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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Dec 02. 2019

사랑니 발치의 부작용

인생과 닮았다



두 달 전쯤 마지막 남은 사랑니를 뺐다. 왼쪽 어금니 뒤, 신경과 뼈를 지나며 자란 탓에 뽑기 어려워 오래도록 미뤄왔는데, 어느 날 웬일인지 해치울 용기가 났다. 큰 종합병원에 예약을 하고  출발 전 먹고 싶었던 커리도 든든히 먹어두었다. 예상은 했지만 훨씬 더 고된 과정이었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의사는 말 그대로 끙끙거리며 내 턱에 달라붙어 있었다. 나 또한 식은땀을 흘리며 위이잉위이잉 거슬리는 톱 소리, 찌르는 듯한 신경의 통증을 버텨내고 있었다. 의사가 중간에 선풍기를 가져와 틀었다. 그는 땀을 훔쳐내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다시 흡사 무기 같은 치과용 도구를 들고 내 얼굴로 다가왔고 나도 비장하게 눈을 질끈, 입을 아 벌렸다.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깊이 박혀있는 사랑니가 조각조각 부서지는 것을 느끼며 사랑과 닮았구나, 그래서 사랑니일까, 내 안에 남은 존재를 없애려면 이렇게나 진을 빼야 해서?,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든 게 다 끝나고 나왔을 땐 왠지 눈물도 났다. 뭔가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기분. 입술은 정말 너덜너덜해졌고 말이다.  


그게 벌써 두 달 전이다. 사랑니가 빠져나간 자리는 꽤 아물었는데 재미있는 부작용이 생겼다. 아래턱을 만지면 입술에서 간질거리는 느낌이 든다. 분명 턱을 더듬거리는데 턱은 조금 얼얼할 뿐이고 입술이 움찔 반응한다. 의사에게 말하니 치료 동안 건드렸던 신경이 돌아오는 과정이거나 작은 부작용이니 심각하지 않으면 지켜보자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왠지 재미가 들려 자꾸 턱을 만지작거렸다. 


어떤 자극에 대해 엉뚱한 곳에서 반응이 일어나는 감각의 착각. 그것이 낯설지는 않았다. 


연민을 사랑으로 착각하거나 추운 겨울 곱아든 발가락을 서러움으로 이해한 일들, 낯선 시장의 상인에게서 풍긴 나프탈렌 향에 뜬금없이 외할머니가 그리워진 경험, 고통을 열정이라고 믿었던 기억들. 나는 감각과 속고 속이는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었다. 감각과 정서의 표면 아래에 무수히 많은 층이 쌓여있고, 그 층들이 갖고 있는 속성은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때로는 타인이나 스스로가 그 겹겹의 레이어에 우연히 손가락을 푹 찔러 넣고 예상치 못한 반응에 피차 당황하기도 했다.  


언제였던가, 당시 만나던 남자의 친구들과 양궁을 하러 간 적이 있다. 처음 해보는 운동인 데다가 운동신경이 워낙 없던 내가 활을 들고 쩔쩔매자 친구 중 한 명이 나를 비웃는 농담을 던졌다. 무안했지만 다들 웃는 분위기라 그 상황은 그럭저럭 넘어갔는데 며칠 후 남자 친구가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며 낄낄거리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남자 친구가 찔러본 건 ‘네가 했던 바보 같은 행동 때문에 다들 웃었던 재미있는 기억’이었지만 그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외로움에 압도되었다. 그의 친구들 틈바구니에서 잘 보이고 싶어 계속 마음 졸이고 자기들끼리만 아는 농담에 겉돌며 어색하게 웃은 그날의 고독감이 몰려왔다. 아니, 더 나아가 홀로 자취방에서 약을 먹고 며칠 내내 앓던 대학시절 겨울밤, 인기 많던 친구와 다투고 내 편이 하나도 없어 혼자 급식을 먹던 12살의 오후, 열쇠가 없어져 텅 빈 집 앞에서 세 시간을 쭈그려 앉아 기다리던 아파트 계단이 떠올랐다. 내 눈물을 본 그는 무척 당황하며 말했다. 


“친구가 너 상처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을 거야.” 


세상이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 악의를 품고 상처를 준다기보단, 상처를 주는 줄도 모르고 상처를 준다. 그건 상처를 주는 입장의 무심함도 한 몫하지만, 상처 받는 이가 가진 고유의 경험들이 층을 이루며 감각을 속이기 때문이다. 그 층위를 간파해내는 지혜란 상대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도 획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심지어 본인 스스로도 말이다.  


하여 나는 상처 받는 자로서 조금 더 관대해지길 소망해본다. 나조차 착각하는 나의 감각과 정서를 상대가 모두 알아주길 바라지 않길, 어느 날 무심하게 감각의 저변을 찔러보는 손가락에 조금 덜 서운해하길 그리고 내 전체를 휘두르는 감각과 정서에 일희일비하지 않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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