라며 껄껄 웃는다. 아직 새파랗게 젊은 청년 조는 그 말에 무지 기뻐하며 한마디 보태기를 복 받으실 거에요. 레이 찰스 앨범을 끼고 잠도 잘 사람이란 말을 듣는 이가 당사자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아아 정말이지, 복 받으실 거에요 레이.     


 세상 만사 그렇게, 좋아하는 만큼씩만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면야 본인 같은 사람도 데릭 시엔프랜스와 나란히 앉아서 허허 갓 블레스유~ 덕담을 주고받을 일이었겠지만 그럴 리가 있나, 어찌어찌 촬영은 마쳤으나 진짜 어려운 부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우리는 여러 버전의 컷들을 찍어 두고 편집 때 선택할 가능성을 남겨놓기보다는, 많은 경우 긴 호흡의 많지 않은 컷들에 온전히 <아기와 나>속 인물들의 감정을 담아내 보고자 했다. 자잘하게 나뉘어진 호흡보다는 우직하고 느린 방식이 맞지 않은가라는 판단이었고, 무엇보다 우리가 디비디라도 끼고 잘만치 흠모하던 영화들이 택한 방식을 따라해 보려는 요량이었으나 아뿔싸, 우린 조 카커가 아니잖아. 우리는 붉은 천만 보고 달려드는 투우마냥 촬영장에서 많은 것을 너무 좁게 보고 판단했었고, 그래서 애초에 짠 편집 계획을 대폭 수정하고 많은 부분을 잘라내고 새로 붙이기를 거듭하며 조금이라도 영화를 낫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장편 영화의 편집이란 길고도 지치는 과정이었고, 수많은 밤을 고요한 영화 아카데미 교사의 어두운 편집실 한구석에 자리잡고 앉아 있노라면 문득 옆자리에 나란히 앉은 데릭 시엔프랜스쯤 되는 이가 에잉 이건 아무래도 최고 복제버전은 아닌데...라고 혀를 차는 듯도 했더랬다. 장편 영화 만들기란 여전히 레이 찰스 코끼리 만지는 듯 감이 잡히지 않았으나 한 가지는 그럭저럭 알 것도 같았다. 길다! 기일~게 걸리니까 장편이로구나!! 아무렴 장편이라면 모름지기 길어야지!!

한국영화아카데미 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 보낸 수많은 밤


 어쨌거나 저쨌거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계절이 몇 번인가 바뀌고, 끝날 것 같지 않던 편집과 후반 작업의 첩첩산중을 넘어서 <아기와 나>는 한 편의 영화로 완성되었고,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하게 되었다. 해운대 해변가에 걸린 도일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포스터 앞에 서니 문득 실감이 오는 게 아닌가. 세상에, 이건 내가 찍은 영화잖아. 여기 올때마다 이 자리에 붙은 장편 영화들 포스터를 올려다봤었는데. 내가 장편 영화를 찍었잖아.

부산국제영화제 해운대  <아기와 나> 대형 포스터 앞에서


부산 국제영화제, 스탭들과


 역시나 자앙~편답게, 또 긴 시간이 흘렀고, 어쩌다보니 2017년 10월, <아기와 나>는 다음달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개봉이라는, 마찬가지로 1도 알 수 없는 일을 앞두고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노라면, 문득 레이 찰스와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은 청년 조 카커의 심정이 되곤 한다. 우리가 만든 건 아무래도 최고의 복제 버전은 아니다. 그 수많은 부족함에 대해서라면 변명할 길 없이 부끄럽지만 어찌하겠는가. 다만 우리는, 우리가 좋은 영화라고 신처럼 믿는 영화들 근처에라도 가 보려 했고 이건 그 결과물이다. 그 결과가 어떤 방식으로든 의미가 있을 거라 믿고 함께한 스탭들과 배우들, 그리고 많은 친구들의 도움 덕분으로 여기까지 왔고, 그중 본인의 경우를 말할 것 같으면-꽤나 행복한 경험이었으니까. 그래서, 몸둘 바는 모르겠다만 한마디 보태두고 싶은 것이다. 정말이지, 복 받으실 거에요. <아기와 나>를 함께한 여러분. 그리고 앞으로 만날 여러분.

<아기와 나> 촬영팀
<아기와 나> 단체사진

* 영화 <아기와 나> 브런치 한만욱 촬영감독님 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부터는 손태겸 감독님의 연재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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