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니 Nov 15. 2019

신묘한 우주탕

촌스러움이 주는 위안


개인적으로 목욕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두가 벗고 같은 물속에서 살을 불린다는 개념도 그다지 반갑지 않고, 남의 엉덩이가 수백 번 닿은 의자에 나도 맨 엉덩이를 들이밀기엔 까탈스러운 편이다. 그런 연유로 목욕탕에 안 간 지 십 년은 족히 되었는데, 숙취로 인해 몸이 으슬으슬하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오늘 아침, 몸을 뜨끈한 물에 담그고 싶다 라는 생각이 번뜩 떠오르더니 떠나질 않았다. 며칠 전 이웃집 205호 할머니가 추천해준, 이름도 신묘한 우주탕으로 쇼핑백에 빤쓰, 이태리타월 그리고 비누만 달랑 넣고 향했다.  


우주탕에 다다를 때쯤 '그냥 돌아갈까'하는 망설임은 우주탕 간판이 풍기는 '촌스러움만이 줄 수 있는 위안'에 떠밀려 사라졌다. 육천 원을 내고 들어간 우주탕은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아는 요지경이었다. 주춤주춤 들어간 나를 토끼눈을 하고 2초 정도 바라보다 호쾌하게 웃는 나체의 중년 여성은 세신사였다. 


 "아유, 나 지금 남자 들어온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내 머리가 짧아서.)  


탈의실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쭈그려 앉아 손으로 비벼 빨았을 속옷들이 파티장의 가랜드처럼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세신사는 커다란 대접에 물과 얼음을 넣고 스틱커피를 부어 휘휘 저었다. 그의 뒤로는 막 밥을 차려먹은 듯 씻지 않은 냄비와 식기가 보였다. 늦은 아침식사는 두부찌개였구나. 수건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라 황망히 서있는 내 팔뚝을 이끌고 목욕탕 이용법을 알려준 건 세신사였다. 이 작은 동네 목욕탕엔 대부분 월로 끊고 매일 오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인데, 서로의 집에 밥숟가락 몇 개인지도 속속들이 아는 듯했다. 


여자들은 뜨거운 사우나와 냉탕을 오가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다. 오늘 민자네는 왜 목간 하러 안 왔는지, 대성 방앗간에서 참기름을 짜면 얼마인지, 오성 한의원에 다 같이 침을 맞으러 갈 것인지 등이 그들의 대화 주제였다. 탕의 타일 사이에는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때가 끼었고, 탕 속에서 부글부글 솟아나는 물줄기마다 나이 든 여자들이 제각각의 통증을 달래고 있었다. 여자들의 몸은 그들의 삶의 무게를 보여주는 지도 같았다. 손가락과 손목은 굵고 거칠었지만 하분하분한 등에는 부항자국이 철길처럼 이어졌다. 한때는 누군가의 생명을 키워냈을 젖가슴은 힘을 빼고 평안하게 쉬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때를 밀었다. 엄마가 봤더라면 분명 한 소리했을 만큼의 때가 나왔다. 냉탕에서 개구리 수영을 하니 기분이 유쾌했다.


들어간지 한 시간이 덜 되어 탕 밖으로 나오자 일전의 세신사는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물에 몸만 퐁당 담갔다 가는겨? 우린 뭐 먹고살라고 정만 살포시 주고 가?" 

나는 세신을 하지 않은 원망을 넌지시 던지는 그의 너스레에 수줍은 웃음으로 답했다. 그는 옷을 입고 나서 물을 마시는 내 뒤로 와 엉덩이를 토닥이며 "아이고 애기네, 애기."라고 짓궂은 농을 던졌고 평상에 앉아 발톱을 깎던 다른 중년의 여자는 "늙은이처럼 웬 애기 타령이여?!" 하며 깔깔 웃었다. 평상시 같으면 뜻 모를 농담에 기분이 썩 좋지 않고도 남을 나인데, 우주탕에서만큼은 그저 웃어넘길 수 있었다.   


목욕탕을 나서는 길의 햇살과 서늘한 바람, 부드러운 살결에 민트 티라도 마신 양 상쾌했다. 과장 좀 보태 숙취가 온데간데없다.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온 기분이기도 하다. <Orange is the new black>이 미국판 여성연대와 갈등을 그려냈다면 한국에는 우주탕이 있다. 



이전 11화 울음을 삼키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