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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Apr 11. 2021

한(恨)을 노래하는 사람,
한(恨)을 쓰는 사람


어떤 이야기들은 글로 쓰기엔 너무 엉켜있다. 이야기의 시작점은 온 데 간데 없이 숨어들고 얽히고 상처 입은 존재들이 다시 그 위에 이야기를 덧칠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글로 쓰자면 유예의 시간이 필요하다. 곱씹고, 무시하고, 숨죽이고, 분노하는 과정을 거쳐 나 또한 그 이야기에 녹아들 때 글로 쓰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 최여사의 이야기를 쓸 수 없다. 내겐 그 이야기를 할 자격이 없으므로.


다만 내가 아는 건 ‘한’이라는 것은 구전된다. 유전이라기엔 너무 후천적으로 생성되는 듯하고, 

구전된다고 말하는 게 적당하지 싶다. 최여사의 한 서린 이야기는 몇십 년에 걸쳐 앞에 앉혀둔 

엄마 진희에게 구전되었고, 그 와중에 진희도 자신의 이야기를 덧칠하며 들었다. 

이제 그건 진희의 한이다. 사실 애초에 누구의 이야기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이야기는 계속 진화하므로.


바닥 걸레질을 할 때면 진희의 한 타령은 클라이맥스에 달하곤 했다. 

걸레로 바닥을 훔치는 동시에 모퉁이에 뒤집어 벗어놓은 양말을 주우며, 

추임새처럼 아빠와 오빠, 내가 차례대로 씹혔다. 근상이 낚시라도 간 날이면 그 한 타령은 더더욱 거칠었다. 

듣다 못한 내가 걸레질을 하겠다고 나서면 진희는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네가 무슨 걸레질을 하냐고 했다. 

진희가 원하는 나의 역할은 그저 청자였다. 

나는 그렇게 손이 곱고 고운 아이로 컸다. 고등학생 때까지 걸레가 더러워서 잘 만지지도 못하는 인간이었다. 

그 한 타령에는 딸만큼은 귀히 키우겠다는 진희의 고집이 있다는 걸 난 한참 동안 눈치채지 못했고 말이다. 

어쨌든 지난 2n 년 동안 진희의 한풀이를 듣다 보니, 나 또한 ‘한’의 다음 계승자로서 

그 이야기에 녹아들 참이었다.


‘한’ 계승자인 나, 순정은 우연찮게 한국을 떠나 남반구의 작은 섬에 살게 된다. 곁에서 주기적으로 귀에 한 타령을 때려 넣어주는 존재와의 거리는 7,463km. 

진희와 나는 이제 일주일 혹은 이주일에 한 번 정도 보이스톡을 한다. 

대부분의 통화는 어쩐지 진희가 나에게 음식 레시피를 고집스럽게 전수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나 또한 고집스럽게 받아 적지 않는다.


-어젠 깍두기를 만들었는데, 여기 무는 자잘하고 안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엄마.

-깍두기? 깍두기는 말이지, 무 절인 물을 버리지 말고, 엄마가 보내준 뉴-슈가 있지. 그거를 쬐꼼 넣어. 

사과나 양파도 갈면 좋지. 그리고 새우젓, 거기 새우젓이 있나? 없으면 소금을 쓰는 수밖에…

-어, 엄마. 그려, 그려. 알겠어. 알아서 할게.


이런 류의 통화는 비교적 마음이 가볍다.


그러다 어느 날 한 타령이 예고도 없이 시작된다. 보통 그 한 타령은 꽤 길게 이어지는 편이어서 

나는 솔직히 아주 가끔 전화기를 내려두고 하던 일을 마저 하기도 한다. 

3분쯤 지나 다시 전화를 들어도 진희의 격앙된 목소리는 여전히 흘러나온다. 

그의 한 타령엔 소유격 형용사가 자주 등장한다. 

‘너네 아빠’, ‘너네 할머니’, ‘너네 집안’ 등으로 시작하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억울함이다.


나는 가끔 이 랩 같은 한 타령을 들으며 절절한 억울함 속에 베어나는 굽이진 사랑 대신, 

해맑고 구김살 없는 사랑을 듬뿍듬뿍 주는 진희를 상상해본다. 

그 사랑 덕에 나는 해맑고 구김살 없는 아이로 자랐을 것이다. 

세상의 온갖 농담에 까르르 웃으며, 세상의 온갖 꽃밭에서만 구를 나를 상상하니 조금 징그럽다. 

나는 진희의 한 타령을 듣다가 지금의 내가 되었다. 세상의 많은 아픔에 예민한 나,

 억울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은 나, 때로 어떤 농담들은 불편해서 웃지 못하는 나, 

꽃밭 아닌 곳에서도 감히 세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나.


한 타령을 듣는 것은 전혀 유쾌하지 않다. 주로 짜증이 난다. 하지만 나는 한을 짊어지지 않은 

아직 싱그럽고 보드랍던 진희를 기억한다. 

아주 어렸던 나를 끌어안고 조그만 가슴팍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가만가만한 목소리로 

브람스 자장가를 불러주던 진희를 기억한다.


-잘 자라, 내 아기, 내 귀여운 아기, 아름다운 장미꽃..


진희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마음으로 나는 기꺼이 한 타령 리액션 봇이 된다. 

아빠 근상의 흉을 보면 나도 맞장구를 친다.


-으휴! 아빠 왜 그런다냐 진짜!


나는 아마 한(恨) 계승자로서 자격미달이다. 나에겐 서럽고 억울한 세월이 부족하고 앞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그것은 시대가 변해서일지도 모른다. 

또는 내가 모두에게 불공평한 한국식 결혼 생활을 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누가 예물을 보내면 답으로 얼마를 보내고, 누가 집을 해오고, 명절엔 누구의 집에 가고, 

누구의 생일상을 차리고,  누구의 제사 음식을 차릴 의무가 있고, 손주를 낳으라는 누군가의 압박을 받는 

 결혼 생활 따위 말이다. 

한 계승자는 못되겠지만 나는 에세이스트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는다. 

진희의 한을 적확하고 분명한 언어로 기록하고 싶은 마음, 

그렇게 진희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또 기억하고 싶은 욕심이 녹진해져 오늘도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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