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바퀴 없는 자들의 편이다”
공연 계획을 물었다. 가장 근시일 내에 공연 예정인 작품은 이미 전석 매진이었다. 작품 정보에 대해 찾아봤다. ‘이분법적 사회에서 끊임없이 경계의 문을 두드리는 트랜스젠더의 삶과 존재에 대한 이야기’라고 적혀 있었다. 이 작품은 백상 연극상을 수상했다.
‘엇! 이 언니 잘 나가네.’
공연이 무척 궁금했지만 노쇼 티켓도 구하기 힘든, 연극계에서 매우 ‘핫한’ 공연이었다.
잠시 옛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배우로 활동하고 언니가 조연출이던 시절 풋풋했던 우리 모습, 언니와 연습실 옆 골목에서 나눴던 시답잖은 이야기들. 우리가 종종 기울였던 술잔과 연애 이야기.(그때 막 연애를 시작했던 남자가 지금의 내 남편이다) 내가 결혼했던 2014년부터 언니는 자신이 꾸린 극단의 작가이자 연출, 대표로 쉼 없이 공연을 올렸고, 곧 국내 연극계에서 주목받는 연출가로 확고히 이름을 굳혔다. 만감이 교차했다. 나와 실없는 농담을 나누던 사람이 이제는 저기 저 높은 하늘 위에 떠 있는 별처럼 느껴졌다. 집에서 수년 째 아이의 하원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내가 왠지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무언가를 선택하기 위해선, 반드시 다른 하나를 손에서 놓아야 한다는 것을. ‘완벽한 선택’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각자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것뿐이라는 것을. 엄마가 된 후 30대를 통과하는 가운데 배운 것이다. 모든 지난 삶은 스스로가 부여하는 만큼의 가치를 지닌다.
당장 내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다음에 예정된 또 다른 공연 일정을 달력에 체크해 두었다. 그리고 늦지 않게 티켓팅에 성공했다. 이 작품은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그 이전의 세상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사전 정보 없이 공연장에 간 나는 당황했다. 동물들의 고통을 다룬 이 극은 세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은 뒤로 하고,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서사적 구조가 아닌, 각기 다른 시공간 속 드라마를 의도적으로 조각내며 파열음을 내는 듯한 공연이었다. 관람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나처럼 느끼는 이가 적지 않은 듯, 인터미션 중 짐을 챙겨 황급히 공연장 밖으로 나가는 관객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나도 나갈까, 고민했지만 끝까지 있어보기로 했다. 작품 속 언어들, 그리고 배우들이 대사를 발화하는 방식이 매우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언니의 작품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의미와 상징들로 가득한 언어들이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렸고, 그것을 주워 담으려 뒤를 돌아보면 이미 다른 의미와 상징들로 포위되어 있었다. 이에 더해,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배우들의 독특한 발화 방식은 그 의미와 상징들을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도록 교란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조사와 어미의 올바른 사용법을 간단히 무시하고, 마치 그들만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낸 것 같았다. 인간 중심 세상에서 끊임없이, 당연하게 고통받아온 동물들의 편에 서서 당사자를 대신해 객석(인간)을 향하여 분노와 고통, 깊은 슬픔과 진실들을 토해내는 그들의 말은 객석 너머에까지 닿을 듯했다.
공연이 끝나고 도망치듯 극장을 나왔다. 생각보다 오래 붙잡혀 있느라 엉덩이가 심하게 아팠다. 두통이 몰려왔다. 배리어 프리로 진행되는 공연이라 새까만 공연장 속 스크린에 하얀색 자막이 떠다니고, 배우의 연기 중간중간 음성 해설이 들어오고, 무대 양 옆에서는 수어 통역사가 동시에 연기를 하고 있어서 귀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어지러웠다. 세 시간 동안 쏟아지던 화살 같은 언어들.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내 두뇌는 한동안 사용 않던 부분을 가동하느라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생전 처음 보는 공연이었다. 독립을 위해 이제 막, 호기심과 두려움 섞인 눈빛으로 길을 나선 고라니가 어느 순간 강렬한 섬광에 몸이 굳어버려 그대로 로드킬 당하듯, 마치 그날 내가 공연장에서 로드킬 당한 느낌이었다. 비록 넌더리 치며 극장 밖으로 대피한 관객들이 많았지만, 그만큼 충격적인 공연이었고,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공연이라고 여겨졌다. 이제 언니가 하늘의 별이 아닌, 저 멀리 손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빛을 반짝이는 천왕성처럼 보였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남편이 공연을 본 소감을 물었다.
“음… 특이했어. 한마디로 말할 순 없는데, 일단 몸과 머리가 힘들었고… 음… 배우들이 힘들었을 것 같고… 관객들도 힘들어했고… 그런데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공연이었어. 내가 할 수 있는 공연은 아닌 것 같아.”
다음 날 조금 늦잠을 잤다. 공연에 얻어터진 느낌이랄까. 수많은 의미와 상징, 은유, 의도적 교란들을 해석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웠던 탓에 온몸이 무거웠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거실로 나가 남편에게 말했다.
