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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Apr 11. 2021

무용한 것의 유용함에 대하여



쓸모없는 것들을 애정 한다. 고양이의 수염이 떨어지면 모아놓고 가끔 만져본다. 

바닷가에 가면 특별할 것 없는 자잘한 조가비를 주워온다. 

그렇다고 뭔가 컬렉션이 될만한 건 없다. 귀하게 보관하지도 않는 편이다. 

우리 집 고양이의 수염은 내 안경곽에 담겨있고, 말린 꽃은 다 먹고 빈 쿠키 통에 들어있다. 

친구 P는 특이한 색깔의 볼펜을 볼 때마다 사서 모은다. 브랜드나 두께는 중요치 않다. 

딱히 그것들로  그림을 그리거나 캘리그래피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모아 두고 가끔 심심할 때 종이에 동그라미나 하트 같은 것들을 그려본다. 

또 다른 친구 S는 찻잔 아래 받쳐두는 코스터를 산다. 어쩔 땐 사고 어쩔 땐 사지 않는다. 

한 번은 오천 원짜리 평범한 코스터를 즐거운 얼굴로  덥석 사더니, 

그다음 번엔 사천 원짜리 코스터를 보고는 ‘오. 비싸네.’ 하고는 등을 돌렸다. 

같이 바에 가면 맥주병 아래  받쳐 나온 코스터를 싱글벙글 가방 안에 넣었다. 

그의 집엔 여러 장의 코스터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컴퓨터 옆, 전자레인지 위, 침대 테이블 옆, 서랍 안 등등. 


쓸모없음이 주는 가벼움이 좋다. 지금 해야 하는 일과 미래에 도움이 되는 일, 일상에 필요한 일, 

충실한 사회 일원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에는 의무감이 있다. 

그것을 하지 않을 때 끈질기게 따라오는 부채감이 있다. 

유용한 일들은 때로 삶을 억압하고, 그 결과 나는 삶을 살아가는 주체자가 아닌 삶을 마감처럼 

허겁지겁 쫓아가는 노동자가 되기도 한다.


쓸모없는 일에는 보상이 없다. 내가 고양이수염을 열심히 모은다고 

우리 집 고양이가 박수를 쳐주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조가비에 값이 매겨지는 것도 아니다. 

하고 싶을 때 그 일을  한다. 그 일을 게을리한다고 미래가 걱정되거나 자괴감에 억눌리지 않는다. 

발달 루트가 있고 그것을 전시할 수 있는 취미활동들과 달리 나아지고자 하는 욕망에서 자유롭다. 

여러 모로 드물게 건강한 활동이다.


글쓰기가 그러하다. 글을 업으로 삼는 작가도 아니고, 내 글을 독촉하는 독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쓰고 싶은 글감이 있으면 쓰고  피곤하거나 귀찮을 때는 미룬다. 

베란다 테이블에 무심하게 올려놓은 조개나 마른 산호처럼 ‘문서’ 파일에 대충 지은 제목으로 저장을 한다. 

글을 꺼내 다시 읽어보을 때 괜히 즐거운 마음이 든다. 

고양이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미소 짓는 즐거움과 비슷한 감정이다. 

요즘은 사실 글을 쓰며 느껴지는 의욕들이 반갑고도 두렵다. 

두려운 이유는 이 쓸모없는 일이 ‘유용함’의 카테고리에 들어  부담이나 피로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서이고,

반가운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욕은 ‘삶의 활기’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일들을 하다 보면 가끔 운이 좋게 유용한 업무 혹은 의무에 

집중하느라 쪼그라든 시야가 확장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조가비를 줍는 와중에 나는 종종 바위의 움푹 파인 웅덩이에 고인 물을 발견한다. 

그 웅덩이 속은 하나의 세상이다.  망둥어처럼 생긴 자그마하고 똥실한 물고기가 파다닥 뛰어다니고, 

소라를 짊어지고 다니는 게들이 바삐 움직인다. 이끼가 낀 채 바위 모퉁이에 고집스레 붙어있는 

삿갓조개도 있다. 그 쓸모없는 광경을 한참 들여다보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내가 사는 세계도 

어딘가 웅덩이에 콕 박힌 고인 물일까 궁금해진다. 커다란 눈이 나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참 쓸모도 없고 사랑스럽구나, 하는 상상을 해본다. 

먹고사는 일(유용한 일)들에 치일 때면 웅덩이 속 세상을 떠올리며 위로한다. 

중요한 일들이 하찮은 일에게 보듬어진다. 

주입식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쓸모없는 일의 유용함은 이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니다. 유용함을 찾지 않기로 한다. 

유용해지는 순간 다시 삶을 억압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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