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나의 밤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나의 밤을
끝내 잠들지 못한다.
어둠은 침대 위에만 내려앉지 않는다.
기억과 기억 사이,
숨과 숨 사이에도
밤은 조용히 눕는다.
이 순간
아니 에르노를 생각한다.
그녀는 혈연의 친구도,
자주 안부를 묻는 친구도 아니다.
그러나 문장 너머에서
나의 등을 알아보는
정신의 친구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았던 그녀와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를 돌보는 나.
우리는 다른 나라,
다른 언어에 살고 있지만
같은 시계 아래에 있다.
반복되는 하루,
조금씩 사라지는 사람,
사랑이 점점 돌봄의 얼굴로만 남는 시간.
동병상련.
이 말은 연약해 보이지만
실은 단단하다.
아픔이 같다는 뜻이 아니라
아픔을 피하지 않는 태도가 같다는 뜻이니까.
나는 오늘도 잠들지 못한 밤을 산다.
그녀 또한 어딘가에서
프랑스의 어딘가에 불을 켜둔 채
기억의 가장자리를 걷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부르지 않아도
안다.
이 밤을 견디는 방식이
이미
우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아니 에르노
프랑스의 작가.
기억을 미화하지 않고,
고통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다만 기록한다.
사적인 삶을
가장 공적인 언어로 옮긴 사람.
사랑, 계급, 여성의 몸,
그리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시간까지—
감정이 아니라 사실의 밀도로 쓴다.
그녀의 문장은 차갑다기보다
불필요한 위로를 거절한다.
그래서 더 정직하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간병의 시간 속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슬픔을 넘어서려 하지 말고
그 안에 정확히 서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그러나 상보다 더 분명한 것은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태도다.
아픔을
숨기지 않는 글쓰기.
삶을
도망치지 않는 문장.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은
이야기라기보다 증언에 가깝다.
위로하지 않고, 꾸미지 않으며,
기억을 사실의 높이에서 그대로 놓아둔다.
그녀의 글에는
구원이 없다.
그러나 회피도 없다.
그래서 간병의 밤,
잠들지 못하는 사람 곁에
조용히 남아
같은 시간을 버텨준다.
읽는다는 것은
이 작가에게서
함께 깨어 있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최근 나는 그녀의 작품
'한 여자'와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를
다시 읽었다.
'한 여자'는 그녀의 어머니의 일생에 대한 내용이고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치매에 걸린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간병일기다.
작가의 침묵적 고백은 인간의 삶 속에서
필연적으로 내재된 살존적 고독감이다.
에르노는 치매로 점점 피폐해 가는 어머니의 고통을
자신이 분담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어머니의 죽음이 더욱 명백한 현실로 규정지어진다는
두려움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를 24시간 간병하고 있는
에르노의 고백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녀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을
글쓰기를 통해서 죽의 그림자를 극복하게 해 준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다.
그녀는 시공을 초월해서 언제나 그녀 곁에
존재하게 될 어머니를 글쓰기를 통해서 그려내고 있다.
현실적 삶의 고통을 피하지 않으려는 에르노의 의지는
지금 아내의 고통을 안고
밤을 지새우며 간병을 하고 있는 나에게
소중하고 경건한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존재에 대한 감사와 희망을 부여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