“난 그런 공연 못 해.(절레절레)”
그런데 그 후 내 안의 무언가가 영원히 바뀌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 공연은 인간 중심적 사고와 필터가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지구상의 다른 존재들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짓밟고 파괴하는지 깨닫게 했고, 약하고 무고한 존재를 가혹하게 이용하고 차별해 온 무수한 세월들에 대해 각성하게 했다.
일곱 살 아이가 이해하기 쉽도록 공연의 내용과 감상을 이야기해 줬다.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는 곧 자신의 삶에서 그들을 위한 행동을 실천했다. 아이를 데리고 등원하는 아침, 우리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햇살을 받으며 한 끼 식사를 챙기는 비둘기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었고, 메마른 아스팔트 위에서 고통스러운 듯 꿈틀대는 지렁이를 촉촉한 흙 위로 옮겨줬다. 동네 개천길에서 만난, 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몸 여기저기서 진물이 새어 나오는 너구리를 발견하고 신고한 후 구조대가 올 때까지 곁을 지켰다. 채식 위주의 식단에 관심을 갖게 됐다.
꾸준히 다른 공연들도 보러 다녔다. 하지만 내 영혼에 각인된 공연은 하나뿐이었다.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러다 문득, 20대 때 연극을 하던 시절 읽었던 박원서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노트에 필사해 두고 연극을 하는 동안 몇 번이고 떠올렸던 글이다.
어쩜 그리 혹독한 추위 그렇게 무자비한 전쟁이 다 있었을까. 이념이라면 넌더리가 난다. 좌도 싫고 우도 싫다. 진보도 보수도 안 믿는다. 김훈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다만 바퀴 없는 자들의 편이다.
p67
갓 연극 예술계에 입문한 청년이었던 그때의 나는 ‘바퀴 없는 자들’의 편에 서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외당하고, 배제당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조차 상실한 존재들 편에 서서 함께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언니는 자신이 꾸린 팀원들과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런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고 있었다. 이 사회의 기득권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며 기존의 질서를 해체시켰다. 그렇게 붕괴된 기존의 질서 바닥엔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스러진 자들이 있었고, 그들을 일으켜 세워 존재를 드러내게 했다.
마흔 살에 한 극단의 일원이 된다는 건 사회 초년생이 극단 생활을 한 번 경험해 보기 위해 입단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감을 지니는 일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출내기라면 “일단 해본 다음, 아님 말고!”의 정신으로 부딪쳐봤겠지만(그런다고 입단할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겠지만) 당시의 나는 신중을 기해야 했다. 어쩌면 내 남은 미래를 180도 바꿀 수 있는 선택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극단에 입단하기 전 가장 중요한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그 극단의 정체성은 확고했고,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한 단원들이 서로 간에 공유하는 사회적 관점과 가치관 또한 분명할 터였다. 연극은 방송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연습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단체작업이다. 단지 작품이 마음에 든다고 극단의 입단을 결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뒤늦게 합류하여 그들 안에서 잘 어우러질 수 있을지 또한 중요했다. 곧 나의 집요함을 발동시켰다.
그 극단은 지난 10년 간 매번 신선하고 파격적인 공연으로 연극계의 주목을 끌었고, 그만큼 작가이자 연출인 언니의 인터뷰 기사가 많았지만 극단 배우들과 관련한 자료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3일 동안 쉬지 않고(이것은 거의 스토킹 수준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포털 사이트에 기재된 신문 기사부터 인터뷰 및 영상 자료, 블로그, SNS 계정까지 샅샅이 뒤져 그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작품 분석과 함께 각 배우가 맡은 인물에 관한 이야기, 그 배역에 다가가는 방식, 연기 전략, 의도, 그들만의 작업 윤리, 동료와 함께 호흡을 맞출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내용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봤다. 그 시간 속에 함께 하지 않았기에 상상이 가지 않는 부분들도 다소 있었지만 대체로 공감할 수 있었고, 가슴에서 존경심마저 일었다.
충격적으로 관극 했던 지난 공연을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바로 배우들 간의 호흡이었다. 단순한 ‘티키타카’에 관한 부분이 아니라, 그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연습실에서 치열한 토론과 협의,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각 종 기사를 접하며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연습은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많은 대화가 오고 가는 가운데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늘 바라왔던 환경이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작업 환경에서 서로 간의 이견을 조율하고 협의하고, 물리적인 연습을 통해 그것들을 구체화하는 과정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구성원 개개인이 일정 수준 이상의 인격적 성숙도를 갖추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나도 이 무리 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이들과 함께 작업하고, 대화하고, 삶을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무엇보다 내 아이에게 떳떳할 수 있었다. 엄마가 된 후 아이는 내 가치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요한 선택을 앞뒀을 땐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내가 이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고,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엄마의 공연, 엄마의 직장, 엄마의 동료들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문을 두드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