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니 Sep 13. 2019

필름 카메라가 얼마나 위험하게요

마 이게 비지니쓰다


아빠가 젊을 때 썼다던 미놀타 필름 카메라를 들고 구글 지도에 고개를 처박고 걸으며 찾은 카메라점.

너무 인간미가 넘치고 귀여우므로 글을 아니 쓸 수 없다.


할아버지에게선 비지니쓰맨의 강한 기운이 흘러넘쳤다. "이걸 고칠 수 있을까요?" 물어본 내게 "그걸 알기 위해서는요, 일단 전지를 사세요, 3500원"이라며 건전지 AA사이즈 두 개를 내밀었다. 포장도 아닌 그냥 지퍼백에 든 건전지가 조금 미심쩍어 "제가 그럼 건전지를 조오기 마트에서 사 올게요"하자, 어느새 건전지를 슬금슬금 끼울 준비를 하시며 "왜 나가서 살까...? 삼천 원에 줄게요, 이게 그냥 전지가 아녀"하신다. 카메라용 특별한 건전지인가 싶어 되묻자 "나는 보관을 특별하게 하지"하시며 어물쩍 넘어가는 스킬.


가게에는 오래된 온갖 것들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이런 물건들은 뭔가 혼령이 깃들어 있을거 같다... 쏘울내가 진동을 한다 이거지 뭐.) 나는 어슬렁거리며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할아버지는 나를 구경했다. 할아버지 가게에 맡겨진 택배를 찾으러 온 이웃 상인을 싱글벙글 떠나보내고는 제법 심각해진 얼굴로 순식간에 바뀌더니 "고장 난지도 모르고 카메라를 무턱대고 켜는 순간이 상당히 위험하거든." 한다. 전문가의 닳고 닳은 손가락은 전지 부분을 딸깍 연다. "이 전지가 순간적으로 사-백 볼트의 전기를 일으킨다구.그걸 다루는 거야"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럼 어떡하죠?"물었다. 할아버지는 아주 쉽다는 듯 "그러니까 나한테 가져와야지." 했다. 아하!

나는 그에게 내 사정을 이야기했다. 아부지가 쓰시던 카메란데 너무 비싼 돈을 주고는 고치고 싶지 않다, 내가 사는 곳에서 필름을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있어도 상당히 비쌀 것이다, 잘할지도 모르는 취미에 큰돈을 들이기에 나는 젊은 서민일 뿐이다. 그는 허심탄회하게 모든 걸 털어놓은 내게 고개를 끄덕이며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거에 관심이 없다고. 그게 기특해서 내가 검사는 무료로 해주지"한다. 원래는 검사비 15000원을 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며.


이 노련한 비지니쓰맨은 이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의 마음을 훔쳤을까. 십분 남짓한 대화에 나는 이미 그에게 특별한 고객이 된 기분인데. 특히, 내 뒤에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던 젊은 남자에게 단호한 손짓으로 "거긴 기다리시고." 하며 카메라의 위험성에 대한 설명을 이어갈 땐 정말이지!

밤새 카메라를 건조대안에 넣어둬야만 수리 여부를 알 수 있을 거라던 그의 말과 달리 카메라를 맡긴 지 세 시간 만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새삼스레 존댓말을 했다.

"수리가 될 거 같은데, 삼만오천 원은 들 거 같은데 말이죠."

"오, 삼만오천 원만 내면 되나요?"

"에이, 아니, 삼만오천 원이 기본이고요. 이 옛날 카메라라는 게 고친다고 바로 고쳐진게 아니거든요. 제가 세심히 지켜봐야 한다, 이거죠."


일주일이 걸려 나는 6만 6천 원을 내고 카메라를 찾아왔다. 그는 일주일 내내 정성을 다해 카메라를 지켜봤기에 이건 큰돈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선 카메라 렌즈를 보호하는 보호대의 중요성을 4번 정도 반복해서 말한 뒤 마침 자신에게 내 렌즈에 꼭 맞는 보호대가 있다며 보여줬다. 렌즈 보호대와 필름 한 통을 사오는 길 그의 과장된 손사래가 자꾸 생각나 괜히 실실 웃음이 나서 집에 오는 동안 실성한 듯 피식거렸다는 뭐, 그런 이야기다.



이전 09화 한(恨)을 노래하는 사람, 한(恨)을 쓰는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