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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Jan 08. 2020

울음을 삼키는 사람

폐백상을 앞에 두고 연신 셔터를 누르던 사진사가 

카메라에서 눈을 떼더니, 신부 아버지가 한 말씀해주시죠, 하고 외쳤다. 


근상은 옷매무새를 고치고는 “엄.. 그러면... 둘이 서로 아껴주며... 행복하게 살 것!” 큰 소리로 말했다. 


짐짓 짓궂은 표정으로 하는 말 틈의 정적에서 나는 분명 들었다. 삼켜지는 울음을. 


내가 근상이 우는 모습을 본 건 20년도 더 전, 그러니까 나의 할아버지이자 근상의 아빠의 장례식에서다. 

대나무 지팡이에 고개를 묻은 근상의 코에 맺힌 눈물 방울이 또렷이 기억난다. 

9살의 어린이에게 아빠라는 존재가 운다는 것은 잊히지 않는 충격이다. 

아홉 살이란 자고로 선생님들은 화장실도 가지 않고, 엄마와 아빠는 울지도 아프지도 않은 존재라고 

자신만만하게 믿지 않는가. 


그 후 나는 근상의 눈물을 본 적이 없다. 엄마가 서울대 병원 암병동에 입원했을 때에도,

 누군가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서 병원비 때문에 파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근상에게 비겁한 놈이라고 

쌍욕을 할 때에도, 나보다 4살 위인 오빠가 버스에 치였을 때에도, 몇십 년을 다니던 회사를 퇴직할 때에도 

근상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삼켰다. 자꾸자꾸 눈물을 삼켜서인지 근상의 눈두덩이 아래가 점점 두둑해졌다. 어느 날인가 거울을 보던 근상은 진지하게, ‘여기 눈 밑에 이거. 이거 없애는 수술 할까?’ 묻기도 했다. 

나는 근상에게 수술보단 쏟아야 할 눈물을 비워 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근상은 60이 넘어 쫄딱 망했지만 오뚝이처럼 우뚝 서있다. 우울증에 걸리거나, 삶을 체념하거나, 

가족을 포기하거나, 희망 없이 하루하루 산대도 탓할 이가 없는 상황인데 

그는 묵묵히 서서 풍파를 맞고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다시 일을 구했다. 

30대의 젊은 나도 그런 상황에선 그처럼 씩씩할 자신이 없다. 

그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실제로 만나 본 사람 중 가장 강한 사람이다. 

나는 그의 강함은 눈물을 먹고 자랐다고 믿는다. 


그의 막내딸로 태어난 나는 희한하리만치 눈물을 잘 쏟는다. 낮에 본 유튜브 영상 얘기를 하다가도 울고, 

아는 언니에게 근상의 등에 난 털을 뽑아주던 얘기를 하다가도 울고, 

친구에게 드라마 줄거리를 설명해주다가도 운다. 남편에게 지난주에 무엇이 서운했는지를 이야기할 땐 

어김없이 운다. 나는 울 때 무척 찌질해진다. 가령 내가 울면서 말을 하면 들쑥날쑥한 삑싸리로만 

이뤄진 문장을 뱉는다. 코가 꽉 막혀서 킁킁 거리는 소리도 낸다. 

아마, 근상도 그래서 눈물을 참는 걸까? 근상도 울 때 나처럼 바보 같아질까.  


어릴 때는 너무 자주 울어 근상의 화를 돋웠다. 밥 좀 팍팍 먹으라고 하면 눈물을 뚝뚝 떨궜고, 

어버이날 내가 쓴 편지를 읽어주면서도 감정에 북받쳐 펑펑 울었다. 

대부분의 경우 근상은 나의 눈물을 못마땅해했지만 딱 한번, 내 눈물이 근상의 박수갈채를 받은 적이 있었다. 


7살쯤 일까, 경찰이 근상의 차를 세웠다. 못 봤습니다, 한 번만 봐주시죠 등등 최선을 다해 

경찰관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는 근상과 근엄한 표정으로 면허증을 달라는 경찰관 사이의 

실랑이는 20분을 넘게 계속되었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나를 곤란해하는 근상의 표정을 보자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근상은 당시 나에게 우주 최고 강한 사람인데 젊은 경찰에게 쩔쩔매니 

가슴이 다 시렸다. 하지만 나는 울 명분이 없었고 코를 쿨쩍 쿨쩍 하다 결국 으와앙 울며 

내가 한 첫마디는 7살 다웠다. “아빠, 새콤달콤 사준다며 언제 사줄거야아!” 근엄한 표정의 경찰관은 

피식 웃었다. 그는 근상에게 앞으로 조심하라는 주의를 주고 나를 다정히 바라보며 

‘이따가 아빠한테 새콤달콤 10개 사달라 그래.’ 하고 떠났다. 


근상은 이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자주 회자시켰다. 나는 왠지 으쓱 자랑스러웠다. 

무시무시한 경찰관이 근상의 면허증으로 무슨 짓을 할지는 몰랐지만, 

내 눈물이 근상을 구해준 것만은 분명했다.  


근상을 구한 눈물. 올해는 나는 근상처럼 되고, 근상은 나처럼 됐으면 좋겠다. 

나는 좀 더 단단해지고 근상은 좀 더 물러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근상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울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그의 곁에서 따라 우는 대신 덤덤하고 다정하게 그를 위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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